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31/2006 02:03:50 AM
랄눈화 글 어케 지우3? 오류나서 한번 더 올렸더니 둘다 올라왔네?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0/30/2006 09:18:28 PM
오늘도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 ^^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0/30/2006 09:24:23 AM
이거 퍼가도 될까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28/2006 07:28:19 PM
알방(전경이 알류미늄 방패를 부르는 은어) 무겁습니다. 엄청 무겁습니다. 오죽하면 기합을 줄 때 방패를 들고 자세를 잡게 하는 것이 있겠습니까?ㅠㅠ
그걸로 훈련을 할 때는 죽는 줄 알았습니다. 후덜덜..
보통 알류미늄 방패는 격한 시위를 최전선에서 막는 애들이 씁니다. 서울 특수기동대처럼 시위대를 반으로 쪼개는 애들은 종이방패를 쓰더군요. 종이방패를 휘두를 때 나오는 팔락거리는 소리의 압박이 장난이 아닙니다. 원래 걔네들이 키도 크고 훈련도 빡세서 소리가 크기는 하죠....
-- 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0/28/2006 08:57:00 AM
����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0/28/2006 08:40:14 AM
����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0/28/2006 08:40:06 AM
����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0/28/2006 08:40:06 AM
흰자위가 보일때 쏜다는건 상대방도 비슷한 무기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지 접근전용무장만을 가진 상대라면 명중률에 상관없이 100m밖에서부터 사격을 가해야죠. 머리가 조금이라도 정상적인 장수라면 자신의 단점을 최대한 줄이고 장점을 최대한 살리는 방향으로 전략을 짜고 거기에 성공한 장수를 명장이라고 하는건데 아군에 유리한 상황을 버리고 적에게 유리한 상황까지 일부러 만들어준다면 이기길 포기한 짓거리죠...
-- Posted by ㅁㄴㄴ to 역갤 블로그 at 10/27/2006 07:03:12 PM
아니 그래서 인터넷에서 급조한 거라고 말했을텐데요?
명나라F4찌질이 시절에는 황제가 포로로 잡히기도 했지만
초기에는 아주 훨훨 날았지 말입니다
영락제의 북벌군 모르삼? 그때 몽골군 존나 캐발렸는데
응? 내말이 뭐가 잘못됐지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0/22/2006 07:29:42 PM
잘 읽었습니다.
-- 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0/23/2006 09:04:03 AM
기대되는 연재군요 ㅎㅎ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0/21/2006 06:13:01 PM
과제용으로 쓰느라 여기저기서 짜집기한 조잡한 글입니다. 퍼가고 뭐할것도 없는데...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0/20/2006 10:18:06 PM
이글을 제까페로 퍼감 혹은 링크및 트랙백을 해도 될런지요? http://cafe.naver.com/booheong.cafe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20/2006 09:44:48 PM
제가 학교갈때 하루시간표를 다 챙긴 가방의 무게가 대략 5kg 이 넘었는데.. 로마방패가 그무게의 2배라는걸 생각하니 어느정도인지 실감이 가는군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20/2006 09:41:20 PM
제가 학교갈때 하루시간표를 다 챙긴 가방의 무게가 대략 5kg 이 넘었는데.. 로마방패가 그무게의 2배라는걸 생각하니 어느정도인지 실감이 가는군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20/2006 09:41:20 PM
예. 다만 처음 이 글을 워드에 입력할 때 원문 그대로 한자로 입력했는데 '계단'이라고 적어야 단번에 한자변환이 되었고 이후 다시 한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그대로 계단이 되어버렸습니다. 거란으로 바꿀까 생각도 했으나 역사에 관심 있으신 분들이라면 글안·계단 같은 말도 아실 것으로 생각되어 그냥 놔두었습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20/2006 10:08:50 A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메인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 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0/20/2006 10:33:58 AM
契丹은 우리말로 거란이라고 읽습니다 ^^
-- Posted by condeksas to 역갤 블로그 at 10/20/2006 03:05:37 AM
거시기 일본 막말에 애덜이 갑옷은 커녕 천쪼가리만 입고 방패도 없이
그냥 대검 하나만 가지고 쌈박질 한 것은 방패나 갑옷이 없이 싸우는
기술이 개발되었거나 어떤 장점 같은게 발견되어서인가요??
아니면 그냥 서유럽 혁명 이전에 귀족들이 결투할때 그냥 검하나 들고 하듯이
지들 꼴리는 낭만 때문에 그랬던 것인가요??
이거 정말 예전부터 궁금했던건데 글 읽다가 문득 생각이 나서 씁니다.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11:21:31 PM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05:58:01 PM
밀가루로는 무엇을 만들어 먹었을까요? 이때도 만두와 면류음식이 있었나요? 삼국지연의에는 제갈량이 만두를 발명했다고 했는데 실제로는 언제부터 만두를 먹었나요?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04:05:56 PM
일본의 방패도 궁금하네요
-- Posted by 일본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02:02:46 PM
드디어 올려주셨군요 감사합니다 ^^
히틀러의 저 약속은 그뒤 폴란드를 침공하기전에 했던 단치히 제안을 떠오르게하는군요...
(1) 단치히는 자치도시로서 독일제국에 귀속된다 (2) 독일은 독일과 단치히를 연결하는 도로와 철도부설권을 얻으며, 이들 시설에 대해서는 폴란드 정부가 단치히 통로에 대해 행사하는 것과 동등한 치외법권적 권한을 누린다.
이에 대해 독일은;
(1) 단치히에 대한 폴란드의 모든 경제적 권리를 인정한다. (2) 폴란드가 원하는 목적과 규모의 자유항구를 단치히에 보장한다. (3) 독일과 폴란드의 현재 국경을 받아들이며 최종적인 것으로 간주한다. (4) 본인의 생애를 초월할 유효기간 25년의 불가침 조약을 폴란드와 체결한다. (5) 독일은 폴란드, 헝가리와 공동으로 슬로바키아의 독립을 보장하며 이 지역에 대한 독일의 일방적 헤게모니를 포기한다.
이 제안만보면 히틀러의 주장이 설득력이 있어보이지만 역시 독재자의 말은 믿을 수가 없군요..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11:24:54 AM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일년이 훌쩍 지나 재개된 연재군요
-- Posted by 뇌내망상파펜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01:44:28 AM
죄송합니다. 미리 표시를 해뒀어야 하는데.. 앞으론 이런 불상사가 생기지 않길...
다른 분들도 조심해주세요.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01:22:22 AM
아... 어쩐지.. 읽으면서도 긴가민가했더니... 낭설이었군요ㅠ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01:06:42 AM
미칠 듯이 답변을 썼는데 날아가 버리고 말았군요...-_-
일단 나무방패가 박살이 나면서 충격을 흡수하여 인체에 피해가 가지 않도록 한다는 말은 방패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낭설입니다. 방패는 손에 들고 신체에 직접 붙이거나 하지 않기 때문에 방패에 도끼가 작렬한다고 해서 그 충격이 신체로 갈 이유가 없으며, 오히려 방패를 몸에 딱 붙이는 것은 잘못된 사용법입니다. 방패는 오히려 생각 이상으로 능동적으로 움직이며 방어를 하도록 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목재 방패가 심한 공격을 받을 경우 부서지는 것은 의도된 것이 아니라 그저 재질상의 한계 때문에 파괴되는 것입니다. 만일 방패가 파괴되는 것이 저러한 방어상의 이유였다면, 방패의 방어력은, 개인용 방패에서만큼은 적절한 수준에서 타협을 보았겠죠. 하지만 방패의 방어력은 계속해서 강화되는 수순을 거쳤습니다.
중세 유럽 군사 문화의 직접적인 선조가 되는 스칸디나비아 바이킹들의 무장을 보면 처음에는 판자를 짜맞춘 방패의 중심에 Steel Boss라는 손을 보호하는 둥그런 돔같은 부품을 단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이것이 나중으로 갈수록 가죽을 덮어씌우고, 테두리에 철판을 두르고, 결국 나중에는 방패 재질 전체가 철제로 바뀌는 변화를 겪게 됩니다. 만일 방패가 그러한 방어 시퀸스를 가지고 있었다면 이러한 방패의 재질 개량 등은 없어야 했겠죠.
또 방패가 파괴된다는 것은 그만큼 방어 범위가 줄어든다는 의미입니다. 방패는 상대의 공격으로부터 완전한 프로텍션을 제공받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며 방패가 파괴될수록 자신의 몸이 드러나게 되고 자신이 사망할 가능성도 높아집니다.
결국 방패의 개념조차 이해하지 못한 완전한 낭설인 것이죠.
-- 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12:51:33 AM
이거 역갤에도 올라가지 않은 거죠? 음님 말씀듣고 검색해봤더니 과연 9편까지만 있더군요. 아무튼 잘 읽어보겠습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9/2006 12:51:30 AM
어디서 주워들은 바로는 나무 재질의 방패의 경우 메이스와 같은 무기의 공격을 받았을때 부서지면서 충격을 흡수해, 인체에 피해를 안준다고 하는 말을 들었었습니다. 하지만, 금속재질의 방패의 경우 나무 방패처럼 쉽게 깨지지 않을텐데 메이스와 같은 타격용 병기의 공격을 받으면 그 충격이 인체에 바로 전해지지않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네요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8/2006 11:15:33 PM
뭐 숫자는 둘째치고...재래식 무기를 든 60만과 25만보다 소총과 근대식 화기를 지닌 40만은 분명히 차이가있다고 생각됩니다..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18/2006 05:36:46 PM
숫자는 둘째치더래도.. 재래식 무기를 든 대군과 근대식 화기를 든 대군은 어느정도 차이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런식의 가정은 마케도니아 이후 근 2천년간 군장비 이외에 다른 모든 군사기술이 하나도 발달되지 않았고, 알렉산더를 모른다는 전제하에 가능할법 싶습니다..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18/2006 05:40:23 PM
귀찮아서..(퍼퍽)
-- Posted by 수천성 to 역갤 블로그 at 10/18/2006 03:24:50 PM
����Ƽ�..(��)
-- Posted by ��õ�� to 역갤 블로그 at 10/18/2006 03:24:23 PM
좋은 리플들 감사합니다. 역블에서 보기드문 활성화네요. 우효효━(˚∀˚)━!
-- 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10/18/2006 01:32:03 AM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10:31:00 PM
로마의 경우 공화정시대에는 정강이받이를 좌족에 부착했지만 제정시대에는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로마의 정강이받이는 오크리어(ocrea)라고 합니다.
-- Posted by 오크리어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10:00:35 PM
강희대제> 세번째 사진만 X-box.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9:20:29 PM
cc
-- Posted by ccc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6:38:16 PM
알렉산더였다해도;;; 프러시아,프랑스,영국의 40만이넘는 병력을 어찌감당하리오
-- Posted by 로빈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6:31:31 PM
사진 몇개에 엑박이 뜨는데 저만그런가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5:30:38 PM
이거 고에이 게임인 신장의 야망에 나오더라는.. 정치력 향상 아이템
-- Posted by 오다노부나가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4:11:40 PM
그리고 갑옷의 무게를 지탱하기 위해 착용했다는 것이 아니라 방패와 갑옷 등의 무게가 무거웠기 때문에 최대한 몸을 가볍게 하기 위해 정강이받이를 한쪽만 썼을 가능성도 고려해야 될 것 같다는 뜻입니다.
로마인의 실용주의적 사고방식을 고려해볼 때 기동성은 살리되 꼭 필요한 방어력은 갖추기 위해 정강이받이를 하나만 착용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 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3:44:54 PM
아 저 청자 이름이 마황반이었군요! 얼마전 KBS에서 방영한 다큐멘터리 도자기에서 저 이야기가 나온적이 있었는데... 정말 비취를 깍아서 만든것처럼 아름답네요.
마황반 이야기를 들으니 이 이야기가 생각나네요.
무굴제국의 자한기르 대제는 중국의 자반을 굉장히 아꼇는데, 어느날 담당자가 실수로 이 자반을 깨뜨렸고, 대노한 대제는 담당자에게 태형을 가하고 재산을 몰수하였으나 그 자반을 잊을 수가 없어서 중국 사정에 밝은 옛 책임자를 불러 몰수한 재산의 1/4을 돌려주고 경비를 주면서 옛날과 똑같은 자반을 구해오라고 명하고, 임무를 완수하지 못할 경우 돌아올 생각도 말라고 하지요. 마침내 담당자는 페르시아의 국왕이 그것과 똑같은 자반을 갖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거액을 주고 그 자반을 손에 넣었다는 동화같은 이야기인데...
암튼 이전에도 느낀거지만, 마황반의 색깔이 참 곱군요. 금만 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그 자체도 아름다울 수 있겠지만...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3:45:02 PM
(양쪽 다 정강이받이를 쓰는 경우입니다)
-- 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3:38:25 PM
왼쪽 다리가 맞습니다. 왼손에 방패를 들고 돌격할 때 주로 왼발이 앞으로 나간 상태에서 몸을 이끌게 되고 이와 동시에 오른쪽 다리는 뒤로 물러나기 때문에 왼쪽 정강이가 공격을 받을 가능성이 더 높아집니다. 방패를 왼손에 들고 있으니 왼쪽 정강이가 더 안전할 것 같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은 거죠.
참고로 로마에서 정강이받이는 이후로도 주로 지휘관이나 의장용으로 사용되고 실전용으론 환영을 받지 못합니다.
-- 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3:34:06 PM
앵? 방패를 왼손으로 잡으니 왼쪽다리는 가려지지만 오른쪽다리가 훤히 드러나서 오른다리에 정강이받이를 했다고 알았는데 왼쪽다리였어-_-? 그것도 갑옷의 무게를 지탱하기위해 착용했다고?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3:09:04 PM
-- 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2:56:05 PM
롬파이아가 뭔가요? 검색해봐도 사진을 찾을 수가 없네요..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11:37:04 AM
절강성에서 나온 고월주요 같은 것이 최초의 청자인줄 알았는데 그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그리고 동하풍이면 산서성일 겁니다.(山西省 夏縣 東下馮)
그런데 중국의 청자라면 역시 남송의 청자 다완인 마황반(馬蝗絆)이 저로서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색깔은 도저히 현실의 것 같지가 않더군요.
↑클릭하면 원래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인조이재팬에서 일본인들의 소개(실은 고려청자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기를 누르려고 나온 것이지만)로 알게 된 것인데 확실히 이 색깔은 뭔가 압도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의 소개를 인용해보면,
도쿄 국립박물관의 중요문화재인 「청자다완(마황반)」입니다. 남송의 용천요(龍泉窯)의 작품입니다. 이 다완은 다이라노 시게모리가 송나라의 육왕산에 황금을 기부했을 때 주지인 불조(仏照) 조사로부터 답례로서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후 무로마치 시대의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소지하던 중 균열이 생겼기에 같은 다완을 입수하고 싶다고 하여 중국에 보냈는데, 이미 명대의 중국에서는 이런 명품 청자는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꺾쇠를 붙여 돌려보내왔습니다. 이 꺾쇠를 큰 누리(蝗 메뚜기의 일종)로 보고는 「마황반(馬蝗絆)」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마황반이 고려청자의 가치를 깎아내린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중국인의 인식이 궁금해서 중국웹을 서핑해보았더니 이런 글이 있더군요.(원문은 여기를 클릭)
고려청자의 발전 및 중국청자 제요(諸窯)와의 관계
동아시아의 고대 자업(瓷業)의 발전 가운데, 고려청자가 중국 주변국가 가운데 가장 일찍 질과 양이 가장 뛰어난 청자를 생산하였다. 이로 인해 세계 자업 사료 가운데서 중요 지위를 점유하였고, 또한 높은 명성과 칭예를 누리고 있다. 남송의 《수중금(袖中錦)》에 의하면, 당시 남송의 천하제일의 물품 중 고려비색이 기록되어 있으니 곧 고려청자이다.
이 시기의 자기의 고향인 중국은 자업의 생산이 전례 없는 발전에 들어갔던 양 송(宋)의 번영기로서 신흥 요장(窯場)이 우후죽순처럼 전국에 창건되었는데, 명요(名窯)와 명자(名瓷)가 끊임없이 나타나 신생의 자요체계도 형성된다. 그러나 정확히 그 때 도자기의 발상지인 중국이 고려비색을 천하제일로 찬송하여 다른 곳에서 흉내내지만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남송 고문헌에 있는 중국인의 이런 종류의 칭송은 응당 고려청자 중세기의 고봉 발전기의 진실한 면모의 여실한 기재이다.
윗 글에 달린 리플들을 보니 별다른 이견이 없더군요. 역시 고려청자는 중국인도 인정하는 우수한 우리의 문화재인 것 같습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9:45:26 A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 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9:13:28 AM
으음.. 로마군이 양쪽 다 정강이받이를 미착용하진 않았을텐데요. 가령 기원전 160년경의 로마군의 장비는 방패(scutum)과 흉갑, 그리고 왼쪽 정강이에 착용하는 정강이받이였죠. 이마 이 당시 로마군이 왼쪽 정강이에만 받이를 착용한 것은 방패 무게도 한 원인이 된 것 같습니다. 나무판 두 개를 붙인 다음 가죽과 캔버스로 덮은 바람에 무게가 거의 10kg에 육박했으까요.
실례로 이집트(Kasr El Harit)에서 발견된 로마군의 방패는 높이 1.28m에 너비 63.5cm이고 재질이 자작나무인데, 가장 얇은 곳의 두께가 1.2cm, 가장 두꺼운 곳이 2.2cm였으니 가히 그 무거움을 상상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여기에 펠트로 겉을 덮었고 손잡이도 매우 길어 어느 높이에서든 잡을 수 있었으며 모서리는 쇠로 테두리가 둘러져 있었으니 로마군이 받는 무게는 엄청났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트라시메네 호수 전투에서 로마군이 헤엄쳐 도망치려다 갑옷의 무게 때문에 익사한 것을 보면 갑옷의 무게도 엄청났음을 알 수 있죠.
또한 이 당시의 로마군은 시민이 자신의 무기를 직접 구하고 책임져야 했기 때문에 병사 개인의 재정적인 문제도 고려되어야 할 것 같습니다. 이런 상황은 이후로도 변화가 없다가 기원전 100년전부터 조금 달라져서, 고위 장교들이 양 정강이에 모두 받이를 착용하기 시작합니다.
참고로 검투사의 경우 트라키안(Thracian)이 양 다리에 긴 정강이받이를, 세쿠토르(Secutor)는 한쪽 다리에만 정강이받이를 사용했는데, 나머지 검투사들은 대부분 정강이받이를 착용하지 않았습니다.
-- 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8:02:32 AM
충성용감단결님 말씀대로 초접근전이 이루어져서 스탠스가 무릎 이하를 공격하기 곤란한 탓도 있었겠고 또 방패 크기를 보면 무릎 보호대가 없어도 될만큼 충분히 큰 것 같습니다. 아마 이런 이유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조선군을 보면 장군도 무릎 가리개를 하지 않고 허벅지 부분의 갑옷으로 모두 가리는 것 같던데 이건 왜 그럴까요? 말타니깐 무릎이 그대로 노출되던데.. 중국도 그런 것 같고..
그리고 마지막~
히틀러 총통이 되다 10편 올려주세요.. T.T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7:03:28 AM
앵? 난 방패에 안가려진 오른다리에 정강이받이를 했다고 알았는데 아닌가-_-?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0/16/2006 11:54:15 PM
다른부분은 제외하고, 고구려 수사와 한국어 수사의 불일치 부분만 부연설명 하겠읍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찾아낸 수사는 4가지 정도로 압축됩니다. 밀,우차,난은,덕 입니다.(자료가 적어 힘들게 찾았을 겁니다) 물론 한국어보다는 일본어 수사에 같은것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잘못 판단하고 있는 부분이 있는것 같읍니다. 실제 수사라고하는 것은 생존에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합니다. 지리적으로 교류가 빈번한 지역에서는 , 다양한 부족들의 수사가, 마치 공용어처럼 혼합되어 사용되게 마련입니다. 그렇지만, 영향력있는 지배층들은 나름의 특권의식 때문에 대중적언어가 아닌, 자신의 뿌리가되는 언어를 공식언어로 사용하지요.
영국에서 귀족들이 프랑스어를 사용했고,중국도 이민족의 지배를 받았을 당시, 당연히 공식언어는 지배층의 언어였읍니다. 그러나, 절대다수의 언어를 변화시킬수가 없어서 , 지배층언어가 피지배층 언어에 수렴되었읍니다 (중국어내의 만주어.., 현재 한국어 안의 한자식수사..일본어식 수사..)
혹시, 인구어 제어의 수사를 두루 알고계신분이라면, 순수하게 그들고유의 수사를 지키고 있는 나라가 별로 없다는 것을 알고있읍니다. 라틴어,희랍어,아리안어 등등이 상호간 몇개씩 주고 받고 있읍니다. 그중에 1~3까지의 숮자는 거의 통일되다시피 되어 있읍니다. 특별히 고립된 지역에서 폐쇄적으로 살던 민족이 아니라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볼 수 있읍니다.
그러므로, 일본어 수사와 한국어 수사가 다르다고, 전혀 관련이 없다라고 주장한다면, 다소 무리가 있읍니다. 일본어와 한국어는 문법적구성과 접속사 조사 등에서 유사성이 굉장히 많고, 현재까지 공통어휘 5000개 정도 발굴되어 있읍니다. 수사 4개 틀린것때문에, 나머니 5000개를 매장할 수야 없지않겠읍니까?
그러나, 일본어는 어미변화도 단순하고, 음운체계도 단조롭습니다. 그 이유는 결국 고구려나 백제계 종족이 들어가서 언어를 전파하였지만, 그 이전부터 살고있던 토착민(폴리네시안)들의 언어구조나 음운체계와 순치 되었기 때문 이라고 생각됩니다. (한국 김치가 일본가면 기무치가 되고, 중국 짜장이 한국오면 한국식 짜장이 됩니다)
참고적으로 , 토착언어에 외세어가 유입되었을 때, 가장 쉽게 변화는 어휘의 1순위는 수사이고, 그 다음은 생활용어이고 , 가장 변화하기 어려운 어휘는 가족에 대한 호칭이고, 그다음은 일상중 사용 빈도수가 아주 낮은 어휘라고 봅니다.
-- Posted by 땜장이 to 역갤 블로그 at 10/16/2006 01:27:34 AM
이거...저자가 장비차이를 너무 간과한것같은데..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15/2006 10:46:40 AM
독일인이 보면 웃겠군..
-- Posted by 독일인 to 역갤 블로그 at 10/15/2006 06:32:58 AM
알렉산드로스가 누군가 했더니 알렉산더였군..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5/2006 04:52:51 AM
옥님 감사합니다~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0/14/2006 06:29:03 PM
이미 집필자들이 죽긴 했지만 Trevor Nevitt Dupuy의 THE MILITARY LIFE OF ALEXANDER THE GREAT하고 Theodore Ayrault Dodge의 Alexander가 추천할만하3. 다만 도지는 워낙에 유명하다보니 도지가 쓴 책들 대부분은 재출판됐지만 두파이의 책은 모 그냥 그런 책이고 나온지도 오래되놔서 구하기가 어려울거3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0/14/2006 06:26:50 PM
옥님! 알렉산드로스에 대해 자세히 알고 싶은데 추천하실만한 서적이나 웹사이트가 있다면 가르쳐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옥님께서 따로 글 써주신다면 더욱 좋구요.(백골난망이겠습니다)
오늘도 옥님 글 잘 보고 가는 독자가...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0/14/2006 05:32:01 PM
저도, 고구려와 말갈관계에 있어서는 말갈이 고구려와 형제관계(? 몇몇사람들의 말이기는 하지만)였기 보다는 고구려에 복속되어있던 세력으로 보는게 옳다고 보여집니다.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3/2006 08:50:41 PM
글 제목을 적지 않으면 목록에 안 뜸...
-- Posted by 랄랄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3/2006 05:24:41 PM
글 제목을 안 쓰면 목록에 안 뜸..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3/2006 05:28:10 PM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 이 괄호를 쓰면 코멘트 입력이 안되는군요. 존재하지 않는 html 태그로 인식하여 Blogger측에서 거부하여버립니다. 아래처럼 <>를 쓰지 않으니 입력이 되는군요. 다음은 요동태수님의 글입니다.
말갈족은 일단 고구려인과 다른민족인것 같습니다.
『신당서』 "발해는 본래 속말말갈로서 고구려에 붙은 자"
고구려멸망이후에 본래의 고구려인들은 대부분 돌궐,당,신라로 흡수된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갈인들이 후계국가 발해의 건국을 주도하는 것이지요. 말갈은 둘로 나눠져서 한쪽은 고구려를 계승한 발해인이 되어서 나중에 고려에 흡수되고 다른쪽은 발해에 대적했던 흑수말갈계열로서 여진인들이 된것 같습니다.
정확히는 발해멸망후 일부는 부흥운동을 펼치며 저항하다 고려로 넘어가고 나머지는 독립성을 띤 발해변방의 지방말갈인들쪽으로 흡수된 것으로 보입니다.
저는 발해인과 흑수말갈인을 비교하자면 고대의 그리스인과 마케도니아인의 관계와 같은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들은 같은 종족이지만 그리스인은 남하하여 그리스문명을 이루고 마케도니아인은 그대로 남아서 조금 이질적인체제를 이룹니다.
흑수말갈도 때로는 발해정부에 복속하지만 독립성과 이질성을 가지고 있는것으로 보입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2/2006 04:26:52 PM
얼마전 일본인이 그린 '조선역해전도'를 가지고 멋있다고 한국인이 열광했던 걸 생각하면(불멸의 이순신의 수군 복장에 대해 불만이 많았었죠) 일본측의 센스가 뛰어난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우리나라의 역사마저 일본인이 설명하고 포장하면 더 흥미로워 지는게 좀 아쉽습니다. 우리도 빨리 저 정도의 센스를 갖춰야할텐데... --
말갈이 다른 민족이 아닌 정치결사체를 이루지 못한 피지배계층을 이르는 말이라는 얘기는 예전부터 들어본 적이 있는데(물론 이를 반론하는 경우도 봤습니다), 연구총서에서는 무엇들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던가요? 한교수님의 논문이 있긴 한데 좀 오래된 것이라 아마 그동안 연구내용이 좀 바뀌었을 것 같아 궁금합니다.
나중에 시간되면 정리 부탁드립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2/2006 10:18:34 AM
귀찮3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0/11/2006 09:56:36 AM
노르만정복에 대한 글좀 부탁할수 있을까요?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12:28:42 PM
이걸 주장으로 보는 것 자체가 난독증이 있거나 본문을 제대로 읽지 않은 증거.
그나저나 학자들을 거론하다니. 이 글이 그리 대단해 보였나. 일개 낙서에 불과한 장난이라 본문에 명시했는데도.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09:07:12 AM
역시나 ㅉㅉㅉㅉㅉㅉㅉ 드럽게 할일 없나봐. 학자들은 코웃음만 나오지. 랄라라글 보면 진짜 저것도 주장인가 하고 말이야 ㅋㅋ 역사학자대 역사학자로 대결하는게 아니라 그냥 일반인 데려다놓고 그냥 지 혼자 글써놓고 만족이나 하는 주제에 ㅋㅋ 해리포터 맘먹는 판타지급 일본서기 가지고 열심히 놀아라
-- Posted by ㅁㄴ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02:22:39 AM
역시나 ㅉㅉㅉㅉㅉㅉㅉ 드럽게 할일 없나봐. 학자들은 코웃음만 나오지. 랄라라글 보면 진짜 저것도 주장인가 하고 말이야 ㅋㅋ 역사학자대 역사학자로 대결하는게 아니라 그냥 일반인 데려다놓고 그냥 지 혼자 글써놓고 만족이나 하는 주제에 ㅋㅋ 해리포터 맘먹는 판타지급 일본서기 가지고 열심히 놀아라
-- Posted by ㅈ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02:21:58 AM
역시나 ㅉㅉㅉㅉㅉㅉㅉ 드럽게 할일 없나봐. 학자들은 코웃음만 나오지. 랄라라글 보면 진짜 저것도 주장인가 하고 말이야 ㅋㅋ 역사학자대 역사학자로 대결하는게 아니라 그냥 일반인 데려다놓고 그냥 지 혼자 글써놓고 만족이나 하는 주제에 ㅋㅋ 해리포터 맘먹는 판타지급 일본서기 가지고 열심히 놀아라
-- Posted by ㅈ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02:21:58 AM
역시나 ㅉㅉㅉㅉㅉㅉㅉ 드럽게 할일 없나봐. 학자들은 코웃음만 나오지. 랄라라글 보면 진짜 저것도 주장인가 하고 말이야 ㅋㅋ 역사학자대 역사학자로 대결하는게 아니라 그냥 일반인 데려다놓고 그냥 지 혼자 글써놓고 만족이나 하는 주제에 ㅋㅋ 해리포터 맘먹는 판타지급 일본서기 가지고 열심히 놀아라
-- Posted by ㅈ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02:21:58 AM
역시나 ㅉㅉㅉㅉㅉㅉㅉ 드럽게 할일 없나봐. 학자들은 코웃음만 나오지. 랄라라글 보면 진짜 저것도 주장인가 하고 말이야 ㅋㅋ 역사학자대 역사학자로 대결하는게 아니라 그냥 일반인 데려다놓고 그냥 지 혼자 글써놓고 만족이나 하는 주제에 ㅋㅋ 해리포터 맘먹는 판타지급 일본서기 가지고 열심히 놀아라
-- Posted by ㅈ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02:21:58 AM
역시나 ㅉㅉㅉㅉㅉㅉㅉ 드럽게 할일 없나봐. 학자들은 코웃음만 나오지. 랄라라글 보면 진짜 저것도 주장인가 하고 말이야 ㅋㅋ 역사학자대 역사학자로 대결하는게 아니라 그냥 일반인 데려다놓고 그냥 지 혼자 글써놓고 만족이나 하는 주제에 ㅋㅋ 해리포터 맘먹는 판타지급 일본서기 가지고 열심히 놀아라
-- Posted by ㅈㄹ to 역갤 블로그 at 10/10/2006 02:22:03 AM
이런 글은 자게에 남기도록. 곧 지울테니 그동안 자게에 퍼다 나르길.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09/2006 06:18:04 PM
사이테이션 쓰다보니 깨달았는데 내책들을 살펴보니 거진 펭귄과 서튼이 경합을 벌이고 있더라고. 그리고 중요한건 둘다 영국출판사라는거;;; 가진책은 압도적으로 영국사가 많은데 어째 쓰는 글들은 미국사나 고대사가 많더라. 왜그럴까?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0/09/2006 10:45:18 AM
옥울아 훌륭하다. 난 언제쯤 서양사에 있어 저 정도의 저작물을 읽게될까.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09/2006 10:36:06 AM
warwarwarwarwarwar~ 거의 다 전쟁 원서네요...;;
-- Posted by 카우츠키 to 역갤 블로그 at 10/09/2006 12:48:07 AM
아.. 아아.. 타타타의 수준이 남다르군요 Orz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0/08/2006 03:48:22 PM
그렇군요.. 해당 부분은 이후 좀 더 알아보겠습니다. 좋은 의견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남겨주시길..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07/2006 05:54:55 PM
공손연이 양평성에 갇혀있을때는 낙랑,대방뿐이 아니라 요동도 남의 땅이나 다름없습니다.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7/2006 05:43:37 PM
랄라라//빼앗지는 않았고 전병력이 성안에 고립되어서 다 먹었지요
군량이 떨어지는 것은 대개 원정군에 대한 보급문제와 수성군의 성안의 축적군량 문제입니다. 성안에 고립되지 않았다면 행정영토에 나와서도 못 먹을 이유가 없습니다. 고대의 전쟁이 지금처럼 전국토의 자원을 소모하는 총력전도 아닌만큼 성안의 군량이 다했다고 전영토의 식량자원을 고갈시키는게 아닙니다. 그리고 성안에 고립되지 않은 상황이라면 일방적으로 군량이 고갈되지도 않지요.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7/2006 05:38:16 PM
요동태수> 글쎄요.. 공손연은 위가 군사를 일으켜 자기를 정벌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손권에게 구원 요청을 하는 등 전쟁 준비를 하고 있었고 사마의가 요동에 도착하기까지 몇개월의 시간이 걸렸지요.. 그러므로 전쟁 개시시의 공손연군은 이미 군량을 최대한 갖춘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더군다나 사마의의 말에서도 그들의 군량이 거의 다 했다고 했지 빼았았다고 하진 않았죠..(今賊糧垂盡)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07/2006 11:06:44 AM
당신은 누구요?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03:23:43 PM
공손연이었군
-- Posted by 역시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03:21:29 PM
공손연은 삼국지6에서 이친구로 즐겨하는 바람에 관심이 많아졌습니다. 공손연으로 위나라의 영토를 촉,오와 분할하고 원소의 영역을 확보하였습니다. 초반에 죽는줄 알았습니다.....ㅋㅋㅋ 원래 이친구는 안골라지는데 이벤트로 위나라에서 독립하면 골르는 방법이 있더군요.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03:17:59 PM
공손연이 양평성에 갇히면서 보유하고 있는 영토하고 분리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일단 나와서 다른 영지에서 보급이 가능해지면 고구려자체의 부담은 덜할것 같습니다.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03:14:05 PM
역갤의 공손연일까..
공손연이란 인물에 흥미를 가지기란 쉽지가 않을텐데..
-- Posted by 요동태수는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03:10:29 PM
성에서 고립된 상태의 식량부족하고는 양상이 다를겁니다. 일단 고립상태가 해소되면 징발하는 것은 그리어렵지 않을겁니다.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02:52:37 PM
으아> 지적하신 부분은 모두 원래대로 수정했습니다.
-- 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10:57:56 AM
요동태수> 답변이 늦었습니다. 몇일간 글을 쓸 시간이 나질 않아서.. 죄송합니다. m(__)m
공손연과 위나라의 대결에 대해서는 요동태수님의 의견이 맞는 것 같습니다. 《삼국지》만 보느라 미처 《진서》의 《선제기(사마의전)》를 보는 것을 깜빡했는데, 이를 보니 병력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帝曰:「(중략) 今賊眾我寡,賊飢我飽,水雨乃爾,功力不設,雖當促之,亦何所為。自發京師,不憂賊攻,但恐賊走。今賊糧垂盡,而圍落未合,掠其牛馬,抄其樵采,此故驅之走也。(중략) 賊憑眾恃雨,故雖飢困,未肯束手,當示無能以安之。取小利以驚之。非計也。」 선제(사마의)가 말했다: 「(중략) 지금 적(공손연)은 많고 우리는 적으니, 적은 굶주리고 우린 배부른데, 비가 내림이 이와 같아 공력을 풀 수 없으니 비록 재촉한들 어쩌겠는가. 내가 수도를 떠나며 적의 공격을 걱정한 것이 아니라 다만 적의 도주를 걱정했다. 지금 적의 군량은 거의 다하여 둘러쌈이 미합하니, 그 우마를 노락질하고 그 초채를 노략질함은 이들을 몰아 도주시키는 것이다.(중략) 적이 많음에 기대고 비를 믿어, 비록 굶주리고 피곤해도 포기하지 않으니, 마땅히 무능함을 보여 이를 안심시켜야 한다. 작은 이득을 얻어 놀라게 하는 것은 계책이 아니다.」
저는 요수에 의거해 (사마의의) 대군을 막는게 차선책(據遼水拒大軍, 其次也)이라는 말만 읽고서 사마의의 군대가 더 많은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니더군요.
이런 상황이라면 요동태수님의 말씀대로 고구려가 공손연을 제대로 지원했으면 상황이 변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다만 문제는 군량인데요, 보시다시피 공손연의 병력이 더 많은 이상 고구려의 지원은 병력보단 군량 중심으로 이루어져야 할텐데, 과연 당시의 고구려가 공손연군의 부족한 군량을 제대로 보충할 수 있었을지가 좀 의문입니다. 당시의 고구려는 곡창지대인 요동지방을 점령하지 못한 상태였고 국토 면적도 협소하여 양곡이 제대로 생산될만한 곳이 없었던 걸로 알고 있습니다. 삼국지 고구려전을 봐도 고구려의 양곡상황은 그다지 좋지 못하구요.
多大山深谷, 無原澤. 隨山谷以爲居, 食澗水. 無良田, 雖力佃作, 不足以實口腹. 큰 산과 깊은 골짜기가 많고, 원택이 없다. 산골을 따라 살며 산골의 물을 먹는다. 좋은 밭이 없어 비록 힘써 농사지어도 입과 배를 채우기엔 부족하다.
이런 상황에서 고구려가 1~2만의 군대를 공손연에게 지원군으로 보낸다면 군량 문제는 더 심각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그리고 두번째 의견은 더 알아보지 않아서 그런지 생각의 변화가 없습니다. 당시 고구려가 공손연을 지원하지 않고 서안평을 쳤더라면 고구려는 사마의의 5만 군사를 상대해야 했을 것이고 이는 관구검의 1만 군사에게조차 2차례나 대패한 고구려의 당시 국력으로서는 거의 지옥에 가까운 상황이 되지 않을까 하는 게 제 생각입니다.
그리고 코멘트 입력이 불편하신 것 같은데요.. 제 경우 장문의 코멘트를 작설할 때는 메모장이나 워드패드 같은 것을 열어 미리 작성한 뒤 이를 코멘트 입력창에 붙여 넣어 올리고 있습니다. 물론 자유게시판을 쓰시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06/2006 10:35:59 AM
아무래도 강희대제님은 랄라라님의 자료를 보고 말씀하신것 같은데 괜히 착각한듯......ㅋ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4/2006 08:40:06 PM
공손씨시대의 한군현의 통치에 대한 것은 김한규의 "요동사"를 참조했습니다. 직접인용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내용(전통군현적인 행정통치)의 글을 웹서핑했습니다.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4/2006 08:35:54 PM
1년전 디펜스코리아에서 올라왔던글이네..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04/2006 01:23:53 PM
저런 자료는 직접 사학자들과 교류를 나눠서 얻는것인가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0/04/2006 01:21:24 PM
채찍 고행 *-_-*
-- Posted by 彦 to 역갤 블로그 at 10/04/2006 12:27:08 PM
그리스인들은 군사로는 별로 적합치 않다고 여겨졌다.
그저 안습
-- Posted by 彦 to 역갤 블로그 at 10/04/2006 11:05:39 AM
굉장합니다. 그런데 중간에 에러가 있네요. 戀完償嗤? 이거랑 그림이랑..
-- Posted by 으아 to 역갤 블로그 at 10/02/2006 12:09:24 PM
조낸 멋지삼~
-- Posted by hyhn217 to 역갤 블로그 at 10/01/2006 09:28:22 PM
여기다 답변하기에는 여의치가 않군요. 자유게시판에다 하겠습니다.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1/2006 12:40:12 PM
거기에 대해 제가 답변을 드리면
1. 공손씨는 위나라보다 적은 병사를 보유하고 않았습니다.
공손탁시대부터 이미 수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압박하고 낙랑군일대에 세력을 확대하 고 있었으며 공손강은 낙랑군을 반을 갈라 대방군을 설치하였습니다.
삼국지에는「건안중에 공손강은 둔유현 남쪽 황지에 대방군을 설치하고 공손모와 장폐 등을 보내어 유민을 수집하고 병사를 일으켜 한.예를 정벌하니 옛 주민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이후 왜와 한을 대방군이 관할하였다. 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遣公孫模張폐等收集遺民興兵伐韓濊舊民稍出是後倭韓遂屬帶方」
또 당시 한군현통치에 대해 분석한 논문들을 보면 요동,낙랑,대방일대의 군현들이 변군이 아닌 실제적인 행정지배체제를 이룬것으로 알수 있습니다.
"삼국지에는 공손강이 대방군을 설치한 시기가 건안중으로 적혀 있으나, 삼국지 공손탁전(公孫度傳)에 의하면 공손강(公孫康)이 집권한 해는 A.D 204년이므로, 공손강이 대방군을 설치한 해는 A.D 204년경이다. 위 대방군은 하급관리인 읍군, 읍장을 한(韓)의 토착거수들로 임명한 점에 있어서는 행정기구적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이때의 읍군, 읍장들은 행정기구 때와는 달리 자치권이 거의 없는 하급관리에 불과하였다. 또 본국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주둔시킨 점에 있어서는 군사기구적 성격을 가졌고, 대방태수가 행정 및 군사를 함께 관장한 점에 있어서는 전통 중국군현적 성격을 가졌다."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1/2006 12:14:48 PM
랄라라님의 논거를 제가 나열해보면
1.위나라의 5만대군과 장수들이 압도적이기에 공손연은 필멸의상황에 처해있다.
2.고구려를 격파한것은 주력 사마의의 4만이 빠진 관구검의 1만이다. 따라서 공손연이 멸망하기전에 서안평을 쳤을경우 그 4만마저 상대해야 했을것이다.
-- 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1/2006 11:03:34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