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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구의 구성원 중 일본인은 10~20%라는 연구'는 세종실록에 근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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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114권 28년 10월 28일 (임술) 001 / 판중추원사 이순몽이 호패법을 다시 시행하도록 상서하였다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순몽(李順蒙)이 상서(上書)하기를,
"(중략) 신이 듣자옵건대, 고려 왕조의 말기에 왜구(倭寇)가 흥행(興行)하여 백성들이 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然其間倭人不過一二, 而本國之民, 假著倭服, 成黨作亂, 是亦鑑也。
그러나 그간의 왜인(倭人)들은 〈10명에〉 1, 2명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본국(本國)의 백성들이 거짓으로 왜인의 의복을 입고서 당(黨)을 만들어 난을 일으켰으니, 이것도 또한 감계(鑑戒)되는 일입니다.
지금 신백정(新白丁)이 평민들과 더불러 섞여 살면서 서로 당(黨)을 만들어 도적이 되어, 소와 말을 도살하는 이익으로써 귀에 젖고 눈에 익어서 보통의 일로 여기고 있으며, 혹은 혐극(嫌隙)으로 인하여 남의 집에 고의로 불지르기도 하니, 장차 방지하기 어려운 근심이 있을까 염려됩니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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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명 후기 왜구에 조선인과 중국인이 섞여 들어간 것은 사실이나, 10~20%라는 일본인의 비율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위의 세종실록기사는 그렇게 말하고 있지만, 실록의 다른 기사들은 조선인 왜구를 가리켜 가왜(假倭)라 지칭하며 분리하고 있는데도 왜구를 왜인으로 간주하여 기록한 경우가 많이 보이더군요.
가령 세종 1년의 기록을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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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4권 1년 6월 3일 (병자) 003 / 항왜 평도전이 왜구 토벌에 진력하지 않다
전번에 평도전이 대마도에 암통(暗通)하여 말하기를,
“조선이 근래에 너희들을 참혹하게 박대하니, 만약에 다시 변군(邊郡)을 침략하여 놀라게 하면, 앞으로는 반드시 대접함이 처음과 같으리라.”
하였다.
及尹得洪逐倭於白翎島, 道全自以日本人, 不肯盡力, 得洪先與賊戰, 賊已敗矣, 道全不得已助之。 且見所知倭僧, 請得洪勿殺處置, 使成達生責之。
그 후 윤득홍이 왜인을 백령도에서 쫓아내니, 도전은 자신이 일본인이라 진력하기를 좋아하지 아니하였다. 득홍이 먼저 적과 싸워 왜적이 이미 패하게 되자, 도전이 마지못하여 조력하였다. 또 도전이 왜적 중에 자기가 아는 왜승(倭僧)을 보고, 득홍에게 청하여 죽이지는 말고 처치해 주기를 원하니, 득홍이 성달생을 보내어 도전을 힐책하였다.(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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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 왜구와 후기 왜구의 구성에 대해서는 모르기 때문에 뭐라 말하기는 어렵습니다만 저 일본측의 연구라는 것은 아무래도 보고 싶은 것만 뽑아서 쓴 연구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드는군요..
하지만 일본측의 주장이 맞을 가능성도 배제해선 안될 것 같습니다. 해당 연구를 직접 본 것도 아니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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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7/19/2006 02:48:56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