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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내무성의 통지(通達) in 1877


왼쪽의 자료는 내무성이 1877년 3월 20일에 내린 통달로서 울릉도와 바깥의 한 섬(外一島)이 조선의 영토인 것으로 명기되어 있다. 한국은 여기에 실려 있는 「竹島外一島」의 ”外一島”를 독도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 논거가 될만한 적극적인 증거는 없다. 「竹島外一島」는 아르고넛 섬과 다쥬레 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 반론
메이지 유신에 의해 막 새롭게 정권을 바꾼 시기, 메이지 신정부는 1870년에 다음과 같은 「竹島松島朝鮮附属ニ相成候始末」(다케시마 마쓰시마 조선부속 과정) 이라는 문서를 냈다. 한국에선 이 문서가 松島(마쓰시마;현재의 독도)가 역사적으로 한국영토였던 증거라고 주장한다. 이 시점에선 일본에서 울릉도를 竹島(다케시마;울릉도), 독도를 松島(마쓰시마;독도)라고 부르고 있다.

一 竹島松島朝鮮附屬ニ相成候始末
此儀ハ松島ハ竹島ノ隣島ニテ松島ノ儀ニ付是揭載セシ書留モ無之竹島ノ儀ニ付テハ元祿度後ハ暫クノ間朝鮮ヨリ居留ノ爲差遺シ置候處 時ハ以前ノ如ク無人ト相成竹木又ハ竹ヨリ太キ ヲ産シ人參等自然ニ生シ其余漁産モ相 ニ有之趣相聞ヘ候事 右ハ朝鮮事情實地偵索イタシ候大略書面ノ通リニ御座候間一ト先歸府仕候依之件取調書類繪 面トモ相添此段申上候以上
午四月
外務省出仕
佐田白茅
森山茂
齋藤榮

위의 인용은 메이지 정부의 외교관이던 佐田白茅 등이 조사한 결과를 태정관에게 보고한 기록이다. 메이지정부는 1869년 12월에 두 섬이 조선영토가 된 경위를 조사하기위해 佐田白茅 등 3명을 부산에 파견했다. 그 보고서가 위 인용문이다. 즉 "메이지정부는 竹島(다케시마;울릉도)와 松島(마쓰시마;독도)를 조선영토로 인정한 위에 왜 그렇게 되었나를 명확히 하라고하는 명령을 내린것이다. 이 문장의 제목만 봐도 竹島(다케시마;울
릉도)와 松島(마쓰시마;독도)가 한국영토라고 일본의 메이지정부가 인정하고 있던 것은 일목요연하다. 그러나 일본측에선 이 문서에서 말하는 竹島 松島(다케시마 마쓰시마)는 울릉도와 독도를 가리키는게 아니라 서양의 군함이 잘못 측량한 결과,지도에 울릉도를 마치 두개의 섬인 듯 표시하여 한개를 竹島(다케시마) 또 한개를 松島(마쓰시마)라고 써 넣었기 때문에 생겨난 오기의 영향을 받고 있어, 결국 울릉도 하나의 섬을 말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이 시기의 메이지 정부에선 서양지도의 직접영향을 받고 있지 않으므로 이와 같은 비판은 빗나간 것이다. 메이지 정부가 서양지도의 영향을 받기 시작한 것은 후에 말하지만 1880년 이후이다.

게다가 메이지정부가 1877년에 낸 또하나의 다음과같은 문서가 있다.

日本海內竹島外一島地籍編纂方伺
竹島所轄之儀ニ付島根縣ヨリ別紙伺出取調處 該島之儀ハ元綠五年朝鮮人入島以末別紙書類ニ摘採スル如ク元綠九年正月第一  政府評議之旨意ニ依リ二 譯官へ達書三 該國來束四 本邦回答及ビ口上書等之如ク則元祿十二年ニ至リ夫夫住復相濟本邦關係無之相聞候得共版 ノ取捨ハ重大之事件ニ付別紙書類相添爲念此段相伺也
明治十年三月十七日
內務卿 大久保利通 代理
內務少補 前島密
右大臣 岩倉具視殿


伺之趣 竹島外一島之儀 本邦關係無之儀ト可相心得事
                     明治十年三月十九日

이 문서는, 내무성이 태정관에게 竹島(다케시마;울릉도)는 어느 나라의 영토인가를 조회했던 문서이다.
여기서 메이지 정부는, 竹島(다케시마;울릉도)와 外一島는 일본하고는 관계없음(즉 한국의 영토이다.)을 선언하고 있다. 이 문서속에 있는 ‘外一島’라는 건 독도이다라고 한국은 주장한다. 그 근거로써, 메이지 정부가 별지로 첨부한 서류속에는 外一島에 관해서, “바깥에 한 개의 섬이 있는데 松島(마쓰시마)라고 부른다. 넓이는 30정보 정도이고, 竹島(다케시마;울릉도)
와 동일선상에 있다”라고 하는 내용을 들 수 있다. 현재의 독도의 면적은, 약 0.2평방 km이다. 이것은 정반묘의 단위로 표시하면, 23정 3반 3묘 가 된다. 실제로 측량된 면적은, 이 메이지 정부 문서의 ‘外一島’의 면적 30정보와 가깝기 때문에, ‘外一島’는 현재의 독도라고 결론 지워질 수 있을 것이다. 울릉도의 동쪽으로 약 2km인 지점에 독도와 거의 면적이 같은 죽도(竹島:그림2-1)가 있다. ‘外一島’는 이 죽도가 아니까 하는 설도 있지만, 메이지 정부 문서에는 ‘外一島’는 松島(마쓰시마)라고 명기되어져 있기 때문에, 죽도설은 부정되어진다.


p.s 일본의 주장을 알아야, 반론을 할수 있는 법입니다. 우리가 해야될 일은 우리 주장을 계속 발전 다듬어가야 할때라고 생각합니다. 아주까리님은 랄라라님의 의도를 호도하지 않고, 함께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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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미 to 역갤 블로그 at 4/25/2006 05:11:51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