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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사에 대해 잘 모르지만 서병국 교수라면 예전에 《발해 발해인》이라는 책에서 아고내를 궁예라고 주장하셨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아고내는 금 시조 함보의 형입니다.)

말씀하신 《발해제국사》라는 책에서 로직님이 언급하신 부분을 발췌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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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처럼 발달된 발해국의 음악은 일본은 물론 당과 금나라의 음악 발전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고구려의 음악을 10부악의 하나로 자리매김한 당나라는 발해국에서 악공·악기·악곡 등을 받아들였다. 금나라 시대가 되면서 발해국의 음악은 궁중음악으로 자리를 잡는다. 이를 살펴보면 금나라는 건국 초기부터 발해국의 음악을 연주케 하였다.(『금사』 권 39, 지 20, 음악 上, 아악, 산악)"

2. "이처럼 (발해의) 시호와 연호가 밝혀지지 않게 된 경위는 알 수 없으나 『조대기』에는 이토록 불분명한 시호와 연호가 명기되어 있어 주목된다.(중략) 『조대기』에 실린 발해국 임금의 시호는 황제란 명칭을 쓰고 있다는 것이 중국 문헌과 다른 점이다. 중국 문헌에서는 '황제' 대신에 '왕'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중략) 『조대기』는 중국의 문헌에 누락된 발해국의 연호를 거의 소개한 데다가 시호로 '황제'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중국의 문헌에 누락된 묘호, 연호가 시호가 사실과 다르다고 증명할 수 없는 한, 『조대기』의 기록이 사실이 아니라고 부정하기는 힘들 것이다.(중략)

『조대기』에서 대중상의 묘호가 세조이고, 시호는 진국열황제이며, 대중상의 아들 대조영의 시호는 성무고황제, 묘호는 태조였다고 한다.(중략) 따라서 대중상 때의 연호가 중광, 대조영 시기의 연호가 천통이었다는 『조대기』의 기사는 믿을 만하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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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고 나와 있는데... 1번의 경우 금사에서 조금 찾아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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金初得宋,始有金石之樂,然而未盡其美也。(중략) 有散樂。有渤海樂。有本國舊音,世宗嘗寫其意度為雅曲(후략)
금나라 초에 송을 얻어 처음으로 금석의 악을 가졌으나 그 아름다움을 다하지 못하였다. (중략) 산악이 있고 발해악이 있고 본국(금)의 옛 음악이 있어 세종이 일찍이 그 의도(意度)를 써 아곡(雅曲)으로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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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로 된 것으로 보아 금나라에선 다른 나라 음악도 당연히 연주되고 있었던 걸로 보입니다. 또 본국의 옛 음악(본국구음)이라는 말이 있는 걸로 봐서 발해악이 금황실에서 정통으로 대우받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서교수는 그저 '궁중음악으로 자리를 잡아 연주케 하였다'고 했으니 틀린 말을 한 부분은 없는 것 같습니다. 다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발해악이 마치 금 황실 유일의 정통 궁중음악으로 대권(?)을 차지한 것처럼 오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듭니다.

2번의 경우 조대기를 인용하고 있는데 조대기의 경우 그 이름이 세조실록 3년 5월 26일(무자)에 인용되어 있긴 하지만 실제로는 전해지지 않는 책입니다. 환단고기 태백일사 대진국본기에 그 내용이 인용되어 있긴 하지만(서교수도 여기서 인용했겠죠) 환단고기 자체가 위서로 간주되고 있기 때문에 그 내용이 진짜라고 믿기는 힘든 상황입니다.

그리고 서교수는 발해가 칭제하고 독자적 연호를 썼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조대기를 인용한 것 같습니다만 독자적 연호를 썼다는 사실은 조대기가 아니더라도 신당서와 정혜공주 묘지 등에 기록되어 있으므로 굳이 조대기를 인용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도 듭니다.

다만 신당서에는 2대 무왕부터 11대 대이진까지의 9개 연호(인안, 대흥, 중흥, 정력, 영덕, 주작, 태시, 건흥, 함화)가 기록되어 있고, 정혜공주 묘지에는 보력이라는 연호가 기록되어 있는데 비해 환단고기가 인용하고 있는 조대기에는 중광, 천통, 정력, 대정, 천복, 청태 등의 연호가 더 기록되어 있긴 하지만 확인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문왕 때 사용된 보력이란 연호가 환단고기가 인용한 조대기엔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조대기엔 역대 발해의 지도자가 묘호를 쓰고 칭제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 가운데 3대 문왕을 살펴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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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흠무 - 세종 - 광성문황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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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것이 사실이 아님은 정혜, 정효공주 묘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정혜공주는 문왕의 둘째딸, 정효공주는 넷째딸로서 모두 부친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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公主者我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之第二女也
공주는 우리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大興寶曆孝感金輪聖法大王)의 둘째 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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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공주의 묘지명은 발해가 건재하던 당시 발해 왕실에서 작성한 것이므로 조작된 것이라 할 수 없음은 물론입니다. 혹자는 이 묘지에 황상(皇上)이라는 말이 나오므로 칭제한 증거라고 주장하기도 하나 황상과 동시에 부왕, 대흥보력효감금륜성법대왕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니 칭제했다고 할 수 없음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는 마치 고려가 폐하, 성상이라는 말을 썼다 하여 칭제했다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발해제국사라는 책 제목부터 문제가 있다고 생각되구요, 또한 1차 사료인 묘지를 놔두고 위서인, 아니 양보해서 진위 논란이 불확실한 환단고기를 왜 더 우위에 뒀는지 모르겠습니다.

협계태씨족보는 제가 보지 못한 것이라 뭐라 의견을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 아시는 분 계시면 말씀주셨으면 좋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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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9/23/2006 10:34:51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