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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하자면, 군의 과잉 폭력진압으로 분노한 시민들이 폭력적 저항을 하자 군이 발포했다는 이야기 같군요. 즉 사태의 근본적 책임은 군에 있다는 이야기..

하긴 조갑제씨의 기사(「공수부대의 광주사태」, 월간조선 1988년 7월호)에도 비슷한 증언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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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확대 조치는 1980년 5월 18일 0시를 기해 발표되었으나 군병력이 시위진압 작전에 나선 것은 17일 오후부터였다. 이날 서울 영등포역 광장에서 시위가 있을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한 경찰은 전경들을 버스에 태운 채 역 앞 광장에 세워두었다. 이 버스에 타고 있었던 金모 상경(33. 현재 기자)은 이렇게 말한다. 『갑자기 공수부대원이 트럭을 타고 나타나더니 한 장교가 핸드 마이크를 잡고 경고를 했다. 「즉시 해산하라, 1분 이내로 해산하지 않지 않으면 강제로 해산시키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때 광장에는 시위군중은 없었고 행인들만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1분이 지나자 그 대위는 「해치워!」라고 명령했다.

수 십명의 공수부대원들은 진압봉을 휘두르면서 군중 속으로 돌진하더니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두들겨 패는 것이었다. 어느 노인이 대어들자 5∼16명의 군인들이 그 노인에게 몽둥이질를 했다. 이건 진압이 아니고 집단 폭행이었다. 진압봉으로 머리를 안 때리도록 교육을 받는다고 하지만, 그때 는 가려서 때리는 것 같지 않았다. 기술적으로 상처가 안 나도록 때리는 것도 아니었다. 30초만에 영등포 역전은 무인지경으로 변해버렸다. 이것을 입 벌리고 지켜보던 우리는 소름이 끼쳤다. 며칠 뒤 광주사태 이야기를 듣고 나는 광주시민들이 들고 일어난 것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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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죽은 쪽도 시민이니 시민의 폭력적 저항을 탓하기 어렵겠군요. 그 농아였던 분과 이세종씨 등의 죽음이 이후 광주 시민들의 저항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있든 없든 먼저 시민을 때려 죽인 쪽은 진압군이 될테니 근본적인 책임이 군에 있다는 것은 변함 없을 듯 합니다.

이에 대해선 naz님의 의견도 듣고 싶은데요, naz님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을 밝히길 꺼리시는 거 같아 좀 아쉽습니다. naz님이 무조건적인 폭도론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단지 몇개의 의문을 제시할 뿐인데 큰 문제가 생길 것 같진 않구요. 학생님의 글과 배치되는 진술이나 근거가 있는지 궁금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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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10/2006 11:56:32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