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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데, 왜 고구려가 자신들의 세력이 가장 강성하던 때 자기 나라를 뽐내는 글을 쓰면서 왜가 세력을 떨치는 것을 기록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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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대상이 있어야 뽐낼 것 아닙니까. 호태왕비를 보면 고구려의 주적은 백제가 아니라 왜국입니다. 이것은 신묘년 외의 부분을 봐도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안타까운 의견을 낸다고 하셨으니, 원문 정도는 해석할 실력이 있으시리라 믿고, 해석은 따로 기재하지 않겠습니다. 설마 원사료조차 읽지 못하면서 그런 주장을 하진 않으셨겠지요?)

九年己亥, 百殘違誓, 與倭和通.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住救新羅. 從男居城至新羅城, 倭滿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自倭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 拔新羅城, 鹽城, 倭寇大潰, 城內十九, 盡拒隨倭, 安羅人戍兵. 殘倭潰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和通殘兵?石城, ?連船???, 王躬率住討, 從平穰???鋒相遇, 王幢要截탕刺, 倭寇潰敗, 斬煞無數. 十七年丁未, 敎遣步騎五萬, ????????. 王師四方合戰, 斬煞蕩盡.

신묘년 외에도 왜국과의 전쟁에 대한 기록은 이렇게 많습니다. 백제, 신라와의 관계보다 훨씬 더 많은 기록입니다. 이 모든 것도 조작이라 하실 겁니까? 신묘년 기사를 일본측의 주장대로 해석하지 않으면, 어째서 왜국과 통한 것이 고구려의 노객이 되겠다는 맹세를 어긴 것이 되는지 설명이 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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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쪽의 얘기라면 '일본서기'를 말씀하시는 것 같은데, 일본서기는 일본학자들까지도 과장과 허구로 인행 진위성을 의심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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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서기의 상당 부분이 미화되고 초기 연대에 문제가 있는 것은 사실이나, 없는 사실을 완전히 새로 만들어낼 정도의 완벽한 날조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일본서기의 정확도가 삼국사기보다 뛰어난 경우가 이미 몇차례 증명되었습니다.

무령왕의 출생연도와 이름은 무령왕릉이 발굴되어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정확한 것으로 증명되었고, 무령왕이 동성왕의 둘째 아들이라는 삼국사기의 기록 역시 작은 아버지인 동성왕보다 나이가 많게 되는 문제가 발견되어 이기동에 의해 부정, 일본서기가 정확함이 드러났습니다.

또한 삼국사기 잡지에 실린 우륵의 12곡의 이름이 가야의 지명이라는 것은, 일본서기가 없으면 알 수가 없습니다.

최근 함안에서 발견된 대형 건물터도 국내의 일부 학자들은 일본서기에 언급된 고당회의 터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외에도 박제상의 인질 구출 사건이나, 석우로의 죽음 등이 일본서기에도 기록되어 있어, 삼국사기와 일치하고 있습니다. 일본서기가 삼국사기보다 먼저 만들어진 책이란 걸 잊지 마시길 바랍니다.

또한 교과서에서 강조되고 있는 왕인 박사의 문화 전파 등의 기사는 모두 일본서기에서 나오는 것이지, 삼국사기에는 단 한마디도 언급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유리한 기록은 그대로 전재하면서, 불리한 기록은 왜곡 날조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열한 태도는 버려야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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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서에 관해서는 애왕 책봉기사를 말씀하시는 거 같고, 그것도 정확한 근거는 아니고, 우리나라 사서 어디에 그런 내용이 실렸다는 거죠? 제가 알기로는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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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님이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먼저 삼국사기에 실린 신라 백제와 왜국의 관계를 보여주는 기사를 봅시다.

元年三月, 與倭國通好, 以奈勿王子未斯欣爲質. (實聖尼師今)
百濟人前入倭, 讒言新羅與高句麗謀侵王國, 倭遂遣兵邏戍新羅境外. (朴堤上)
六年夏五月, 王與倭國結好, 以太子腆支爲質. (阿莘王)
迎古王子扶餘豐, 嘗質於倭國者, 立之爲王. (義慈王二十年)

신라 백제 모두가 왜국에 인질을 보내고 있고, 왜국은 신라 국경 밖에서 왜군을 보내어 순라를 돌고 있습니다. 위에서 제시하지 않았으나 신라는 왜국의 수차례 침입을 받고, 백제는 왜국에 가있던 인질이 왜왕에게 애걸복걸하여 백제에 돌아와서 왕이 됩니다.

문제는 이 반대의 경우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다는데 있습니다. 왜국이 신라 백제에 인질을 보낸 경우가 한 번도 없고, 애걸복걸한 적도 없습니다. 삼국사기를 읽은 분이라면 위와 같은 질문을 하실 수 없습니다.

이러한 기록은 삼국유사에도 보입니다. 왜국과 가야의 관계를 고래와 작은 물고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사서에 애왕 책봉기사는 왜국과의 관계와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엉뚱한 소리는 하시면 안됩니다. 중국의 사서에 이와 관련된 내용은 다음입니다.

元嘉二年, 倭國遣使自稱使持節都督倭百濟新羅任那秦韓慕韓六國諸軍事(宋書,南齊書)
新羅百濟皆以倭爲大國多珍物幷敬仰之恒通使往來(隨書)

송서의 기록이야 왜국의 자칭이니 허풍이라 넘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서의 기록은 왜국의 자칭도 아니기 때문에 그냥 넘길 수가 없습니다.

정리하면, 삼국사기, 삼국유사, 송서, 남제서, 수서 등, 한반도와 중국의 사서가 당시 백제 신라와 왜국의 관계를 똑같이 증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백제 신라가 왜국을 대국으로 보았고, 인질을 보냈다고 말입니다. 게다가 삼국사기에는 왜군이 신라국경밖에서 순라를 돌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이 때는 가야 멸망전입니다.

도대체 뭘 읽으신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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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왜계 유물이라는 것은, 일본과의 교류를 말하는것입니다. 일본 지배의 흔적이 되려면, 일본식의 건축물이나 무덤 등 들이 발견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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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발견되고 있습니다만? 전방후원분이라는 이야기 못들어보셨는지요? 하니와라는 말 못들어보셨는지요?

이런 상식조차 모르면서 안타깝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은 심히 주제파악이 결여된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허세를 부리면 자신만 파탄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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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일본 학계내에서도, 임나일본부설에 대해서 부정하는 기류가 큰걸로 아는데, 제 생각으로는 좀 안타까운 의견이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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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정이 아니라, 근거 부족으로 보류중입니다. 어디서 주워들은 걸로 함부로 말씀하시면 안됩니다. 임나일본부 보류는 쓰다 소키치 등에 의해 시작된 것입니다.

삼국사기조차 읽지 않았으면서 아는 척을 하며 허세를 부리는 분들이 계시는데, 조용히 계시는게 망신 당하지 않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코멘트에 반론을 하고 싶다면, 먼저 위에서 제시한 사료 원문들의 해석문을 제시한 뒤에 하기 바랍니다. 그런 뒤에도 우리나라 자료에 그런 내용이 없다고 말할 수 있는지 두고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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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5/10/2006 12:14:07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