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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에 대해 제가 답변을 드리면

1. 공손씨는 위나라보다 적은 병사를 보유하고 않았습니다.

공손탁시대부터 이미 수만을 거느리고 고구려를 압박하고 낙랑군일대에 세력을 확대하
고 있었으며 공손강은 낙랑군을 반을 갈라 대방군을 설치하였습니다.


삼국지에는「건안중에 공손강은 둔유현 남쪽 황지에 대방군을 설치하고 공손모와 장폐 등을 보내어 유민을 수집하고 병사를 일으켜 한.예를 정벌하니 옛 주민들이 점차 모여들었다. 이후 왜와 한을 대방군이 관할하였다. 建安中公孫康分屯有縣以南荒地爲帶方郡遣公孫模張폐等收集遺民興兵伐韓濊舊民稍出是後倭韓遂屬帶方」

또 당시 한군현통치에 대해 분석한 논문들을 보면 요동,낙랑,대방일대의 군현들이 변군이 아닌 실제적인 행정지배체제를 이룬것으로 알수 있습니다.

"삼국지에는 공손강이 대방군을 설치한 시기가 건안중으로 적혀 있으나, 삼국지 공손탁전(公孫度傳)에 의하면 공손강(公孫康)이 집권한 해는 A.D 204년이므로, 공손강이 대방군을 설치한 해는 A.D 204년경이다.
위 대방군은 하급관리인 읍군, 읍장을 한(韓)의 토착거수들로 임명한 점에 있어서는 행정기구적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이때의 읍군, 읍장들은 행정기구 때와는 달리 자치권이 거의 없는 하급관리에 불과하였다. 또 본국에서 군대를 파견하여 주둔시킨 점에 있어서는 군사기구적 성격을 가졌고, 대방태수가 행정 및 군사를 함께 관장한 점에 있어서는 전통 중국군현적 성격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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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0/01/2006 12:14:48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