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얘가 했던 얘길 또 하게 만드네. 그만큼 고려는 과연 제국이었을까를 읽어보라고 했는데도 '제시했다'고 하는 걸 보면 저 글을 이해조차 못한 거 같아. 껄껄껄

너의 헛소리를 하나씩 박살내주마.


1. 너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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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에 있는 마애약사상의 금석문을 보면, 황제만세원(皇帝萬歲願)이라고 적혀있다. 경종에 대한 금석문인데, 이게 황제라는 뜻이 아니면 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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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가 말하는 마애약사상이란, 경기도 하남시에 있는 마애불좌상을 이르는 것이다. 명문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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太平二年丁丑七月二十九日古石
佛在如賜乙重修爲今上
皇帝萬歲願
태평2년 정축 7월 29일에 오래된 석불이 계시니 (이를) 중수하여 금상 황제의 만세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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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명문의 금상 황제가 경종, 즉 고려왕이 될 수 없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① 태평2년이라는 중국의 연호가 등장하고 있다

→ 태평이라는 연호는 중국의 연호이지, 고려의 연호가 아니다. 이에 해당될 수 있는 것은 북송의 태평흥국이나 거란의 태평이외에 없다. 그리고 태평2년이 거란의 태평2년일 경우 1022년이 되므로 경종에 대한 금석문이 될 수 없다. 경종은 981년에 죽었기 때문에.

즉 너는 태평이라는 연호가 어느나라의 것인지조차 모르고서 고려 칭제의 근거로 삼고 있다. 아니, 실은 전문를 모르고서 인터넷 어디선가 일부만 베껴서 나불대는 것이겠지만. 껄껄껄껄

② 고려도경을 보면 이미 중국 황제의 장수를 기원한 경우가 보인다

→ 고려도경을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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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화봉사고려도경 제17권

사우(祠宇)
흥국사(興國寺)

興國寺。在廣化門之東南道旁。前直一溪。爲梁橫跨。大門東面。榜曰興國之寺。後有堂殿。亦甚雄壯。庭中立銅鑄幡竿。下徑二尺。高十餘丈。其形上銳。逐節相承。以黃金塗之。上爲鳳首。銜錦幡。餘寺或有之。唯安和者。書云大宋皇帝聖壽萬年。觀其傾頌之意。出於誠心。宜其被遇聖朝。眷寵懷倈之厚也。
흥국사는 광화문(廣化門) 동남쪽 길가에 있다. 그 앞에 시냇물 하나가 있는데, 다리를 놓아 가로질러 놓았다. 대문은 동쪽을 향하고 있는데 ‘흥국지사(興國之寺)’라는 방이 있다. 뒤에 법당이 있는데 역시 매우 웅장하다. 뜰 가운데 동(銅)으로 부어 만든 번간(幡竿 당간)이 세워져 있는데, 아래 지름이 2척, 높이가 10여 장(丈)이고, 그 형태는 위쪽이 뾰쭉하며 마디에 따라 이어져 있고 황금으로 칠을 했다. 위는 봉새 머리[鳳首]로 되어 있어 비단 표기[錦幡]를 물고 있다. 다른 절에도 혹 있으나, 다만 안화사의 것에는 ‘대송황제성수만년(大宋皇帝聖壽萬年)’이라 씌어 있다. 그들이 마음을 기울여 송축하는 뜻이 성심에서 나왔음을 보니, 그들이 성조(聖朝)의 총애하심을 후히 받는 것도 마땅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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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고려 땅에 있는 불좌상의 황제라고 해서 무조건 고려 황제라고 주장할 수 없음은 당연. 더욱이 중국의 연호가 등장하고 있고. 껄껄껄껄

③ 금상이라는 표현은 현재 재위 중인 통치자를 가리키는 것이지 자국의 지도자만을 가리키는 것은 아니다

→ 가령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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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 3卷 元年 正月 11日 (丙辰)
세종 3권 1년 1월 11일 (병진)

參贊金漸進曰: “殿下爲政, 當一遵今上皇帝法度。”
참찬 김점이 아뢰기를, “전하께서 하시는 정사는 마땅히 금상 황제(今上皇帝)의 법도를 따라야 될 줄로 아옵니다.”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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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와 같이 세종에게 명나라 황제의 법도를 따르라는 기록이 있음. 마애불좌상의 금상황제가 고려 황제 밖에 될 수 없다면, 실록의 저 기록은 한반도에 정체 불명의 황제가 있고 세종대왕이 따로 있다는 식으로 해석되어야 하겠지. 즉 망상.

따라서 중국의 연호를 쓰고 있는 마애불좌상의 황제를 가지고 무조건 고려 황제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것은, 무식성을 그대로 드러내는 것일 뿐. 껄껄껄껄껄껄껄


2. 너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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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에도 고려왕이 자신을 칭할때 짐(朕)이라는 말을 쓴다. …… 조선시대에 없어졌다가 대한제국시대에 다시 부활했던 원구단이 있고,(원구단은 짐이 곧 하늘이다라는 뜻에 따라 세워진거다. 일개 왕국에서 원구단따위를 세울일은 없지) …… 관료체제로 따지면 성(省)'과 '부(部)'는 천자국에서 쓰이는 말이지 제후국에서 쓰이는 말이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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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런가. 좋다. 그럼 다음 기록을 설명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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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국이상국전집 제30권
사대찬 표장(私代撰表章)
강종대왕(康宗大王)의 기신(忌晨)에 위안하는 표

臣某等言。伏覩聖上陛下以今月某日康宗大王忌晨輟常膳哀痛者。弓劍一遺。星霜累換。愴宸衷之彌劇。避正寢以不臨。恭惟聖上陛下。孝篤奉先。德敦追遠。値寧考乘雲之日。軫君子履露之悲。凡荷生成。悉均悽慘。
신 모(某) 등은 아룁니다. 삼가 보건대, 금월 모일(某日)이 강종 대왕의 기신으로 성상 폐하께서 상선(常膳)을 폐지하시고 애통하시는 것은, 선왕께서 승하하신 지 세월이 여러 번 바뀌었는데도 슬퍼하시는 정성이 더욱 지극하셔서 정전(正殿)을 피하시는 것입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성상 폐하께서는 봉선(奉先)하는 효성이 지극하시고 추원(追遠)하는 덕의가 돈독하시어, 영고(寧考)께서 승하하신 날을 당하여 군자가 이로(履露)하는 슬픔을 다하시매, 무릇 생성(生成)의 은혜를 받는 자들은 모두가 슬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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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성상 폐하'라고 말하는 이규보가 강종'대왕'이라고 말하고 있어. 껄껄껄껄

다음 기록도 설명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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世宗 4卷 元年 6月 8日 (辛巳)
세종 4권 1년 6월 8일 (신사)

命吏曹判書孟思誠, 祈雨于昭格殿, 檢校漢城府尹崔德義行蜥蜴祈雨于景福宮^慶會樓池邊, 右議政李原祈雨于圓丘。
이조 판서 맹사성에게 명하여 소격전(昭格殿)에 비를 빌고, 검교 한성부 윤(檢校漢城府尹) 최덕의(崔德義)로 석척 기우(蜥蜴祈雨)를 경복궁 경회루 못가에서 지내게 하고, 우의정 이원으로 원구(圓丘)에서 비를 빌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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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대로라면 원구단에서 제사지낸 세종은 황제였군. 껄껄껄껄껄껄

다음 기록도 설명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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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麗史28卷 世家28 忠烈王 丙子 二年 春正月
#고려사28권 세가28 충렬왕 병자 2년 춘 정월

甲申達魯花赤詰之曰: “稱宣旨稱朕稱赦何僭也?” 王使僉議中贊金方慶左承宣朴恒解之曰: “非敢僭也但循祖宗相傳之舊耳敢不改焉?” 於是改宣旨曰王旨朕曰孤赦曰宥奏曰呈.
갑신에 다루가치(達魯花赤)가 힐난해 말하기를 「선지(宣旨)라 칭하고 짐(朕)이라 칭하고 사(赦)라 칭하니 무슨 참월한 일이냐?」하거늘, 왕이 첨의중찬 김방경·좌승선·박항으로 하여금 해명케 하기를 「감히 참월함이 아니라 다만 조종의 상전하는 구례를 따를 뿐이었던 바 감히 고치지 아니하리오」하고 이에 선지를「왕지(王旨)」로 짐을「고(孤)」로 사(赦)를 「유(宥)」로 주(奏)를「정(呈)」으로 고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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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말에 의하면 그 때까지 칭짐하고 있던 충렬왕은 충렬제(帝)였나 보군. 그런데 이상해.. 칭제하고 있었다면 당연히 다루가치가 칭짐보다 칭제를 물고 늘어졌어야 되는데 칭제는 한 마디도 없어. 껄껄껄

다음 기록도 설명해줘. 이건 너가 모르고 있던 것일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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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나행(驅儺行) - 이색

군왕께선 팔각전에 단정하게 앉아 계시는데 君王端拱八角殿
뭇 신하 시립하여 용상을 둘러 섰네 群臣侍立圍疎屛
재상은 잔을 들어 만세를 부르고 侍中稱揚上萬歲
신들은 성군 만나 천수를 누리리라 幸哉臣等奉千齡
해동천자의 옛 악부에다 海東天子古樂府
작품 하나 지어서 역사에 전하려니 願繼一章傳汗靑
병든 몸 힘이 없어 나가기 주저하는데 病餘無力阻趨班
부서진 창에 하루종일 바람만 냉냉하다 破窓盡日風冷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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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동'천자'인데 군왕이래. 껄껄껄껄껄껄

더이상 짐이니 폐하니 천자니 같은 걸로 황제 운운 같은 헛소리는 안했으면 좋겠어. 껄껄껄껄껄껄

그리고 성(省)'과 '부(部)'는 천자국에서만 쓸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는 뭐야? 짐이나 폐하 같은 거야 사기 진시황조에 그런게 있으니 그렇다 쳐도. 신라도 선교'성' 따위를 설치해서 운영했는데..

혹시 몽고가 관제 격하한 거 가지고 소설을 써대는 건 아니겠지? 껄껄껄껄

3. 너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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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외교할때, 중국이 조선은 조공사로 대우해주었지만 고려는 국신사로 대우해주었다는 것은 알고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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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알고 있어. 그런데 말야, 넌 그 기록이 어디에 나오는지 알고서 그런 말을 하는거야?

당연히 사료를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것일테니, 해당 사료의 해당 문장을 인용해서 제시해봐. 아무래도 네이버의 무슨 이상한 까페(그것도 역갤 중학생의 고려사 해석을 인용하고 있는 바보 같은)의 글을 읽고서 허세를 부리는 것 같은데 말야.

만약 이번 차례에 대답 못하면, 모르면서 인터넷 검색질로 아는 척을 한 것으로 간주하고, 내가 직접 제시해서 가르쳐 줄게. 껄껄껄껄껄

참고로 고려가 국신사를 칭한 것은 요나라에 복속하여 송나라와의 관계를 끊은 이후. 이전 기록을 보면 전부 조공사로 기록되어 있고. 껄껄껄껄


4. 너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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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왕운기를 보면 금나라가 고려에게 보낸 조서에서 ''대금(大金)황제가 고려국 황제(皇帝)에게 글을 보낸다.'(大金皇帝奇書于高麗國皇帝) '라고 적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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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거 도대체 아는 게 뭐야? 대등한 관계인데 조서를 보냈다고? 크하하하하

조서는 주군이 신하에게 내리는 것이 아닌가. 니 말대로 좆도 모르네. 껄껄껄껄

그리고 조서가 아니라 국서의 서였던 걸로 기억하고, 제왕운기의 본문이 아닌 주석에 나오는 것이 아니었던가.껄껄껄

그래고 어쩌라고? 금나라가 고려 황제라 했다고 해서 고려가 칭제했다는 건가? 아 그런거야?

이건 누군가가 A란 사람에게 "장동건 닮았다"고 한 말을 가지고 B란 사람이 "A가 스스로 장동건 닮았다고 깝치고 다니더라"라고 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잖아. 껄껄껄껄

더군다나 금사에는 고려왕이라는 말만 나오지 고려황제라는 말은 한마디도 없고.

참고로 고려사에는 일본에서 황제라 부른다며 의종이 좋아하는 것으로 나오는데, 칭제했으면 황제라고 부른다고 해서 좋아할 이유가 없음. 세종실록에도 중국 사신이 세종에게 황제라고 불러서 세종이 당황하는 기록이 나오는데, 그럼 세종도 칭제한거야? 그런거야? 껄껄껄껄

자꾸 엉뚱한 소리 하지 말고, 고려가 칭제했다는 기록이나 고려 황제 같은 금석문이라도 제시하라니까. 그거 제시하면 끝나는데 뭔 잡설이 이리 많어?

좆도 모르면서 입맛에 맞는 자료만 편집하는 건 너잖어. 그것도 인터넷 복사질뿐이지만. 껄껄껄껄껄


5. 너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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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팔사략에도 이와 비슷한 글이 나와있다.

요나라 안에서 금나라가 나타나 요의 천조제가 정신없이 쫓겨 다닐 무렵, 송나라에 고려 사신이 와서 "우리나라에는 의원이 적으니 송나라 의원을 좀 파견해 주시오." 하고 요청하였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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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래, 그전에 십팔사략 원문부터 제시해봐. 난 너가 어디서 복사질을 한 건지 알고 있으니까.

나보고 좆도 모르고 국사책이나 본 수준이라 했으니, 당연히 너가 원사료를 읽었다고 간주할게. 그러니 원문 제시해보셔. 껄껄껄껄

그리고 다시 말하지만 당시 고려는 요나라에 복속한 상태였고, 송나라와 공식적으로는 국교를 끊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송나라와 대등한 상황이니 해봐야, A란 놈한테 쫄아있다 더 강한 B란 놈이 나타나자 B밑에 빌붙어서 A한테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과 다를 바 없고, 이걸 가지고 대등하게 행동했다고 해봐야 헛소리일 뿐이고. 껄껄껄껄껄

윤관의 여진정벌조차 요나라 눈치봐가면서 했는데 뭔놈의 대등한 관계여.


6. 너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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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고려가 만주지방으로 진출했다는것은 왠만한 사학자들은 다 인정하는 사실이지.
http://galleryfile.paran.com/GALLERY_110/200410/1098935703_ch031213-1.gif

북만주 지역을 보면 고려령(高麗嶺), 고려모(高麗貌)같은 고려이름을 차용한 영토가 대거 나타나거든. 중국지도 보면 더 확실하게 나온다. 이 애송아. 하긴 국사책외엔 아무것도 본 적이 없으니 그따위 말을 잘도 지껄이겠지. (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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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 마치 너의 의견인 것처럼 사기를 치고 있는데, 그전에 너가 베끼고 있는 글의 출처부터 밝혀주지.

너가 너의 의견인냥 사기치는 글의 출처는 여기지. 파란 지식바다. 껄껄껄

http://ksea.paran.com/swisdom/queview.php?que=692136

그리고 이 글은 원래 coo2의 오재성이가 쓴 글일게다. 출처는 허성정이 홈피로 되어있다만. 얘네들을 웬만한 사학자라고 지칭하나? 껄껄껄껄

아무튼 고려령(高麗嶺), 고려모(高麗貌) 같은 소리를 하는데, 고려가 왕씨 고려만을 지칭한다고 전제를 깔고 망상을 펼치는 것부터가 바보 짓이고. 고구려도 고려로 불렸고, 정작 고구려로 본격적으로 지칭되는 것은 김부식의 삼국사기부터이고.

그리고 저 글이 제시하고 있는 유조변시의도는 빨라봐야 19세기 말의 것임. 또한 조선이니 압록강이니 간체자로 기재된 걸 가지고 고려 강역을 씨부려 봐야 코메디밖에 안되고. 껄껄껄껄

고금지명대사전 같은 것도 인용하지 않는 글을 가지고 고려령이니 고려모니 하며 망상을 펼쳐봐야, 어느 사료에도 고려가 건국 초기 만주 일대에 진출했다는 얘기는 없기 때문에 소용없음. 껄껄껄껄


7. 너는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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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권46에 의하면 서북쪽은 압록강, 동북쪽은 선춘령을 경계로 하고 있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선춘령에 대해서는 중앙도서관 소장 한 61-77(고지도) 및 규장각 소장 고 4709-89-2(고지도)에 의하면 두만강 북쪽 700리에 있는 것으로 표기되어 있다고 나온다.

그림을 보면 위쪽 원안에 선춘령(지금은 윤관비로 표기)이 있으며 아래 원이 두만강 표시이다. 서북쪽 압록강을 현재의 압록강으로 볼수 있지만, 만주원류고 신라항목과 고려사 137권 철령위 및 고려사 42권에 동령부 기록에 의하면 현재의 요하가 압록강으로 불리웠음을 밝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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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까지 이런 철지난 소릴 베껴서 씨부릴지 모르겠군. 재야 사이트나 보고 있으니 이런 뻘짓을 할 수밖에.

윤관이 만주까지 차지했다는 주장을 하는 인간들은 윤관이 계지비를 세웠다는 공험진, 혹은 공험진의 선춘령이 두만강 이북에 있다는 조선시대의 기록을 근거로 고려의 영토가 만주까지 이르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정작 고려시대 기록은 이를 부정하고 있다.

고려사 윤관전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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瓘又分遣諸將畫定地界, 東至火串嶺, 北至弓漢伊嶺, 西至蒙羅骨嶺, 又遣日官崔資顥相地於蒙羅骨嶺下, 築城廊九百五十閒號英州, 火串嶺下築九百九十二閒號雄州, 吳林金村築七百七十四閒號福州, 弓漢伊村築六百七十閒號吉州, 又創護國仁王鎭東普濟二寺於英州城中.
윤관이 또 제장을 나누어 보내어 지계(地界)를 획정(劃定)하되, 동쪽으로는 화곶령(火串嶺)에 이르고, 북쪽으로는 궁한이령(弓漢伊嶺)에 이르고, 서쪽으로는 몽라골령(蒙羅骨嶺)에 이르렀으며, 또 일관(日官) 최자호(崔資顥)를 보내어 몽라골령하(蒙羅骨嶺下)에다 터를 잡아 성랑(城廊) 950간을 쌓아 영주(英州)라 이름하고, 화곶령하(火串嶺下)에 992간을 쌓아 웅주(雄州)라 이름하고, 오림금촌(吳林金村)에 774간을 쌓아 복주(福州)라 이름하고 궁한이촌(弓漢伊村)에 670간을 쌓아 길주(吉州)라 이름하고, 또 호국인왕(護國仁王) · 진동보제(鎭東普濟) 두 절을 영주성중(英州城中)에 창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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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관이 여진 정벌해서 지계를 확정했는데, 북쪽 경계가 궁한이령이란다. 그리고 궁한이령에다 성랑을 쌓고 길주라 이름했단다. 즉 윤관 9성의 북쪽 지계는 길주가 되는거다.

고려사 오연총전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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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오연총전

女眞復聚遠近諸部 圍吉州數……延寵聞之 憤然欲行 王復授鈇鉞遣之 行至公嶮鎭 賊遮路掩擊 我師大敗 將卒投甲 散入諸城
여진이 다시 원근 제부를 모아 길주를 포위하니…… 연총이 이를 듣고 분연히 가고자 하니 왕이 부월을 다시 주어 보냈다. 공험진에 이르러 적이 길을 막고 엄습하니 아군이 대패했여 장졸투갑이 흩어져 제성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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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주를 구원하러 가는 중에 공험진에서 여진에게 습격당해 대패했단다. 그럼 공험진이 길주보다 남쪽에 있다는 거 알겠지? 그리고 공험진 혹은 공험진의 선춘령에 계지비를 세웠다는 말이 없는 것도 알겠지?

그리고 윤관이 개척한 영토는 100리, 기껏해야 300리 밖에 안된다. 윤관전을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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瓘又使林彦記其事, 書于英州廳壁曰,
윤관이 또 임언을 시켜 그 일을 기록케하니, 영주청벽의 글에 이르길,

斬首六千餘級, 載其弓矢來, 降於陣前者五十千餘口, 其望塵喪魄奔走窮北不可勝數. 嗚呼, 女眞之頑愚不量其强弱衆寡之勢而自取於滅亡, 如是.
6000여명을 참수하고 그 활과 화살을 싣고 돌아오니, 진 앞에서 항복하는 자가 50000여구였으며, 먼지를 바라보고 혼을 잃어 도망쳐 달아남이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오호라, 여진의 완고하고 어리석음이 그 강약과 중과의 세를 헤아리지 못하여 스스로 멸망을 취하게 되니, 이와 같다.

其地方三百里, 東至于大海, 西北介于盖馬山, 南接于長定二州
그 지방은 300리인데, 동쪽은 대해에 이르고, 서북은 개마산에 끼였으며, 남쪽은 장주·정주 2주에 접한다.(중략)

尋拜瓘守太保門下侍中判兵部事上柱國監修國史, 瓘上表辭, 不允曰:
윤관을 수태보문하시중 판병부사 상주국 감수국사로 제배하니 관이 표문을 올려 사양하였으나 허락하지 않고 말하기를

“卿之伐女眞, 受先考之遺旨, 体寡人之述事, 身冒鋒鏑深入賊, 壘斬馘俘虜不可勝計, 而闢百里之地, 築九州之城, 以雪國家之宿恥, 則卿之功可謂多矣.”
"(중략) 경이 여진을 친 것은 선고의 끼친 뜻을 받고 과인의 계술하는 일을 체하여 몸소 칼날과 화살을 무릅쓰고 깊이 적의 진중에 들어가서 죽이고 사로잡음이 이루 헤아리지 못하며 100리의 땅을 개척하고 9주의 성을 쌓아서 나라의 묵은 수치를 씻었으니 경의 공은 가히 많다고 이르겠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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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토대로 지도에 표시하면 이 정도다.



두만강 이북설은 개풀 뜯어 먹는 소리인 것이다.

그렇다면 공험진, 혹은 공험진의 선춘령 입비설과 두만강 이북설이 왜 나왔는가?

그것은 너가 일본 찌질이라고 지칭한 이케우치 히로시가 밝힌 바 있다. 그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생긴 입비설이 고려사에 일부 유입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너는 분명 자신있게

"고려영토가 한반도라고 주장하는 것은 일본 찌질이 이케우치가 주장한 것을 우리나라 애들이 그대로 배워다가 지금까지 계속 써먹어서 그런거다"

라고 말했으니, 이것은 너가 이케우치의 글을 읽었으며 또한 그의 글을 반론할 수 있으니 이런 말을 하는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케우치가 무슨 근거로 저런 주장을 했는지, 또 어느 논문에서 그런 주장을 했는지 밝히고 이를 부정해보기 바란다. 물론 못할 것이 뻔하므로 대답 못하면 내가 설명해 줄 수도 있지만. 껄껄껄껄껄껄껄껄


8. 너는 고려 칭제건으로 나에게 덤빌 자격이 없다.

이미 너는 독도 문제로 대답해야 할 것이 남아 있다. 이것을 잊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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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울릉도에 대한 기록이다. 다음 문장이 누구에 의해 어느 전적에 기재되어 있으며, 한국어 해석은 어떻게 되는지, 또 일본측이 무엇을 반론하기 위해 이 자료를 제시하고 있는지 말해라.

東海漭漭幾萬里, 孤嶼隱隱中高起, 一山高衆峯低, 巖巒縹緲分明視.

참고로 인터넷 검색해봐야 안나오니 소용없다는 거 알아두고. 껄껄껄껄

그럼 기다리고 있을테니 너 말대로 하루종일 도망치고 있는지 두고보겠어. 껄껄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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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좆도 아는 것도 없다고 했으니 당연히 대답할 수 있어야 할텐데, 어찌 지금까지 대답이 없어?

다시 말하지만, 얼렁뚱땅 넘어가려 해도 소용없다. 고려 칭제건 이전에 이거부터 확실하게 대답해라. 뭐 재야사학이 반론 근거를 축적한다느니 같은 헛소리를 하는 것으로 봐선 불가능할 게 뻔하지만. 껄껄껄껄껄껄껄껄껄껄

그럼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대답하라구. 8개의 항목에 대해서. 하나라도 대답 못하면 이번에도 바보 취급 당하는 거 알지? 껄껄껄껄껄껄껄껄껄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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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6/13/2006 07:21:09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