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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원이 울릉도를 향해 간 때가 1882년 4월. 그 때 조선의 제26대 국왕 고종(1863 - 1907 재위)은 그에게 「송죽도(松竹島), 우산도는 울릉도의 옆에 있는데, 그 상거(相距)의 원근(遠近)이 어떠한가. 또 어떤 산물의 이득이 있는가」라고 하문하고 있다. 이 고종의 질문에 대해서 이규원은 「우산도는 곧 울릉도로, 우산(芋山)은 옛 국도(國都)의 이름」이라 하고, 「송죽도는 곧 한 개의 작은 섬으로 거리가 10리(지금의 2 Km에 상당)이고, 그곳에서 산출되는 것은 자단향과 간죽(簡竹)」이라고 대답하고 있다. 「성종실록」1년 8월조에 기록된 「울릉도 옆에 작은 섬이 있다」의 작은 섬과 같이, 어느 쪽이든 "울릉도에서 동쪽으로 2 Km정도 떨어진 현재의 울릉군 울능읍 도동리 죽서도로, 지금의 독도와는 전혀 관계가 없다. 「동국여지승람」의 우산도 울릉도조에 송도(松島)·독도의 문자가 없고, 송도·죽도·우산도(芋山島) 세개의 섬을 울릉도라고 칭한 것은 「동국 문헌 비고」에 근거한 지식이었기 때문이???????????"

울릉도 검찰사 이규원은 발령 후 출발 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면 벌목철이 지나서 일본인들이 철수해버린 다음이 되므로, 출발 예정일을 다음해로 넘겼다. 그 결과 이규원이 울릉도 현지조사를 위하여 정작 서울을 출발한 것은 1882년 음력 4월10일이었다. 이규원은 출발에 앞서 4월7일 국왕을 알현하여 하직 인사를 올렸는데, 이 자리에서 국왕은 울릉도 동쪽 20~30리 정도에 ‘우산도(독도)’가 있고, 또 ‘송죽도(松竹島)’라는 섬도 있어서 섬이 세 개라는 설도 있으니 이것도 조사해 오도록 하고, 울릉도 현지조사 때에는 사람을 이주시켜 읍(邑)을 설치할 만한 후보지를 조사해 오라고 명령하여, 울릉도 ‘재개척’ 의지를 강력하게 드러냈다.

.......20~30ri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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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Anonymous to 역갤 블로그 at 5/16/2006 12:49:4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