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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강성에서 나온 고월주요 같은 것이 최초의 청자인줄 알았는데 그보다 훨씬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그리고 동하풍이면 산서성일 겁니다.(山西省 夏縣 東下馮)
그런데 중국의 청자라면 역시 남송의 청자 다완인 마황반(馬蝗絆)이 저로서는 가장 충격적이었습니다. 그 색깔은 도저히 현실의 것 같지가 않더군요.

↑클릭하면 원래 크기로 볼 수 있습니다.
인조이재팬에서 일본인들의 소개(실은 고려청자를 자랑하는 한국인의 기를 누르려고 나온 것이지만)로 알게 된 것인데 확실히 이 색깔은 뭔가 압도하는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본인의 소개를 인용해보면,
도쿄 국립박물관의 중요문화재인 「청자다완(마황반)」입니다. 남송의 용천요(龍泉窯)의 작품입니다. 이 다완은 다이라노 시게모리가 송나라의 육왕산에 황금을 기부했을 때 주지인 불조(仏照) 조사로부터 답례로서 받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후 무로마치 시대의 장군인 아시카가 요시마사가 소지하던 중 균열이 생겼기에 같은 다완을 입수하고 싶다고 하여 중국에 보냈는데, 이미 명대의 중국에서는 이런 명품 청자는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꺾쇠를 붙여 돌려보내왔습니다. 이 꺾쇠를 큰 누리(蝗 메뚜기의 일종)로 보고는 「마황반(馬蝗絆)」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라 하고 있더군요.(여기를 클릭하면 원문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마황반이 고려청자의 가치를 깎아내린다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중국인의 인식이 궁금해서 중국웹을 서핑해보았더니 이런 글이 있더군요.(원문은 여기를 클릭)
고려청자의 발전 및 중국청자 제요(諸窯)와의 관계
동아시아의 고대 자업(瓷業)의 발전 가운데, 고려청자가 중국 주변국가 가운데 가장 일찍 질과 양이 가장 뛰어난 청자를 생산하였다. 이로 인해 세계 자업 사료 가운데서 중요 지위를 점유하였고, 또한 높은 명성과 칭예를 누리고 있다. 남송의 《수중금(袖中錦)》에 의하면, 당시 남송의 천하제일의 물품 중 고려비색이 기록되어 있으니 곧 고려청자이다.
이 시기의 자기의 고향인 중국은 자업의 생산이 전례 없는 발전에 들어갔던 양 송(宋)의 번영기로서 신흥 요장(窯場)이 우후죽순처럼 전국에 창건되었는데, 명요(名窯)와 명자(名瓷)가 끊임없이 나타나 신생의 자요체계도 형성된다. 그러나 정확히 그 때 도자기의 발상지인 중국이 고려비색을 천하제일로 찬송하여 다른 곳에서 흉내내지만 따라가지 못한다고 하였으니, 남송 고문헌에 있는 중국인의 이런 종류의 칭송은 응당 고려청자 중세기의 고봉 발전기의 진실한 면모의 여실한 기재이다.
윗 글에 달린 리플들을 보니 별다른 이견이 없더군요. 역시 고려청자는 중국인도 인정하는 우수한 우리의 문화재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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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0/17/2006 09:45:26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