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코멘트의 '역갤 블로그'를 클릭하면 해당 게시물로 이동합니다.

땡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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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30/2006 05:45:57 PM
저게 비잔티움 제국사에 나오나=_=? 암튼 제목을 굳이 알렉시오스와 브리엔니우스의 대결이라고 한점을 보아 역갤에서 퍼간거같은데? 글고 헤룰리족은 동고트, 훈, 비잔틴한테 얻어터지다가 프로코피오스에 따르면 북쪽 스칸디나비아의 발음하기 힘든 지방으로 가서 남녀평등을 누리며 잘 살았대. 몇몇 스웨덴의 귀족가문은 자기들이 헤룰리족의 후손이라고 하기도 한다던데 학자들은 이것을 수많은 한국성씨들이 중국인들을 조상으로 하는것과 같은 의미로 해석하고 있지. 스칸디나비아로 이주한뒤 헤룰리가 어케 됐는진 정확히 모르고 노르만, 앵글로색슨, 프랑크의 연대기에 헤룰리로 추정되는 종족들이 가끔 보이긴 하지만 이게 민족명인지 아님 칭호를 뜻하는건지 밝혀지지 않았대. 애초에 헤룰리가 진짜로 민족명이 아니고 게르만족의 특정계급을 뜻하는 것이라는 설도 브리태니카에 실려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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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9/30/2006 04:11:12 PM
아참 그리고 옥울아육호님 저희까페 회원이 님의 게시물에 질문을 해왔는데요. 제가 지식이 얕아서 답변해드릴수가 없더군요.. 그래서 님에게 물어볼려고 합니다.

"헤룰리족 같은 경우는 동로마제국 근위대로 좀 뽑혔다는데.. 유스티니아누스 대제 이후론.. 헤룰리 족에 대한 기록이 없는 걸로 압니다.. 헤룰리족의 6c이후 행방은 어떻게 됐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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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30/2006 01:10:20 PM
죄송합니다.. 제가 그이전에 허락없이 퍼갔던게 네이버 지식in으로 유출된듯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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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30/2006 01:08:56 PM
boolingoo는 저 글의 출처를

'비잔티움 제국사-오스트로고르스키著'

로 밝히고 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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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30/2006 01:48:26 AM
뇌입어 지식즐의 boolingoo 쟤는 내글 은근이 마니 퍼가네? 글고 만치케르트전투는 디코랑 역갤에 이미 쓴 사람이 있어가지고 말야. 검색~! 무식자횽, 그것들은 전투명, 부대명, 인명, 지명, 민족명 등이니까 알아서 눈치껏-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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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9/29/2006 02:24:25 PM
우띠~ 무슨말인지 하나도 못알아먹겠구마잉~

다음것들 설명좀해줘잉~


만치케르트 전투
바랑인
엑스코비토스(Excobitos)
아타나토스(Athanatos)
베스티아리타이(Vestiaritae)
트라키아(Thrace)
타그마타(tagmata)
파울리키아(Paulicia)
바르다르(Vardar)
페체네그(Pecheneg)족
플랑드르(Flanders)
아르콘토폴로스(Archontopolus)
레보니온(Lebonium)
디라키온(Dyrrhachium)
비아 에그나티아(via Egnatia)
코마테노스(Chomatenos)
테살리아
에타이레이아(hetairia)
마니아카토스(Maniacato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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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무식자 to 역갤 블로그 at 9/29/2006 12:21:41 PM
'이 글'님 옥울아육호님은 06/03/14일에 이미 그글을 작성하신바 있습니다http://www.defence.co.kr/bbs/bbs.cgi?db=history2&mode=read&num=12472&page=1&ftype=6&fval=&backdepth=1

역갤에서도 06/08/09에 글을 작성하신바 있구요.
네이버에 올라온글은 옥울아육효님이 올리셨거나,
혹은 다른사람이 퍼간것으로 추정되는군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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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요네즈 to 역갤 블로그 at 9/29/2006 10:24:00 AM
'이글'님이 이야기 하신 그글은 (2006-08-10 16:52)자로 작성기록이 되어있구요

옥울아육호님이 역갤에 남기셨던 글 작성기록을보면
06/08/09/21시 38분으로 나옴니다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page=1&sn1=&divpage=9&banner=&sn=off&ss=on&sc=off&keyword=알렉시우스 vs 브리엔니우스&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61954

그리고 옥울아육호님이 남기신 디코글을 보면 2006/03/14 20시46분으로 나오는군요
http://www.defence.co.kr/bbs/bbs.cgi?db=history2&mode=read&num=12472&page=1&ftype=6&fval=&backdepth=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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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요네즈 to 역갤 블로그 at 9/29/2006 10:18:58 AM
네이버 지식in에서 퍼온거네? 펐으면 출처를 밝혀야지~

http://kin.naver.com/open100/db_detail.php?d1id=11&dir_id=110107&eid=iZ+JEmQ0pcd5AtZ44wrWAo3wi/whDG5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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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이 글 to 역갤 블로그 at 9/29/2006 08:18:01 AM
옥울아육호님! 평소 옥님 글 잘 읽고 있답니다.

그런데 말이 나와서 말인데 만치케르트 전투에 대해서도 다뤄 주시면 안될까요? 개인적으로 호기심이 많은 전투인데 국내에는 그다지 자세하게 다룬 글이 없는 것 같아서요..

부탁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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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9/29/2006 02:35:17 AM
퍼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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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10:57:50 PM
아 디펜스코리아에서 말이군요..;; 게시물 출저 표시할태니까 퍼가도될까요? 옥후다육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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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03:45:06 PM
지난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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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03:43:04 PM
지난번에 말했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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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03:38:02 PM
저기 인용서적이 어떻게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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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02:23:02 PM
아프가니스탄 북부에서 소련군에게 전설적인 승리를 거운 샤 마수드는 "판쉘 계곡의 사자" 로 유명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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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01:37:05 PM
퍼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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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11:57:56 AM
퍼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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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28/2006 12:04:07 PM
루덴도르프는 나치당 초기에 그 모습을 보입니다.

베르사이유 조약 이후 왕정붕괴와 공화국 체제로 이행되는 혼란스러운 사회속에서 국방군은 독자적인 세력으로 입지를 굳히게 됩니다. 기본적으로 독일공산당과 사회민주당을 비롯한 좌익세력을 적대하는 입장이었고 독일 혼란기에 로자 룩셈부르크를 비롯한 좌익이 반란을 일으켜 뮌헨등지에 소비에트가 선포되자 병력을 이끌고 진압하는 등 그 위세를 드러내지요.

이런 군대는 우익적 성향을 띠고 정치에도 개입하기 시작했는데 그들이 주로 지원한 정당이 민족주의 우파 정당이었고 그중 하나가 나치당입니다. 루덴도르프는 정치적으로 민족주의 우파를 지원하는 얼굴마담이었고 초창기 아돌프 히틀러의 후원자였습니다.

루덴도르프는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당이 점차 세력을 확대함에 따라 이들과 점점 깊게 관여하게 됩니다. 정관계 인사들을 소개시켜 주기도 하고 자금줄을 확보해 주기도 했으며 당시 뮌헨의 3거두인 카르, 로소브, 자이서와 함께 민족주의 우파의 큰손이었죠. 기본적으로는 히틀러가 루덴도르프의 휘하였습니다만, 점점 독일 정치상황이 안정되면서 민족주의 과격 우파의 입지가 좁아지고, 무엇보다 히틀러가 뮌헨 반란을 일으키면서 루덴도르프도 참여하게 되어 결국 쿠테타가 실패하면서 민족주의 우파가 호된 탄압을 받으면서 정치 배경에서 밀려나게 됩니다.

이후로는 들러리 역할도 못 하다가 민족주의 우파의 최강자가 된 아돌프 히틀러에 밀려 개털된 안습장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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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9/26/2006 11:53:27 PM
1971년 -> 1871년. 잘 읽었습니다.

근데 1차대전의 영웅 루덴도르프는 어떻게 됩니까?
2대겔에서 듣기로는 동부전선에서 힌덴부르크는 얼굴마담이고, 주역은 루덴도르프였다는데 그 이후에는 등장하질 않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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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彦 to 역갤 블로그 at 9/26/2006 09:23:35 PM
잘보고 갑니다 ㅎㅂ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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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나리아 to 역갤 블로그 at 9/26/2006 08:52:48 PM
잘보고 갑니다 ㅎㅂ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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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나리아 to 역갤 블로그 at 9/26/2006 08:52:48 PM
출처 밝힌대로 거기서 찾아낸 것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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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24/2006 08:49:25 PM
우와 눈화는 이거 어서 찾아냈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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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9/24/2006 08:33:50 PM
저는 이 블로그의 주인이 아닙니다. 이미 관리권을 공동으로 가지고 있고 이들 관리인들과 저는 모든 권한에서 차이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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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24/2006 08:01:59 PM
굳이 환빠만을 대상으로 장난했겠어.
하여튼...그나저나..역사블로그로 좋은 글쟁이들이 많아서 좋긴하다만,암만해도 블로그주인장 인간성이 여엉~~아니올시다로군요.많이 알고 적게 알고를 떠나 상당히 '교만'함이 넘쳐 흐르는 주인장때문에 이 블로그의 장점들을 너무나 많이 묻어버린다는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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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시 to 역갤 블로그 at 9/24/2006 07:24:58 PM
어쩐지,랄라답지 않다고 생각했다.덕분에 끝까지 읽고 역시나...했다.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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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시 to 역갤 블로그 at 9/24/2006 07:19:19 PM
필요하시다면 글도 퍼가셔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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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23/2006 11:06:20 PM
그리고 현 대진대학교에 재직중이시군요. 다음은 인터파크의 작가 소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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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병국

1941년 서울 명륜동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및 동대학원 사학과를 졸업하고, 관동대학교 교수를 거쳐 1995년부터 현재까지 대진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한국사를 폭넓게 공부하기 위해 동양사를 전공하였으며 「정강난을 전후한 송조의 고려정책」으로 석사학위를, 「요의 한족 통치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1975년 관동대학교 교수로 부임하면서 초기 발해와 신라의 동해안 국경선이 니하泥河(강릉 연곡천)였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밝혀냈는데(지금은 북한에서도 이 견해를 따르고 있다), 이때부터 발해와 고구려의 역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한국사와 분리될 수 없는 만주를 본거지로 흥망성쇠를 이루었던 북방 민족의 역사에 관심을 가지면서 말갈, 선비, 거란, 여진의 역사를 연구의 중심으로 삼았는데, 그간의 연구를 통해 파악한 것은 우리 민족이 만주 땅에 일궈놓은 고대사가 만주 북방사의 크나큰 흐름이었다는 사실이다. 현재는 동이족에 관한 연구에 몰두하고 있으며 앞으로 고조선사를 북방사의 차원에서 연구해볼 계획이다.

지은 책으로 『펼쳐라! 고구려』(2004), 『고구려인의 삶과 정신』(2002), 『동이족과 부여의 역사』(2001), 『고구려제국사』(1997), 『거란 거란인』(1992), 『발해 발해인』(1990) 등이 있으며, 『고구려제국사』는 중국에서 번역 출판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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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23/2006 10:56:16 PM
발해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병국 교수라면 예전에 《발해 발해인》이라는 책에서 아고내를 궁예라고 주장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아고내는 금 시조 함보의 형입니다.)

말씀하신 《발해제국사》라는 책에서 로직님이 언급하신 부분을 발췌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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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처럼 발달된 발해국의 음악은 일본은 물론 당과 금나라의 음악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고구려의 음악을 10부악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당나라는 발해국에서 악공·악기·악곡 등을 받아들였다. 금나라 시대가 되면서 발해국의 음악은 궁중음악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를 살펴보면 금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발해국의 음악을 연주케 하였다.(『금사』 권 39, 지 20, 음악 上, 아악, 산악)"

2. "이처럼 (발해의) 시호와 연호가 밝혀지지 않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조대기』에는 이토록 불분명한 시호와 연호가 명기되어 있어 주목된다.(중략) 『조대기』에 실린 발해국 임금의 시호는 황제란 명칭을 쓰고 있다는 것이 중국 문헌과 다른 점이다. 중국 문헌에서는 '황제' 대신에 '왕'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조대기』는 중국의 문헌에 누락된 발해국의 연호를 거의 소개한 데다가 시호로 '황제'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중국의 문헌에 누락된 묘호, 연호가 시호가 사실과 다르다고 증명할 수 없는 한, 『조대기』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중략)

『조대기』에서 대중상의 묘호가 세조이고, 시호는 진국열황제이며, 대중상의 아들 대조영의 시호는 성무고황제, 묘호는 태조였다고 한다.(중략) 따라서 대중상 때의 연호가 중광, 대조영 시기의 연호가 천통이었다는 『조대기』의 기사는 믿을 만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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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나와 있는데... 1번의 경우 금사에서 조금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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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初得宋,始有金石之樂,然而未盡其美也。(중략) 有散樂。有渤海樂。有本國舊音,世宗嘗寫其意度為雅曲(후략)
금나라 초에 송을 얻어 처음으로 금석의 악을 가졌으나 그 아름다움을 다하지 못하였다. (중략) 산악이 있고 발해악이 있고 본국(금)의 옛 음악이 있어 세종이 일찍이 그 의도(意度)를 써 아곡(雅曲)으로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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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된 것으로 보아 금나라에선 다른 나라 음악도 당연히 연주되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또 본국의 옛 음악(본국구음)이라는 말이 있는 걸로 봐서 발해악이 금황실에서 정통으로 대우받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교수는 그저 '궁중음악으로 자리를 잡아 연주케 하였다'고 했으니 틀린 말을 한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발해악이 마치 금 황실 유일의 정통 궁중음악으로 대권(?)을 차지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2번의 경우 조대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조대기의 경우 그 이름이 세조실록 3년 5월 26일(무자)에 인용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전해지지 않는 책입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그 내용이 인용되어 있긴 하지만(서교수도 여기서 인용했겠죠) 환단고기 자체가 위서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진짜라고 믿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서교수는 발해가 칭제하고 독자적 연호를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조대기를 인용한 것 같습니다만 독자적 연호를 썼다는 사실은 조대기가 아니더라도 신당서와 정혜공주 묘지 등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굳이 조대기를 인용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신당서에는 2대 무왕부터 11대 대이진까지의 9개 연호(인안, 대흥, 중흥, 정력, 영덕, 주작, 태시, 건흥, 함화)가 기록되어 있고, 정혜공주 묘지에는 보력이라는 연호가 기록되어 있는데 비해 환단고기가 인용하고 있는 조대기에는 중광, 천통, 정력, 대정, 천복, 청태 등의 연호가 더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문왕 때 사용된 보력이란 연호가 환단고기가 인용한 조대기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조대기엔 역대 발해의 지도자가 묘호를 쓰고 칭제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 가운데 3대 문왕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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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흠무 - 세종 - 광성문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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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이 사실이 아님은 정혜, 정효공주 묘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혜공주는 문왕의 둘째딸, 정효공주는 넷째딸로서 모두 부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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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主者我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之第二女也
공주는 우리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의 둘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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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주의 묘지명은 발해가 건재하던 당시 발해 왕실에서 작성한 것이므로 조작된 것이라 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혹자는 이 묘지에 황상(皇上)이라는 말이 나오므로 칭제한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황상과 동시에 부왕,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니 칭제했다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고려가 폐하, 성상이라는 말을 썼다 하여 칭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해제국사라는 책 제목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구요, 또한 1차 사료인 묘지를 놔두고 위서인, 아니 양보해서 진위 논란이 불확실한 환단고기를 왜 더 우위에 뒀는지 모르겠습니다.

협계태씨족보는 제가 보지 못한 것이라 뭐라 의견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아시는 분 계시면 말씀주셨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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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23/2006 10:34:51 PM
저도 이 책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책 사놓고 후회한 건 이 책이 처음인 것 같네요. 책이 읽기 힘들고 친절하지 않은 것도 정말 캐안습입니다. 앞으로는 이런 책을 사지 않았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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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9/23/2006 08:23:03 PM
http://upload.wikimedia.org/wikipedia/en/1/17/Talibomar.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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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물라 모하메드 오마르 사진 to 역갤 블로그 at 9/23/2006 07:43:02 PM
이미지만 퍼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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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9/23/2006 10:50:46 AM
오타 발견~!

아만의 승리에 당황한 소련은 직접 아프가니스탄을 침공, 아민을 제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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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나리아 to 역갤 블로그 at 9/22/2006 11:55:23 PM
저때 아민도 참 처절했죠. 타라키가 모든 문제를 일으킨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끝까지 모스크바에 계속해서 용서를 빌고 자신을 받아 줄 것을 요청하는 전보를 보냈죠. 소련군이 아민 보호를 명목으로 암살부대를 파견해서 대통령궁에 난입하는 그 순간에도 여기저기를 도망다니며 눈물을 흘려가며 어떻게든 소련에 용서를 빌고 자신의 아프간의 통치력을 믿어 줄 것을 최후까지 요청하다가 결국 가족에 이르기까지 모조리 사살당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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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9/19/2006 01:42:16 AM
아~ 그러니깐 인도와 파키스탄 중 선택하라는 투표 자체에 대한 반대를 한 것이군요~

답변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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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9/19/2006 01:17:48 AM
문단 구분이나 맞춤법 등의 수정은 제가 해드리고 있기 때문에 신경쓰시지 않아도 됩니다. 그리고 Blogger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이미지 업로드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으므로 imageshack을 이용하시면 될 것입니다. 회원 가입 등의 절차 없이 바로 업로드와 링크가 가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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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9/2006 12:49:53 AM
그게 아프가니스탄에 귀속되겠다거나 파슈투니스탄으로 독립하겠다는 선택
이 두개는 당시 유엔총회에서 선택권을 정할때 아프가니스탄이 주장한 이 두개의 안은
무시되고 인도와 파키스탄 선택권만 투표에 있었습니다.
인도가 이걸 유엔총회에 붙여서 다른나라들 전부다 이거에 찬성했으나
자기들 주장이 씹힌 아프가니스탄은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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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9/18/2006 10:48:29 PM
그게 아프가니스탄에 귀속되겠다거나 파슈투니스탄으로 독립하겠다는 선택
이 두개는 당시 유엔총회에서 선택권을 정할때 아프가니스탄이 주장한 이 두개의 안은
무시되고 인도와 파키스탄 선택권만 투표에 있었습니다.
인도가 이걸 유엔총회에 붙여서 다른나라들 전부다 이거에 찬성했으나
자기들 주장이 씹힌 아프가니스탄은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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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9/18/2006 10:48:41 PM
그게 아프가니스탄에 귀속되겠다거나 파슈투니스탄으로 독립하겠다는 선택
이 두개는 당시 유엔총회에서 선택권을 정할때 아프가니스탄이 주장한 이 두개의 안은
무시되고 인도와 파키스탄 선택권만 투표에 있었습니다.
인도가 이걸 유엔총회에 붙여서 다른나라들 전부다 이거에 찬성했으나
자기들 주장이 씹힌 아프가니스탄은 당연히 반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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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9/18/2006 10:48:29 PM
역갤블로그 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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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9/18/2006 09:47:14 AM
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영향력을 미치기위해 전쟁하고 미국개입까진 알았어도.=-=;
그이전에 관련한건 몰랐었는데...소련이 아프가니스탄에 목메어 침공한 이유가 있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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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요네즈 to 역갤 블로그 at 9/17/2006 10:22:42 PM
오타 지적 감사드립니다. 수정했습니다.

한국은행측은 을지문덕 외에도 정약용, 이황, 정몽주 4점의 영정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는 70년대 당시 지폐에 들어갈 영정과 관련하여 한국은행측에서 제작을 의뢰했기 때문으로 보입니다.

한국은행측에서 소장하고 있는 영정들의 경우 제작기관 역시 모두 한국은행으로 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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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7/2006 09:29:22 PM
심사임당ㅡ>신사임당
한국은행 소장? 왜 그네들이 갖고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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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우츠키 to 역갤 블로그 at 9/17/2006 09:18:27 PM
저도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속편도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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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7/2006 09:04:23 AM
글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한 점...

"아프가니스탄은 이 결정에 반발하여 유엔에 가입할 때 유일하게 반대표를 던졌다."

무엇에 대하여 반대표를 던졌다는 말인가요? 파키스탄의 유엔 가입시에 반대표를 던졌다는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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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9/17/2006 08:58:36 AM
님의 사건에 대한 다른 해석을 듣고 싶은데, 말씀하시고 싶지 않으신 모양이네요. 아쉽지만, 어쩔 수 없는 것 같네요.

그 당시 상황에 대해서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일단, 당시 왜(가야) 세력은 신라와 무언가가 틀어져서 신라와 장기적으로 전쟁을 하고 있었다고 봅니다. 백제가 고구려와 몇십년을 걸쳐 전쟁을 했듯이 말이죠. 그러던 것이 신라가 고구려의 속국이 되면서 고구려+신라 VS 백제+왜의 구도로 간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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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05:57:20 PM
사건에 대한 해석이 저와는 다르다는 말씀입니다. 문장 해석 같은게 정반대라는 것이 아니라..

위에서도 말씀드렸지만 지나가다님의 의견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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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04:47:40 PM
완전히 반대로 해석했다고 하셨는데, 사실, 그냥 다르게 해석하기도 힘든 부분이라고 생각되는데, 정반대로 해석하시다니, 그 내용이 궁금하네요. 어느 부분이 반대인지? 내용이 궁금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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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04:20:19 PM
고어핀드> 환빠들을 대상으로 한 글은 아니고, 예전에 '단군신화의 형성시기'라는 북한 논문을 읽다 남구만의 기록에 '구 삼국사에 단군의 기록이 실려있다'는 말이 있다길래 찾아보게된 것이 저 약천집입니다.

그런데 보니깐 위에서 언급된 구사(舊史)라는 말을 가지고 구삼국사라고 좀 마음대로 단정지어 내린 결론 같더군요. 구사(舊史)가 다른 사서를 지칭하거나 말 그대로 옛 역사, 혹은 옛 사서를 지칭하는 것일 수도 있는데..

아무튼 그래서 읽고 있는데, 갑자기 환국이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래서 좀 흥미롭다 싶어 예전에 올린 것입니다. 저야 환빠를 직접 상대한 경우도 없고 별다른 감정도 없습니다. 그냥 그런 사람들이 있는가 보다.. 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1512년에 간행된 정덕본 삼국유사를 바탕으로 하는 환국 조작설은 그 이전인 1452년에 이선제가 올린 상소문에 환인이라 나오는 점이나 정덕본 삼국유사의 해당 부분의 주에 謂帝釋也(제석이라 이른다)라 하여 신으로 명시한 점, 또 해당 부분의 글자가 昔有桓'国'이 아닌 昔有桓'口+土'이며 후자일 경우 口+土은 因의 이체자일 뿐이라는 점 등에 의해 완전히 부정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이도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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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03:50:33 PM
저와는 완전히 반대로 해석하고 계시는군요.. 지나가다님의 의견 존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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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03:19:08 PM
그리고, 왜와 백제의 관계는 처음엔 대등한 관계였지만, 백제가 장수왕에게 멸망한 시기를 기점으로 서서히 바뀝니다. 점점 왜 지배권력의 상당부분을 백제계가 장악하게 되며, 왜의 왕 또한 백제의 피가 섞이게 됩니다. 나중에 백제가 멸망할 시점에서는 왜가 백제 부흥에 사활을 걸 정도로 양쪽이 일체화된 모습을 보여줍니다. 당시 일본의 인질로 가 있었던 풍이 왜의 지원군을 이끌고 백제를 재건하려 했는데, 풍의 신분인 인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그런 인질이 아니였습니다. 무려 5만이나 되는 왜의 대군이 백제로 건너와 풍의 휘하에서 백제를 재건시키기 위한 부흥군이 되었습니다. 왜가 역사적으로 가장 두려워 하던 한반도의 왕조가 신라였는데, 그건 백제의 멸망이 그만큼 충격이였다는 뜻이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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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01:36:06 PM
왜가 백제와 신라를 굴복시키고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임나일본부는 그냥 허구일 뿐입니다.
다만, 일본을 정복했던 세력이 일본으로 건너가기 전에 한반도에서 지배했던 영토를 지칭하는 것이라고 보면 무리가 없습니다. 그 세력은 가야판금갑을 만든 세력이죠. 한반도는 여러 세력들이 각축을 벌였던데 비해, 상대적으로 미개했던 왜는 순식간에 정복할 수 있었고, 당연히 넓은 지배지에서 나오는 기본적인 국력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그들은 왜로 건너간 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신라와 고구려에게 정치적인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이유는 잘 모르겠고..

그리고, 한반도의 전방후원분 얘기를 하시는데, 그건 임나일본부와는 아무 상관없고, 백제의 사마왕이 왜에서 복귀할 때 데리고 온 가신들의 무덤이라고 보는게 옳습니다. 그들을 전남지역에 배치하여 그 지역을 새로운 백제의 영토로 완전히 편입시켰지요. 아시다시피 백제가 장수왕에게 멸망당한 나라를 재건국되는 과정에서 있었던 여러가지 혼란 현상 중 하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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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01:03:55 PM
이내용 1백만년전에 증산도에서써먹던 내용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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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요네즈 to 역갤 블로그 at 9/16/2006 12:03:28 PM
이거 환빠들 약올릴려고 쓴 건가 -_-? 제목하고 쓴 사람만 보고 깜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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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9/15/2006 12:56:33 PM
별것도 아닌 걸로 열등감을 느끼는가 보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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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4/2006 06:56:40 PM
잘난 척 하기 좋아하는 우리 랄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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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벌려라 to 역갤 블로그 at 9/14/2006 04:16:27 PM
정리하자면, 군의 과잉 폭력진압으로 분노한 시민들이 폭력적 저항을 하자 군이 발포했다는 이야기 같군요. 즉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군에 있다는 이야기..

하긴 조갑제씨의 기사(「공수부대의 광주사태」, 월간조선 1988년 7월호)에도 비슷한 증언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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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확대 조치는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발표되었으나 군병력이 시위진압 작전에 나선 것은 17일 오후부터였다. 이날 서울 영등포역 광장에서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전경들을 버스에 태운 채 역 앞 광장에 세워두었다. 이 버스에 타고 있었던 金모 상경(33. 현재 기자)은 이렇게 말한다.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트럭을 타고 나타나더니 한 장교가 핸드 마이크를 잡고 경고를 했다. 「즉시 해산하라, 1분 이내로 해산하지 않지 않으면 강제로 해산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광장에는 시위군중은 없었고 행인들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1분이 지나자 그 대위는 「해치워!」라고 명령했다.

수 십명의 공수부대원들은 진압봉을 휘두르면서 군중 속으로 돌진하더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어느 노인이 대어들자 5∼16명의 군인들이 그 노인에게 몽둥이질를 했다. 이건 진압이 아니고 집단 폭행이었다. 진압봉으로 머리를 안 때리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때 는 가려서 때리는 것 같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상처가 안 나도록 때리는 것도 아니었다. 30초만에 영등포 역전은 무인지경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을 입 벌리고 지켜보던 우리는 소름이 끼쳤다. 며칠 뒤 광주사태 이야기를 듣고 나는 광주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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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죽은 쪽도 시민이니 시민의 폭력적 저항을 탓하기 어렵겠군요. 그 농아였던 분과 이세종씨 등의 죽음이 이후 광주 시민들의 저항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있든 없든 먼저 시민을 때려 죽인 쪽은 진압군이 될테니 근본적인 책임이 군에 있다는 것은 변함 없을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선 naz님의 의견도 듣고 싶은데요, naz님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밝히길 꺼리시는 거 같아 좀 아쉽습니다. naz님이 무조건적인 폭도론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몇개의 의문을 제시할 뿐인데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진 않구요. 학생님의 글과 배치되는 진술이나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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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0/2006 11:56:32 PM
나즈햏은 역갤에서도 그렇고 무슨 대화의 가능성이 있는사람이 왜

늘 없습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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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카야 to 역갤 블로그 at 9/10/2006 10:03:57 AM
뭐 제가있는 소규모 근현대사 카페인데...
반드시 출처와 학생님이 작성하셨다는것을 남겨놓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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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요네즈 to 역갤 블로그 at 9/10/2006 04:51:14 AM
그때 유럽인구는 7300만명까지 증가했다는 것을 잘못 쓴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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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9/09/2006 11:22:14 PM
장도들이 너무 예쁘네요. 칠보장도의 깜찍한 꽃무늬하며...
직접 가보셔서 귀한 장도들도 보시고...좋으셨겠어요. 너무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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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요네즈 to 역갤 블로그 at 9/05/2006 09:56:55 PM
이전에 옛일본의 도구형 칼을 만드는 사람을 소개한 다큐를 볼 일이 있었는데, 그 사람도 마찬가지로 에도시대만 해도 수십명의 도제가 근무하는 커다란 공장을 운영했지만 이제는 가족끼리 거의 3명정도밖에 안되는 인원으로 문화 상품 삼아 근근히 팔아가며 사는 모습을 보여주더군요. 도구형 칼이라고는 해도 거의 지금의 커터칼 같은 용도의 조그마한 칼을 만드는 장인이더군요. 문명개화의 질풍속에 가업이 끟어질 위기도 여러 차례나 있었다니 비단 은장도 장인만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비슷한 예로 러시아의 전통적인 물끓이는 포트인 싸모바르도 현대에 와서는 옛날과 같은 위상을 잃어버리고 테팔 등의 전기포트에 그 자리를 빼앗겻다고 하더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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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9/04/2006 06:26:43 PM
역갤에 퍼날랐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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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4/2006 03:30:36 PM
그 주령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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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항거 to 역갤 블로그 at 9/03/2006 06:33:03 PM
삼국지연의에서 조조가 유비를 수행시키면서 감시케 했는데 제역할도 못하고 이용만당한 좁밥장수로 묘사한 주령과노소 중에 주령입니까?
또 나관중이 멀쩡한사람 애자만든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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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손연 to 역갤 블로그 at 9/03/2006 04:05:24 AM
예. 지금 좀 이상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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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10:23:43 PM
코맨트입력에 문제가 있는듯 합니다.....해도 안뜨다가 나중에 잔뜩올라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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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손연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10:23:07 PM
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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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10:20:01 PM
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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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10:20:01 PM
예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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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10:20:01 PM
백제가 태자를 볼모로 보냈다는 구절은 김부식이 백제와 왜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표현이 아닐까요? 볼모라지만 인질은 아닐것으로 보입니다.....외갓집 간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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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손연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08:40:24 PM
백제에 볼모로 보냈다는 표현은 김부식이 백제와 왜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한 표현이
아닐까요? 동일한 계통을 가진 혈맹국으로서 깊은 우호를 가진 나라였다고 봅니다.
인질하고는 다른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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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공손연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08:35:41 PM
장도박물관의 장도는 비매품인가 보군요. 개인적으로 가격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제작자가 생각하는 각 장도의 가치를 가격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죽절매화문낙죽장도'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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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06:46:42 PM
장도박물관의 장도는 비매품인가 보군요. 개인적으로 가격을 알고 싶었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을 돈으로 환산하려는 것은 아니고 다만 제작자가 생각하는 각 장도의 가치를 가격을 통해 알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죽절매화문낙죽장도'라는 것이 가장 마음에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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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06:46:42 PM
진짜 14세기 유럽인구가 7천명밖에 안되었나요? 놀랍네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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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궁금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04:46:51 PM
흠,, 마저 쓰겠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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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물루스 to 역갤 블로그 at 9/02/2006 03:00:52 PM
글이 중간에 끊겼군요. 재미있게 읽다 중간에 끊어져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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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01/2006 10:46:0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