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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여서 요즈음 역갤에도 올라온듯한 글 다시한번 읽고 갑니다그려.
물론 임나일본부의 가능성은 소햏도 어느정도 열어두고 있는 상황이지만, 한반도에서 왜계 유물이 나오고, 또한 일본에서 한반도계 유물이 나오면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하구려.
애초에 임나일본부는 임나 지방에 왜부를 세웠다는 것인데, 이는 왜가 남해안의 제해권을 쥐고 있다는 논리가 성립돼며, 오히려 일본에서 출토됀 한반도 양식이 기원이 올라가거나, 내려가는 일이 일어날수 있는데, 한반도계 유물 년도측정이 대부분 5~6세기쯤인것을 보면 이건 아닌듯 싶소.
또한 위에 박제상전 중 순라정찰을 보내었다는 기사를 근거로 삼으시는데, 그 후에 고구려병이 왜병을 잡아 죽여 왜왕이 백제인의 말을 옳게 여겼다는건 어떤 심보(-_-)로 빼셨는지 모르겠습니다그려.
이 일은 호태왕비에도 언급돼는 상황이며, 열전에서 순라정찰은 소햏이 한문에 약한 관계로 뭐라하면 까일 정도이나, 논리적으로 해석해 보자면 왜왕이 백제인(투항인이라 하나 소햏의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전지태자와 같이 왜에 건너간 사람-혹 전지태자? 절대 이럴리 없지만 質자를 인질이란 뜻 대신 보좌관으로 생각하면 왜왕의 행동이 그럴듯해 보이오)의 말을 옳게 여겨 화근이 돼기 전에 신라를 대대적으로 공격한 것으로 보이는 것을 뒤집어서 기록한듯 싶으오.
물론 고구려는 신라를 구원해 속맹으로 삼았겠고.
호태왕비를 살짝 엿보자면 박제상열전에 기록됀 이것은 엄청난 규모의 출병으로 기록하옿.
*물론 소햏의 생각이지만 백제인의 주장으로 왜왕이 군졸을 일으켰다는 것은 왜의 신라공격은 고구려의 압박을 덜어내기 위한 백제왕의 사주가 아니였다 생각되오.
결국 임나일본부의 관건은 아직 미슷헤리인 가야에 달려있는데, 가야측 기록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니 이야말로 캐안습이라 할수 있겠소.
뭐 이것저것 쓴다는게 주저리주저리가 돼버리니 원-_-;;
P.S: 수나라? 의 왜왕 책봉시 임나와 가라를 중복기록했는데, 이것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하구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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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돈데기리 to 역갤 블로그 at 5/10/2006 07:03:10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