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코멘트의 '역갤 블로그'를 클릭하면 해당 게시물로 이동합니다.

주제와 상관은 없지만 야율초재의 위상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는 모양입니다. 다음은 스기야마 마사아키 저, 임대희 역의 《몽골 세계제국》에서의 발췌입니다.



서기국(書記局)의 실태


카라 코룸은 제국지배의 중심이 되었다. 그곳에 모인 제국의 여러 기능은 우구데이 숙장인 몽골 무장 이르게이노얀이 이끄는 집행부의 아래에 두어졌다. 각종의 재무·행정기구도 일단 모습을 가지기 시작했다.

재무청을 겸비한 서기국에는 위글인인 칭카이를 수반으로 하여 제국서방의 재무·행정을 주로 담당하는 호라즘 출신의 마프무드 야라와치, 동방의 재무·행정을 담당하는 키탄족출신의 야율초재와 여진족 출신의 점합중산(粘合重山) 등 다종족의 간부가 모였다. 대카한의 명령은 여기를 통해서 문서화되어 제국 각지로 보내졌다.

단지 이 서기국겸 재무청을 현재의 감각에서 너무 과대시하는 것은 위험하다. 실권자인 몽골들로부터 보면, 그들은 좋든싫든, 문서와 장부의 정리를 담당하는 고용인에 지나지 않았다. 그 지위와 입장은 정말로 하잘 것 없고 위험했다. 하물며 참모 등과는 먼 존재였다. 그들이 때로 페르시아어의 사료에 바지르, 한문기록에 재상(宰相) 등이라 기록되어 있더라도 그들과 같은 존재를 그 기록자가 속해 있는 문화체계 속에서 발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과장과 얼마간의 추종을 알면서도 그 표현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담당업무의 일면을 나타내더라도 지위를 나타내는 것은 아니었다. (한문기록에도 그들을 令史, 즉 하급 사무직으로 사실을 정확하게 전하고 있는 것도 있다) 몽골들은 그들을 모두 비축치, 즉 쓰는 사람 혹은 서기(書記) 라고 불렀다.

겉보기와 현실과의 차이는 그중에서도 특히 야율초재가 극심하다. 그는 스스로 중서상공(中書相公), 영중서(領中書) 등 현실과는 먼 중국풍의 칭호를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자칭하고 있다. 조금이라도 사정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으면 그 사람 앞에서는 조금은 겸허한 중서시랑(中書侍郞)을 자칭했다. 칭기스시대에는 그는 점사(占師)의 한사람에 지나지 않았다. 우구데이시대가 되어 몽골이 화북경영에 본격적으로 나서자, 키탄왕족의 말류에서 태어난 그는 야율아해·야율독화·석말야선(石抹也先) 등을 초대로 하는 유력한 키탄계 군사집단과 연락을 취하기 쉬운 면이 있어서, 화북정책 중 특히 화북·산서·산동방면의 문교(文敎)·세수(稅收)사업을 떠맡게 되었다.

이야기나 이미지는 어쨌든, 현실의 야율초재는 조금은 거짓이라도 좋으니 허영의 직함을 좋아하는, 조금 비틀어진 인격을 가진 장본인이었다. 그러한 허세에 가까운 언동이나 저술을 하고 싶었다. 중국의 전통에서는 황태자 등 상당히 특별한 사림이 명목상의 정부대표가 되었을 때밖에 주어지지 않는 중서령(中書領) 등, 화북의 한문화인 등으로부터 알랑거림을 받는 것을 상당히 좋아했다. 또 스스로도 패거리 가운데에서 중서상공, 즉 중서의 대신이라는 접합중산과 함께 두 사람이 당당히 자칭하거나 직위가 신하로써는 가장 높다는 표현을 스스로 즐겨 사용하였다. 그러나 실은, 특히 한문화권의 사람들에게 보여준 거만함·잘난척한 태도와 비교하면, 실제로는 서글픔을 느낄 정도로 무력하였다. 그의 이름이 집사를 비롯한 페르시아어의 사서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쩔 수 없다. 기록할 가치가 없었기 때문이다. 전후 10년 정도 동안 화북의 인간과 몽골들의 사이를 호가호위처럼, 이것저것을 움직인 끝에 우구데이시대 말기와 그 사후에는 버려져, 실의 중 번민하다 죽은 초재의 모습은 그 시기의 몽골 서기국의 실태를 보다 잘 나타내는 반어적인 존재였다.

카라 코룸의 서기국에 있어서 대카한의 명령이나 지령을 문서화할 때, 한문으로의 번역은 초재나 점합중산 등이 작성했지만, 수반의 칭카이가 그 문서의 말미에 위글문자로 첨서를 하지 않으면, 모든 것은 무효였다. 그러한 의미에서 서기국에서 그 나름대로의 힘을 현실적으로 가지고 있었던 사람은 칭카이뿐이었다고 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칭카이의 직무권한은 어쨌든, 제국의 동서 모든 곳에 걸쳐 있었다. 그의 이름과 그 활동은 페르시아어·한문기록 어느 것에서나 보인다. 구육시대의 로마교황의 사절 프라노 데 칼피니 (본서 Ⅰ-4. 거인 인노켄티우스 4세 참조)의 여행보고서에도 정부수반으로 명기되어 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8/27/2006 06:31:59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