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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30/2006 11:25:52 PM
제가 가진 윈들래스제 히터쉴드는 지름 60cm의 라운드 쉴드인데 대략 3kg정도로 가볍습니다. 내구성은 과연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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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1/30/2006 09:36:36 PM
사실 이런 주장이 나오게 된 게 극렬 고구려빠들 때문이죠.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구려는 동아시아 동북변에서 자기 몫을 제대로 잘 지키고 살았던 나라 정도로 보면 되는 겁니다. 그 정도도 못하는 찌질한 나라들 얼마나 많습니까? 헌데 더도 말도 덜도 아닌 객관적인 자기 역사 인식이라는게 참 재미가 없는가 봅니다. 항상 뜨는 대중 역사물을 보면 저런 식으로 삐딱한 것들이 많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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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누루하치 to 역갤 블로그 at 11/30/2006 08:43:04 PM
오스만 파샤// 동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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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30/2006 06:38:56 PM
자칭 국빠를 계몽한다는 치들은 모든 일에서 자국에만 유리하게 해석하려 드는 자들에게 진실을 보여준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단지 군사면에서의 비교에 불과한 이런 글에다가 아무런 상관도 없는 세계사적 영향력을 굳이 집어넣어,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반드시 자국 비하를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에서 볼때 국빠나 혐국빠나 다른 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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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오스만 파샤 to 역갤 블로그 at 11/30/2006 06:25:21 PM
지나가다가2님,
비록 그렇게 입장은 밝혀놓고 있지만, 실재 해석은 정치적 입장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 이교수의 문제라고 하는 것이 .님의 논지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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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1/30/2006 12:11:59 AM
유럽을 제패하고 수많은 문화유산과 업적을 남긴 로마와
만주땅 구석에 찌그러져 예술성이라곤 전혀 느껴지지 않는 아프리카 동굴 벽화 수준의 그림을 그리며 중국의 침공을 근근이 막다가 멸망해버린 고구려를
비교하려는 시도 자체가 세계의 웃음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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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04:30:19 PM
스크럼과 화력통제의 부재는 몽골군이 기사와 우위를 점하는 요소이기 때문에 하마완 상관없음.. 한번에 두가지주재로 리플을 달다보니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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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03:23:50 PM
↑제 기억이 맞다면 그 고분에 묘사된 대열은 행진대열이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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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01:53:46 PM
죽염// 일제시대 통틀어 재조선 교육기관을 통해서 배출된 조선인 기술자는 234명.
일제시대 통틀어 검정시험으로 면허를 딴 조선인 기술자는 3330명.
일제시대 통틀어 재조선 교육기관을 통해 배출된 일본인 기술자는 634명.
일제시대 통틀어 검정시험으로 면허를 딴 일본인 기술자는 817명.
일제시대 조선인은 기술학교로 '안'간게 아니라 '못'간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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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12:07:25 PM
"일본으로 쌀이 건너 간 것은 두 지역 간에 성립한 시장의 작용으로 쌀이 수출된 결과이며 "
"쌀이 일본에 넘어 간 것은 쌀을 확보한 지주와 '농.민.'들이 그것을 일본으로 수출했기 때문"
본문의 이영훈 교수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먼저 저 위에 말장난은 넘어간다 치더라도....
이병도교수가 한 '약탈'은 옳은 말이고 현국사교과서의 '수탈'은 틀린말이다??
참고로 약탈은 강제성이 더 강한 어휘입니다.
이것은 이영훈이 칭찬한 조좌호의 글입니다.
일본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여 국내에 큰 식량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한층 더 조선의 쌀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본은 1920년부터 조선의 산미 증식 15년 계획을 세워 920만 석의 산미를 증산시키려 하였다. 이것은 계획대로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이에 의하여 조선은 완전히 일본의 식량기지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선의 산미는 계획대로 증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일 수출은 격증한 점이니 이는 증산된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이 일본에 수출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 내의 쌀 소비량이 감소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한국인은 자기가 생산한 쌀은 먹지 못하고 만주에서 수입한 잡곡으로 배를 채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의 경제는 쌀 중심으로 개편되어 완전히 일본 경제에 종속하는 식민지 경제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현재 국사교과서의 본문입니다.
일제는 공업화 추진에 따라 부족한 식량을 우리 나라에서 착취하려는, 이른바 산미증식계획을 세워, 이를 우리 농촌에 강요하였다. 1920년부터 15년 계획으로 추진된 산미증식계획은 920만 석 증산이라는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증산량을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중략) 그러나 미곡 수탈만은 목표한 대로 수행함으로써 우리 나라 농촌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게 하였다. 증산량보다 훨씬 초과한 양의 미곡을 수탈당함으로써 우리 농민은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기아 선상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에 부족한 식량을 만주에서 생산되는 값싼 잡곡으로 충당하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였다.
과연 저 두 서술에서 의미있는 차이가 있습니까?
수탈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이병도교수는 약탈이라는 단어를 써도 정론이고 현 국사교과서는 수탈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분량의 차이? 저는 임란해전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찬양하는 충무공에 관련된 국사교과서의 서술은 세줄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수천년역사를 담은 교과서니까요. 미국과는 다르죠.
그냥 정치지랄이죠. 단순한 겁니다. 노무현 시대에 교과서는 무조건 마음에 들지않는다. 왜! 왜 그말을 못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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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10:34:38 AM
강희대제님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역사스페셜에서 소개한 고구려의 전투대형은 실제로 어느 고분의 그림에 있는 거 아닌가요? 어디선가 본 거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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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11:10:56 AM
이영훈 교수가 뻔히 자기 글에서 시기별 국사 교과서의 표현 차이와 그 의미를 비교하고 있는데 의미있는 차이를 없다뇨... 현 국사교과서엔 착취 수탈 같은 말밖에 없는데..
저 글 다시 읽으셔야 할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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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11:02:49 AM
ㅎㅎ님께서 잘 지적해주셨군요. 이영훈 교수는 수출에 있어서 수탈성을 완전히 부정하고 있진 않습니다. 가령 조좌호의 교과서 기술을 아주 극찬하고 있죠. 그런데 조좌호의 교과서엔 이런 내용이 있지 않습니까?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선의 산미는 계획대로 증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일 수출은 격증한 점이니 이는 증산된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이 일본에 수출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 내의 쌀 소비량이 감소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한국인은 자기가 생산한 쌀은 먹지 못하고 만주에서 수입한 잡곡으로 배를 채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의 경제는 쌀 중심으로 개편되어 완전히 일본 경제에 종속하는 식민지 경제가 되고 말았다.
다만 현 국사 교과서의 표현상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것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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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04:43:53 AM
이영훈 교수의 글 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쌀이 일본으로 유출된 것은 절반 이상의 생산량을 소작료 수입으로 장악한 일본인과 조선인 지주들이 쌀값이 3할 정도 높은 일본으로 쌀을 수출하였기 때문이다."
--> "농민"이 수출했다는 말은 없습니다.
"그 식민지적 경제순환에서 한국인의 분배분이 과연 커지고 있었는지는 앞으로의 연구과제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몫이 작아지고 있었다는 이야기도 함부로 예단할 문제가 아닌 셈이다."
--> 마찬가지로 한국인의 분배분에 관해서도 유보적인 입장입니다.
"그들의 경제 정책은 조선이라는 식민지로부터 다량의 식량과 원료를 헐값으로 걷어가고 그 대신 공업품을 비싼 값으로 파는 것이었다. (중략) 이 정책은 또한 전 생산 분야에 있어서의 생산증가율이 그렇게 올라가지 못한 데도 불구하고 일본에 수출하는 양은 급격히 증가한다는 결과를 가져오면서 일본의 약탈은 날로 심하게 되어 갔던 것이다."
--> 이영훈교수가 이병도의 글을 인용하면서 이 글의 논리를 긍정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는 "약탈"이라는 표현을 쓰지 말것을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교과서상의 일본의 식량 수탈이라는 표현은 지나치게 애매하게 표현되어 식민지시대의 실상을 정확히 제시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즉, 상세하고 논리적으로 기술된 교과서를 본다면 일본이 수출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사실상" 약탈을 할 수 있었는지를 알 수 있다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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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ㅎㅎ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02:23:48 AM
빵을 분배하기전에 키우는게 먼저다
이건 고딩때 배우는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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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끌끌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11:24:45 PM
앗, 그림이 생겨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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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스트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1:32:50 PM
.... 스큐텀의 무게라는게 크기마다 다르긴 한데,
12pound~22pound 정도야.
5kg~10kg 정도라고 보면 되겠지.
크기랑 두께가 천차만별이라서 그렇긴 한데,
그래도 방어면적을 생각하면 엄청 가벼운 방패인거야.
(크기가 52"x25". (약 132cmx64cm)에 두께가 1.3cm 정도...
이게 22파운드짜리 방패...)
132cm x 64cm 짜리 방패를 한 번 생각해봐.
이걸 흔한 라운드 실드 정도의 두께로 만들거나
아예 금속제 히터실드로 만들면 무게가 얼마나 나올까? -_-?
이 사이즈랑 제일 비슷할 중세식 방패가
높은 노르만식 카이트 실드일텐데
이건 삼각형이라서 방어면적은 스큐텀보다 작고
대신 두께가 스큐텀보다 두껍지.
대형 방패의 한계는 여기서 명확히 드러나지.
너무 무거워서 체력 손실이 크다는 것.
어깨 끈으로 매달아서 어깨에 무게를 싣는 방식으로 발전하긴 하지만
그래도 한계가 있었던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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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스트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1:29:31 PM
일본도 원래는 방패를 썼습니다. 삼국지 위지동이전에도 왜인들이 방패와 창을 가지고 있다고 기술되어 있고, 대륙계 군사문화의 영향을 크게 받던 나라시대까지만 하더라도 방패는 모두 쓴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대륙과 교류가 단절되고 관동군사문화가 주력이 된 가마쿠라시대에는 소수의 기마무사가 주력이었고 이때 특별히 크게 만들어진 어깨를 가리는 오오소데가 사실상의 방패 역할을 했다고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남북조시대 때 손으로 드는 소형 방패인 수패가 만들어지긴 했지만 일시적이었고, 대부분은 거치형 대형 방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긴 것 같습니다.
거치형 대형방패는 시대를 막론하고 사용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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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12:42:23 PM
등패는 임진왜란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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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10:29:09 AM
내가 보기엔 나폴레옹은 십중팔구 예전처럼 유럽을 재패하는게 아니라 일단 안정화를 노리는 방법으로 나갈것가터. 근데 다른 귀족들은 그런 정세를 섣불리 판단하고 나폴레옹이 예전처럼 유럽을 정복할줄 알고 몸을 사린거고 로스차일드는 나폴레옹의 안정화정책을 예견하고 그런거같은데? 일단 나폴레옹의 정책이 안정화라면 그가 이기던 지던 매입한 재산들은 안전할거아냐.
글고 픽션에 등장인물소개가 있음 몰라도 논픽션에도 등장인물소개가 있3??? 따로 소개를 하려면 복잡하고 앞으로 등장인물들의 배경을 되도록 마니 설명하도록 노력할게.
근데 음2,3횽은 왠지 역갤에서 랄눈화하고 사이가 나쁜 그횽일거같은 예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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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8:03:22 AM
관리자님 저의 6벌리플 지워주세요. 팽배수를 등패수로 착각했네요.
이거 중학교를 실업계로 나오니 이런 기본적인 실수를;;;
자기 코멘트 수정, 삭제는 어떻게 하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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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7:43:42 AM
문종 2권 즉위년 7월 22일 (갑자) 006 / 김종서·이천·김효성 등에게 각종 팽배의 사용을 의논하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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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찬성(左贊成) 김종서(金宗瑞)와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천(李蕆),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김효성(金孝誠), 전 참판(參判) 이사임(李思任), 행 상호군(行上護軍) 신귀(申貴), 참의(參議) 박강(朴薑),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강순(康純), 상호군(上護軍) 김윤부(金允富)·원익수(元益壽) 등에게 명하여, 각종 팽배(彭排)574) 의 쓰고 못쓸 것을 의논하게 하니, 여러 사람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이징석(李澄石)이 만든 삼엽 팽배(三葉彭排)575) 는 길이와 넓이가 너무 커서 운반하기가 어려우니, 일첩(一貼)은 없애고 이첩(二貼)만 써서 삼노[麻繩]로 조르면, 만들기 어렵지 않고 운반하기가 또한 쉬워서 공격과 수비에 모두 편합니다. 양계(兩界)의 여러 진(鎭)에서 이미 시험하였는데, 다만 체제가 똑같지 않으니, 군기감(軍器監)으로 하여금 모형을 만드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예전의 원팽배(圓彭排)576) 는 예전 제도에 의하여 만들어서, 군려(軍旅)에 쓰는 것이 가합니다. 다만 공력(工力)이 많이 들고 항상 쓰면 썩기 쉬우니, 청컨대 평상시 시위에는 목원 팽배(木圓彭排)를 따로 만들어서 쓰는 것이 편합니다. 유구국 팽배(琉球國彭排)와 본조의 입팽배(立彭排)577) 와 이징옥(李澄玉)이 만든 총통 연접 팽배(銃筒連接彭排)는 모두 쓰기에 불편합니다.”
하였다. 군기감(軍器監)에 명하여 의논한 것에 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였다.
【원전】 6 집 263 면
【분류】 *군사-군기(軍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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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註 574]팽배(彭排) : 방패의 하나. ☞
[註 575]삼엽 팽배(三葉彭排) : 팽배(彭排:방패)의 하나. 세 겹으로 붙여서 만들었는데, 큰 것이 흠이었음. ☞
[註 576]원팽배(圓彭排) : 팽배(彭排)의 하나. 둥근 모양인데, 쇠로써 선을 두르고 판목(板木)으로 바탕을 하였음. ☞
[註 577]입팽배(立彭排) : 팽배(彭排)의 하나. 장방형(長方形)으로 생긴 것임. ☞
조선왕조실록의 방패 부분 중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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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꽁기꽁기햏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7:05:45 AM
동감합니다. 이영훈류의 논의를 읽으면서 느꼈던 불편함이 무엇 때문이었는지 정확하게 지적해 주신 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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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6:55:46 AM
윗분의 코멘트는 정말이지 코멘트로 남기엔 너무 아깝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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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4:36:56 AM
명과 조선에는 등패수가 기본병과 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일본에는 방패가
보편화가 안됬네요. 왜 그럴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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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4:10:38 AM
조선이나 명의 경우에는 방패병이 기본병과 였습니다. 방패를 안쓰다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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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4:05:07 AM
이영훈 교수의 코멘트를 봤는데 약간 오도하는 부분이 있네요. 정확히는 일본에 쌀을
'수출'한 계층은 '농민과 지주'가 아니라 지주입니다. 즉 산미증산으로 분명히
경제적 이득을 취하는 조선인은 존재하지만 그것이 조선인 전체의 이득은 분명히
아니라는 것을 먼저 전제하고 싶습니다.
제가 17~20세기 초까지 남평문씨 분재기를 기반으로 한 통계를 본 적이 있는데
거기에는 소작료의 비율에 대한 그래프가 있습니다. 조선후기 이미 병작반수의 룰은
무너졌고 19세기말까지 소작료의 비율은 급격히 감소해서 심지어는 1/3, 1/4수준
까지 떨어집니다. 영세화되고 정치권력을 상실해 가는 지주계급의 힘을 나타내는데
이러한 비율은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갑자기 급격히 상승합니다. 지주의 권력이
강해졌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주의 권력강화는 바로 '근대적'사유재산
제도를 도입한 근대화의 영향입니다. 과거 양반지주들의 도덕적 껍데기인 농본사상
마저 내팽겨친 일제시대 지주들의 '착취'는 과거 전통시대보다 훨씬 혹독하게 다가
왔고 이것은 바로 민중의 반발을 일으키게 됩니다.
실제로 19세기 민란의 양상과 20세기초 3.1운동을 위시한 소작투쟁의 양상은 분명히
다릅니다. 19세기 민란은 부패한 관료가 그 대상이었고 양반지주들은 타도의 대상은
커녕 오히려 농민들과 합작해서 민란을 주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일제시대의 소작농
투쟁에서는 지주는 적으로 그려지고 있습니다. '근대적 사유재산제도' 덕분입니다.
흔히들 식민지배는 일본순사 나까무라가 니뽄도를 들고 쌀을 빼앗아 간다고 생각하고
이영훈 교수는 국사교육이 그렇게 되 있다고 믿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어느 제국주의
국가에서도 그렇게 '멍청하게' '착취'를 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역기서 '수탈'과
'착취'란 단어는 정치적입니다. 뉴라이트 계열의 학자들은 제국주의시대의 경제를
비교우위에 기초한 자연스러운 경제활동이라 정의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일제시대 조선과 일본의 경제관계는 식민지 조선의 자원을 가져다가 본국 일본의
산업활동에 투입해서 그 상품을 다시 식민지 시장에 파는 행위였습니다. 이것을
경제활동이라 바라보는 사람도 있고 제국주의의 수탈이라 바라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정치적 차이에서 오는 용어의 차이일 뿐입니다. 지금도 하루 1달러로 선진국
자본의 플렌테이션 농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는 보통 피해자의 입장을
겪어봤기 때문에 보통 이것을 착취라고 바라보는 것이고 단순히 경제화된 수치로
바라본다면 이것은 순수한 시장경제활동이 되는 것이겠죠.
어떤 역사도 정치성을 띄지 않은 것은 없습니다만, 저는 그래서 이영훈류의 뉴라이트
사관역시 단순한 역사적 사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철저한 정치활동으로 바라봅니다.
이건 민족사관도 마찬가지고 친일사관도 마찬가지고 유물사관도 마찬가지이긴 합니다.
다만 이영훈교수의 경우는 그게 좀 심하더군요. 같은 낙성대 연구소에서라도 김낙연같은
사람과 이영훈같은 사람은 비슷한 공부를 하고 비슷한 결과를 내는데도 결론은 많이
달라보입니다. 그리고 그 다름은 바로 정치성이 얼마나 들어가 있는지의 차이인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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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3:49:57 AM
1930년대 미곡소비량을 단순 조선인, 일본인으로 비교하면 평균치가 거의 두배정도
차이납니다. 특히 이건 1920년대 80%수준에서 60%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미곡생산량
이 증가할수록 농민은 가난해 진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게다가 이 미곡생산의 35%~45%정도는 일인지주토지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일제시대 농업생산을 두가지 관점. 민족별 차별과 계급적 차별
두가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른바 민족자본이라 불리는
자금의 원천은 이러한 미곡수출로 인한 수입이 중요한 원인을 차지합니다.
반면 언제나 그렇듯 결론은 "그래서 농민은 더더욱 가난해 져 갔다."정도
될 듯합니다. 물론 이것은 192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경향을
바라볼때 나온 것입니다. 2차대전을 전후한 통제경제시절에 대한것은 저도
잘 모르거든요.
다만 사회적으로 바라볼때 농민의 비율이 전체인구의 80%에 달하고 그중 절반이상이
소작농으로 전락해가는 사회구조변화를 바라볼때, 조선시대 관습적으로 인정되던
도지권을 상실하고 양반지주들의 사회환원책임을 면제받은 경제지향의 '신양반'들이
사회의 상위계급을 형성하는 일제시대가 과연 사회구조적으로 근대화 되었는 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은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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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3:31:58 AM
옥씨에게 개인적으로 건의.
옥씨는 글 쓰기 전에 등장인물 소개부터 하는 것이 좋겠다. 서양사 중에서도 비교적 마이너 부분을 다루기 때문에 일반인이 쉽게 몰입하기가 쉽지 않아. 만화책 같은 곳에 등장인물 소개가 있는 이유가 뭐야? 중간부터 봐도 내용 이해가 쉽게 되도록 하기 위해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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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3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3:09:55 AM
아래 어떤 분이 남긴 리플을 보니깐 스큐툼의 무게가 10kg이라고 하던데 이게 가벼운거면 도대체 다른 방패는 얼마나 무거웠단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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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니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1:38:38 AM
일본 웹사이트에서 戦時期 米 配給量 검색해보니 몇가지 문서가 나오는군요.
당시 일본인 성인 한 명당 하루에 나가는 쌀배급량은 2홉(어린이는 1홉), 즉 하루에 330g이었습니다. 이걸 곱하기 365하니깐 일년 소비량은 120,450g. 1파운드를 454g으로 환산하니 일본인 1년 쌀 소비량 약 265파운드로, 조선인의 134파운드를 상회하는군요
하지만 당시 일본도 지역별, 시기별로 차이가 있는 것 같고(전쟁 후반갈수록 웬만한 도시들은 폭격으로 폐허가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지방으로 뿔뿔히 소개되었습니다. 그리고 전세가 악화되면서 쌀뿐만 아니라 여러가지 잡곡도 나온 것 같군요. 사실 쌀뿐만 아니라 달걀 식용유 과자 등도 다 배급으로 나왔지요)
또 전황에 따라 도쿄 기준으로 60%~90%까지 쌀배급량에 변동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이외로 패전 직전인 1945년 들어서 쌀 배급량이 90%로 회복...) 그래서 배급량 330g라는 것도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겠지요
시간이 없어 번역과 계산을 검토없이 바로 해버리는 바람에 오차가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수분들께서 한 번 검토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가 참고한 사이트는 이곳입니다
http://mltr.e-city.tv/faq08n.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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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재미사마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1:13:53 AM
일본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역시 방패를 사용한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는 듯. 배에다 걸어놓는 방패를 제외하고.
중국이야 동그란 방패를 썼던 것 같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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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ㄴㅁㅇ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1:07:50 AM
원래 성적으로 불만많은 인간들이 다른일로 스트레스를 해소하지요^^
근데 욱횽 이 글과는 상관없는데 물어볼게 있어
싸이에서 보니깐 이런 글이 있던데
"나폴레옹이 엘바 섬을 탈출해 워털루 전투를 펼칠 당시,
나폴레옹의 카리스마와 리더십을 익히 알고 있던 영국 귀족들은
그의 승리를 지레 짐작하고 서둘러 재산을 처분했다.
그러나 유독 한 사람만은 귀족들이 내놓은 재산들을 헐값에 매입했다.
모두가 연합군 패배를 점칠 때,
그는 전 유럽에 걸쳐 있던 자신의 인맥으로부터 입수한 정보를 분석해,
워털루 전쟁에서 나폴레옹이 질 것이라는 사실을 미리 예상한 것이다.
그가 바로 당대 부호로 명성을 날린 금융의 귀재,
로스차일드였다."
말인즉슨 표면적으론 나폴레옹의 승리지만 내부적으로는 연합군의 승리라는 미래가 자명하게 보였다는 것 같은데,
이거 진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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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2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12:34:43 AM
음...근데 왜 일본처럼 전쟁많이 한 나라가 개인용 방패는 지급하지 않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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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일빠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12:31:56 AM
이미지 업로드는 http://imageshack.us 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별도의 가입절차가 필요 없습니다.
이용방법은 자유게시판 36번 글에 설명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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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12:27:20 AM
핫,, 식민지 시기 조선의 식량사정에 대한 자료를 보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런데 제가 말씀드린것은 일본인의 배급 식량이 개전(36년) 이후 줄었다는 내용이라 본글과는 별도의 내용 아닌가요?
2004년 1인당 쌀 소비량은 82kg이고, (네이버 기사에서 찾았습니다.) 1920년~1936년 수치는 미터법으로 60.3kg. 많이 줄지 않은 것으로 생각되지만, 1980년 쌀 소비량은 132kg이었습니다. 특히 80년의 농가의 1인당 소비량은 151kg.
증산시켜 놓고, 증산한 것 보다 많이 털어가기.. 지능적이라고 해야하나, 이런걸 지능이라고 해야하나 잘 모르겠습니다.
좋은 자료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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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07:46:45 PM
『주한미군사(History of the United States Armed Forces in Korea)』는 1988년에 돌베게 출판사에서 나온 걸로 압니다. 『주한미군사와 미군정기 연구』에서 저자의 생각을 인용할 것이 아니라 위 자료를 직접 인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는 이영훈 교수가 다룬 걸로 아는데요. 누구 소개해 주실 분 없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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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돌베게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07:30:07 PM
일본에다 쌀 팔아먹은 놈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들이라며? 삼성도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세워진 기업이라고 들었는데.
위안부도 사기 납치해서 일본군에 팔아먹은 놈들은 일본인이 아니라 조선인 사업자들이라며? 위안부 할머니가 스스로 이렇게 증언하는 걸 봤다. 일본 우익 청년이 그걸 듣고서 의기양양해 하더라고. 우린 할 말 없으니까 이젠 일본 정부가 위안부 관리를 한 걸 가지고 꼬투리를 잡는 모양이고. 우리도 625랑 베트남 전쟁 때 위안부 돌렸으면서 말이지.
웃기는 짜장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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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07:10:15 PM
문과대의 부재는 반대했으면서 공과대와 농과대의 부재는 반대하지 않은 조선인.
이런 조선인이 교육을 받아 일본을 밀어붙여 독립한다고?
예나 지금이나 정신 못차리는 건 같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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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05:15:56 PM
j님에게 선수를;빼앗긴건가;;먼산 좀 만 기둘려주3.
미군정이 평가한 일제시기 농업에대해서 글을 올릴테니 ㅠㅡ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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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마요네즈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03:44:47 PM
일제시대 조선에는 공대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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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01:41:09 PM
좋은글 잘 읽었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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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그네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11:37:51 AM
서유럽의 고토를 되찾으려 한 유스티니아누스의 의지력도 대단하지만 환관임에도 불굴의 의지를 보여준 나르세스 역시 대단함... 글쓰는 분은 나르세스의 이런 부분을 좀 부각시켜주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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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11:11:43 AM
옥님 잘읽었습니다~ 이제 앞으로가 흥미진진하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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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10:07:53 A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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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10:02:03 AM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조선인 자본은 역시 숫자만 많을 뿐 큰 것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 해방 뒤 재벌의 원형을 만들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천석꾼, 만석꾼이었던 것도 공장같은 거 하는 것보다는 토지를 소유하는 것이 좀 더 부의 축적에 유리했었다는 간접증거인것도 같으니... 쿨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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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01:03:55 AM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일제시대 산업화가 없었다는 것은 반일감정에 의해 만들어진 허구에 불과하다고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는데, 이렇게 확실하게 글로 정리된 것을 보니 참 반갑네요.
개인적으로 이러한 일련의 공업화에 문제가 있다면, 아마도 공업화에 소요된 자본이 조선인의 대다수였던 농민을 착취한 결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뭐 확실한 사료로 뒷받침만큼 잘 알지도 못합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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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1/27/2006 12:41:10 AM
이해하기 어렵다는 말들을 너무 많이 들어서 이해가 쉽다는 반응이 저에게는 복음입니다.ㅠ.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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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11:13:2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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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폴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9:15:0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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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폴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9:15:0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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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폴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9:15:05 PM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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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참치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7:19:16 PM
일제 때 조선인이 얼마나 공대에 진학했는지 궁금하네요. 진학율 자료를 좀 봤으면 좋겠는데...
다만 당시의 조선인이 철저히 사농공상의 기준에 입각하여 진학한 것은 틀림없는 것 같더군요. 다음은 당시를 살았던 일본인 관리의 증언입니다. 아사히 신문의 기사를 동아일보가 실었더군요.
▽교육정책〓3·1운동 후에 조선에도 대학이 있으면 좋겠다는 목소리가 꽤 있었다. 당시 우리 대부분은 ‘조선에 대학이 생기면 농업대학이 첫 번째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조선인들은 반대했다. 당시 조선인들의 분위기는 어떻게 하든 일본의 관립이나 사립대학 문과계로 진학하려했다. 24년 경성제국대학을 만들자 안팎에서 비판이 있었다. 총감은 ‘시류가 그런데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당시 조선인 사이에는 ‘일본을 밀어붙여 교육을 일으키는 것이 독립의 지름길’이란 말이 나돌았다. 무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교육을 일으키면 반드시 독립하게 된다고 공공연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와타나베 도요히코·渡邊豊日子 학무국장)
일본을 밀어붙여 독립을 한다면서도 문과계로 진학했다니 쓴웃음만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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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5:50:23 PM
글을 교정하는 과정에서 많은 수정이 이루어졌기에 따로 리플을 남깁니다. 혹시라도 글쓴분께서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언제든 원래대로 되돌리셔도 됩니다. 원문은 역갤에 있습니다.
http://kr.dcinside7.imagesearch.yahoo.com/zb40/zboard.php?id=history&page=1&sn1=&divpage=11&banner=&sn=on&ss=off&sc=off&keyword=-_-;&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82948
그리고 오기(誤記)를 수정하는 과정에서 내용의 수정도 이루어졌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1. 원문에는 총독부 문서 중 조선공장명록(朝鮮工場名麓)이 있다고 했는데 이는 제가 알기로 조선공장명부(朝鮮工場名簿)의 오기인바 이와 같이 고쳤습니다.
2. 원문에는 '일본자본의 한반도 진출로 인해 한국인 자본이 몰락하였다든지 한국인은 공업화의 진전과는 관련이 없이 뒤쳐져있었다든지 하는 시선을 수정될 필요는 없다.'라고 되어 있으나 이는 문맥상 '수정될 필요가 있다'의 오기인 것으로 판단되는바 문맥에 맞도록 수정하였습니다.
3. 원문에는 데라우치 내각이 실각되고 산미증식계획이 중단된 원인을 1차 대전후의 농업공황(쌀의 가격 폭락) 때문으로 설명하고 있으나, 이는 잘못된 설명이므로 사실대로 수정하였습니다.(데라우치 내각의 실각은 쌀소동 때문으로, 쌀소동은 당시 일본내 농업생산량이 줄어들어 일본군의 시베리아 출병시 쌀의 매점매석으로 값이 폭등하여 생긴 사건입니다. 이로 인해 산미증식계획이 추진되게 되는데, 그 결과 값싼 조선쌀이 일본에 수입되어 일본내 농업경제가 타격을 받자 마침내 산미증식계획은 중단되게 됩니다.)
이외에 자료 사진의 방향을 90도로 회전하여 보기 편하게 했는데, 아무래도 화질이 제대로 보기 힘든 것 같으니 나중에 여유가 될 때 다시 찍어서 올려주셨으면 합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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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8:02:45 AM
원래 조선인들이 더 가난했으니 같이 가난해지는 전쟁말기에 일본인들이
느끼는 체감이 더 크지는 않았을까라는 망상을 제시해 봅니다.
왜나하면 1930년대를 지나면서 이미 미곡소비량에서 일본인과 조선인의
평균은 거의 두배가까운 차이를 보이거든요. 이런상황에서 전시통제경제가
시작되면 일본인들이 더 고통을 느낄 수 밖에 없는 구조인듯.
물론 근거는 없습니다. 살아봤어야 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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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국빠 DDR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7:11:46 AM
미리 결론을 낸 다음에 자료를 짜 맞추고 있는 듯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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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07:02:15 AM
얘는 도대체 맞춤법이랑 띄어쓰기가 왜 이렇게 엉망이냐? 몇번씩 되새겨 읽어봐야 될 정도로 국어 문법이 엉망이야. 혹시 외국인? 랄이 교정하는데 애먹겠구나.
그리고 'sci가 count가 있는 교수'는 도대체 뭘 뜻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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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답답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12:29:42 AM
총력전체제에서는 본래 국가가 비대해진다오
이건 미국이든 서유럽이든 알짤없소
무슨 공산주의 운운이 왜 튀어나오오?
중국과의 비교도 적절치 않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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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1/26/2006 12:25:07 AM
Scott과 제 성향에 대해서 언급해주신 분에게는 "그 말은 하지 않는게 나을뻔 했다"고 말하고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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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학생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11:39:17 PM
어느 분의 날카로운 지적대로 '도덕경제'라는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던 것은 E. P. 톰슨입니다. 옮긴이 후기부분에 있는 관련내용을 옮겨봅니다.
"Thompson은 당시의 민중 폭동을 돌발적이고 충동적이며 무정형적인 합리성을 갖추지 못한 행동으로 보려고 했던 정치경제학이나 마르크스 경제학의 전통에 대항하여 도덕경제의 개념으로 그 운동의 논리를 명쾌하게 설명하였다. 말하자면 Thompson은 18세기 영국의 식량폭동에 관한 연구를 [터무니없는 crass 경제환원주의]로부터 구출하려고 했던 것이다.
흔히 도덕경제의 이론은 Thompson에 의해 최초로 제시되고, Scott이 적용의 외연을 확대하여 동남아시아 농민운동에 적용하였다고 지적되고 있다(물론 Scott뿐만 아니라 유럽과 제3세계의 다양한 형태의 식량과 관련된 저항을 연구하는 학자들에 의해 Thompson의 원래 모델이 다양하게 시험되기도 했고, 확장되기도 했다). 그런데 이와 관련하여 과연 도덕경제 개념을 그 기원(18세기 영국의 식량폭동 해석)의 연대기적, 지리학적 맥락 밖에서 적절하고도 신중하게 적용할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논쟁이 전개되어 왔다. 이에 대해서 Thompson 자신은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영국 노동계급의 형성 - 옮긴이)에서 식량폭동에 그 개념을 사용한 이래 식량폭동의 상황에 한해서만 적용해 왔으며, 만일 이 용어가 다른 맥락으로 확대된다면 재정의되어야 하고 그렇더라도 다소간 초점을 상실할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그러나 Scott은 자신이 [오랜 온정주의적 도덕경제old paternalist moral economy라는 구절이 처음으로 나타난 Thompson의 the Making of the English Working Class에 감탄하였기 때문에 Thompson의 작품을 완전히 모르고 있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직 18세기 영국 민중의 도덕경제를 읽지 않았다]고 밝히고, 자신은 M. Bloch, A. Chayanov, 게임이론, Richard Cobb의 The police and the people 등에서 이 책에 대한 이론적, 개념적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pp.37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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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학생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11:36:58 PM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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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okay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09:50:07 PM
미스테리는 누구나 한번쯤 호기심을 가지는 소재라고 생각합니다.
글쓴분께서 악플에 신경쓰지 않으셔도 될듯 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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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치킨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07:09:36 PM
이분 굉장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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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으아..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04:54:49 PM
미친고양이님 글은 이해가 쉬워서 참좋네요 앞으로도 좋은글 부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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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ㄴㅇㄴ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04:46:48 PM
러브인님: 좋게 봐주시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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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12:43:43 PM
竹監님// 실제 분위기로도 일본은 자국위주의 경제정책을 위주로 한다는 식으로 많이 까이는 편이지만 저는 다르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플라자합의가 없었다면 미국이나 일본의 운명은 지금과 달랐을테니까요.;;;;
또한 많이 까이는 이유 중 하나가 소비시장을 개방하지 않아 미국만 소비하게 만든다는 건데 제로금리 상태에서 자본이득이 거의 없는 예금에 고집스럽게 투자하는 일본 소비자들이 없었다면 현 미국의 경상수지 적자와 재정적자가 유지될 것인지 의문을 품고 있는지라....^^;;
골빈센트님, 음님// 화제에 집중하기 위해 한국 IMF의 원인을 생략했습니다만(제가 이글을 쓰는 목적은 1에서 밝힌 바 있습니다.) 의외로 거기에 관심이 많으신듯 하군요. IMF의 원인에 대해서 외전으로라도 다뤄야 할까요.-_- 그리고 동남아 위기가 생기기 전에 있었던 멕시코 외환위기에서 IMF는 확실하게 초동 진압을 합니다. 능력을 발휘한 사냥개를 굳이 요리할 필요가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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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11:58:42 AM
그다지 중요한것은 아니지만 하나 질문입니다
플라톤은 아틀란티스 이야기를 솔론으로부터 들었고 솔론은 이집트의 신관으로부터 들었다고 했는데 플라톤이 이집트어를 할줄 몰랐는게 문제될 이유를 모르겠네요. 솔론이 이집트어를 몰라야 문제되는거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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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04:44:15 AM
책내용을 몰라서 뭐라 말할수는 없지만 아무래도 좌파적 내용의 서적 같네요. 윗분이 제시한 내용에도 막시스트 히스토리안이란 말이 있는 걸로 봐서 도덕경제란 말을 그대로 쓴 제임스 스콧 역시 그쪽 성향의 지식인일 것 같군요. 학생님의 글들을 봐도 그렇고 아무래도 학생님은 왼쪽성향이신듯. 물론 나쁜의미는 아니니 오해는 말아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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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04:50:29 AM
윗글을 보니 조선족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나네요. 한족이 옥수수가루 조금 배급받을 때 조선족은 소화 잘못시킨다며 쌀밥을 상대적으로 많이 줬다나... 조선족이 한족보다 더 세심하고 나은 대우를 받았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때를 생각해서라도 자신의 조국은 중국이라며 강조하시던 할머니 생각이 나는군요. 어디선가 기사화되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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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과객 to 역갤 블로그 at 11/25/2006 02:26:56 AM
j님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할아버님의 이야기를 정리해 주셔서 올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 시대를 사셨던 분의 이야기만큼 흥미롭고 신뢰가 가는 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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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11:53:21 PM
그게 저도 궁금합니다. 저희 할아버지는 20년대 말 출생이신데, 어린시절 오사카에 계셨다고 하는군요. 해방 직후 귀국하셨습니다. 일제시대 기억에 대하여 종종 여쭤보는데요, 한번은 전쟁 말기에 일본인은 배급량이 줄어들어 심각한 수준으로 굶었는데, 조선사람들은 비교적 잘 먹었다는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상당히 의아스러운 내용이라 좀 더 여쭤봐야 했으나 이야기가 딴 곳으로 새는 바람에 알 수 없었습니다. 조선인들이 배급에서 열외였을 가능성도 있고, 할아버지 주변의 사람들만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생활을 했을 수도 있겠습니다만, 어쨌든 흥미로운 이야기였습니다.
일단 당시 조선인들 중에서 징집 대상은 24년생부터라고 알고 있습니다. 한홍구의 '대한민국사', 한승조 편에 잘 나와 있더군요. (한승조 24년생) 그리고 패전 직전 일본인들의 하루 식량 배급량은 1200 kcal 정도까지 줄어들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개전 전의 평균적인 섭취량의 반 정도라고 합니다. 정확성을 기하기 위해서는 다시 찾아봐야 되겠네요.
역블에 처음으로 글 남깁니다. 궁금한 게 많습니다. 잘 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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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11:47:48 PM
굉장히 재미있게 읽고 있습니다. 악플 같은 것은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듯 합니다.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뮤대륙이나 UFO 같은 세계의 미스테리는 보통 일본측 서적을 무단번역한 정체불명의 해적판 서적으로부터 접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보통 겉껍질만 접할 수 있었고 보다 깊이 들어간 내용은 찾기 힘들어서 그것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알기가 거의 불가능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이야 인터넷이 있으니 금방 알 수 있지만요.
최근에 MBC 서프라이즈에서 방영된 울프 메싱이란 초능력자 이야기도 해외 웹을 뒤져보니 거의 구라에 가까운 것 같더군요.
http://www.skepticwiki.org/wiki/index.php/Wolf_Messing
이렇듯 어린 시절을 자극한 이야기들의 진실을 어른이 되어 알아보는 것도 매우 재미있는 일인 듯 싶습니다. 어린시절로 돌아간 듯한 느낌을 받는군요.
뮤대륙이 구체적으로 누구에 의해 주장되어 어떻게 조작되었는지 곧 나오겠네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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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11:47:21 PM
글 잘 읽었습니다. 일제 말기의 수탈상이 잘 드러나는 글 같네요.
그런데 한가지 호기심이 있습니다. 동시기 일본 본토는 과연 어땠냐는 것입니다. 당시의 일본제국이 전시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전시하에서 일본정부가 식민지에만 불평등한 고통과 수탈을 실시하였다면 이것은 분명한 억압이요 탄압이 될 것입니다만, 만약 일본정부가 본토에도 동등한 수탈과 부담을 부과하였다거나, 혹은 조선을 본토보다 덜 수탈하였거나 부담을 덜 지웠다면, 이는 당시 일본정부의 통치를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 없게 만드는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물론 조선을 병합한 것 자체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이 일본의 잘못이요 수탈이 되겠으나, 최소한 전시하 농업정책에 있어서 일본정부의 수탈성이나 차별, 억압성을 비판하려면 동시기 일본 본토와의 비교가 있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가령 전시체제하 일본군 징병이 조선의 경우 일본보다 1년 늦춰 시행되었다거나, 태평양 전쟁에서의 조선인 사망자가 일본인 사망자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 등을 보면 이러한 비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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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11:36:11 PM
http://www.typemoon.net/php/zboard/zboard.php?id=free&page=1&sn1=&divpage=3&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6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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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크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11:04:54 PM
뭐 제대로 안읽어가지고... 또 보겠지만
영삼이가 뻗댄건 사실입니다.
당시 소득 1만불이라고 미국 하자는 대로의 확실하게 반대로만 행동했죠.
자주니 뭐니 진짜 노무현 저리가라였던걸로 기억합니다.
근데 IMF가 외환위기 있기 전까지 폐지운동이 있었다고 합니다. 쓸모가 없어서
근데 한국이 살렸다고 하더군요.
뭐 이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는 내막을 잘 아시는 분께서 퍼즐맞추기를 해주시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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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골빈센트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08:55:07 PM
고양이님 글 잘읽었습니다.
결국 IMF의 1차적인 책임은 무리한 투자와 대출을 하던 민간에 있고, 2차적 책임은 민간의 채무를 국가부채로 만들어버린 무능한 정부에 있다는 거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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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08:12:31 PM
그런데 일본의 저러한 채권만기연장 거절에 대해 마치 일본정부의 악의적 행동인냥 왜곡하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재무성의 보고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mof.go.jp/jouhou/hyouka/honsyou/14nendo/hyoukasho/sougouhyoukasho/ronten1.htm
3.한국
한국에서는 97년초부터 중소 재벌의 파탄이 계속되어 타이 바트화가 폭락한지 얼마되지 않은 97년 7월 15일에 기아 그룹의 중추인 기아 자동차가 파탄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9월 8일에는 중앙은행이 기아그룹의 메인은행인 제일은행에 1조원의 특별 융자를 실시할 정도로 금융 불안이 가속화 되었다. 그후 한국은 11월 21일에 IMF에 지원을 요청, 12월 3일에 IMF 지원 패키지 합의로 진행되었다. 한국도 타이와 같이 외화 준비가 고갈된 단계에서 IMF에 지원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요청 자체가 이미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 합의로 IMF 210억 달러 세계은행 100억 달러 ADB 40억 달러에, 제2선 준비금 230억 달러를 포함한 총액 580억 달러를 초과한 지원이 결정되었다. 그중에 일본은 제2선 준비로서는 최대인 100억 달러를 위탁했다.
그러나 이 지원은 94년의 멕시코 위기를 웃도는 과거 최대의 규모였음에도 그 발표는 시장에 안도감을 주지 못하였고, 또한 타이와 인도네시아에 대한 IMF의 지원 패키지가 당초 효과를 주지 못한 것도 연상시키는 바람에, 시장에 반대로 악영향을 주었다. 11월 21일에 1달러=1,05518원이었던 환율은 12월 11일에 1달러=1,719원까지 급락했다.
일·미·유럽의 민간은행이 한국용 차관의 회수를 가속화하여 외화 준비가 급속히 바닥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등급기관인 S&P는 12월 22일 한국 소버린 등급설정의 재검토로, BBB-로부터 B+로 단번에 4등급 인하했다.
사카키(2000)에 의하면, 이 때 한국의 단기 대외채무의 대부분이 한국의 민간은행에 집중하여 97년 12월 12일 시점으로 한국의 주요 은행이 안고 있던 단기 대외채무 잔고가 320억 달러였는데, 그 차입처의 내역은 일본이 118억 달러, 유럽 전체로 118억 달러, 미국이 42억 달러였다고 여겨진다.
이 일·미·유럽의 민간은행에 대한 채무 반제 연기(rescheduling)의 성공 여부가 확실히 한국의 국가 파산을 회피할 수 있을지의 열쇠를 잡고 있었다. 이 때 일본정부는 자국은행에 대해서 반제 연기의 설득에 분주했다. 일본내의 금융시장이 혼란한 가운데, 일본 정부는 단기간중으로 자국은행의 합의를 얻어 98년 1월 29일에 일·미·유럽 민간 은행단의 단기 채무 연기 교섭을 타결로 이끈다.
이 교섭 타결은 시장에 큰 임펙트를 주어 1월 29일에 1달러=1,678원였던 환율은 다음 1월 30일에는 1,524원까지 값을 되찾는다. 교섭 타결이 준 안도감에 가세하여 97년 12월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해외로부터의 증권투자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대외증권투자의 유입이 촉진되었다. 한국의 국제 수지는 안정을 되찾아, 한국은 통화 위기를 받은 아시아 여러국가 중에서도 빠르게 위기 극복을 하였다.
4.정리
3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원을 총괄 평가하고 싶다.
일본정부는 한국에서는 최대의 포인트인 민간은행의 단기 대외채무 문제에 대해서 일·미·유럽 민간 은행단에 의한 한국 금융기관의 단기 채무 연기 교섭으로 큰 역할을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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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07:21:28 PM
정몽준씨가 자서전에서 자금지원과 만기연장에 대한 일본의 거절을 비판했었죠. 이후 일부 일본인들은 정몽준씨의 그런 주장을 또 비판하고..
당시 일본측의 거절은 어찌보면 당연한 겁니다. 이자는 커녕 원금도 못건질 가능성이 높은 나라에 자금지원을 인심좋게 해달라고 바라는 것은 무리한 것입니다. 일본이 아니라 어느 나라라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물론 국가간에도 선의라는게 존재하지만, 과연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선의를 바랄만큼 평소 호의를 보여왔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인들도 회의적일 것입니다. 한국이야말로 세계 최고의 반일주의 국가 아닙니까. 그런데 원금회수도 불확실한 리스크를 떠맡아가면서까지 일본이 한국을 지원해주길 바랬다는 거 자체가 우스운 일인거죠. 또 무엇보다 미국 주도의 IMF를 일본이 거스르길 바라는 것도 우스운 일이구요.
아무튼 이후 미국의 한 식당에서 고위관료들이 한국을 구제하기로 결정하였고, 제2선 지원 과정에서 일본이 가장 많은 금액을 지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채권만기연장 문제로 일본과 좀 시끄러웠던 것 같기도 합니다만..
뭐 아무튼 당시 독도를 지키겠다며 동해상에서 해상 훈련을 벌이며 시위하던 김영삼 정권으로선 그 대가를 톡톡히 치룬 셈이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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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06:54:53 PM
역블에서 이런 류의 글은 참 신선하네요. 열독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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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06:35:39 PM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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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05:21:47 PM
로마제국의 철판갑옷인 "로리카 세그먼타타에"는 약 1세기 남짓 쓰이고 왠일인지 퇴출되었습니다. 이후 제국이 게르만족의 남하라는 사태를 빚게 되면서 게르만족 특유의 빠른 기동력과 산발적인 전투에 대응하게 되면서 점차 로마제국 병사들은 게르만족처럼 바지를 입기 시작하고, 갑옷을 벗었으며 투구만 쓰고 방패 뒤에는 기존의 무거운 투창 "필룸" 대신 40cm정도의 던지는 소형의 다트를 쓰기 시작합니다.
그 이후 로마제국은 통치력이 점점 줄어들고 내부 질서가 엉망이 되면서 멸망하고 이후 로마제국의 후계는 콘스탄티노플(지금의 이스탄불)을 수도로 하는 동로마 제국, 즉 비잔티움이 이어받게 되고 서유럽은 무주공산이 되어 북방민족인 고트족, 반달족, 프랑크족 등 각종 어중이 떠중이들이 차지하고 옛 로마의 군사문화는 완벽하게 단절됩니다.
그 이후 서유럽의 군사문화는 프랑크족이 세운 프랑크 왕국에서 봉건제도를 확립하고 바이킹족의 활약으로 바이킹 군사문화가 막대한 영향을 미치게 되며 서유럽에 실질적으로 체인 메일의 시대를 연 것은 이 바이킹들의 영향 덕택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체인메일의 사용 빈도가 이후처럼 크진 않았죠. 이후 노르웨이에서 온 바이킹의 일파들이 지금의 노르망디 지방을 봉토로 하사받고 노르만 족이 되고, 1066년 영국왕위계승권 문제로 일어난 헤이스팅스 전투에서 최초로 마상돌격, 랜스차징을 선보이면서 그들의 장비인 노르만 검, 랜스, 위가 뾰족한 노르만 투구, 체인메일과 함께 유럽의 군사문화를 선도하는 새로운 시작점이 됩니다.
동로마제국, 비잔티움은 반대로 구 로마식의 병제를 포기하고 파르티아, 스키타이 등 중동지방이나 유목민들의 선진적인 기병전법과 갑옷을 받아들여 체인메일과 작은 철판을 연결한 러멜러 아머를 기본으로 하는 갑옷 시스템을 채택합니다. 또 러멜러 아머와 대형 방패, 장창을 가지고 대열을 짜는 중보병 시스템도 등장하고 이미 옛 로마제국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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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11/23/2006 09:59:33 PM
로마제국은 철판으로 된 갑옷을 착용했잖아요. 그럼 이후로 체인메일을 착용하게된 것은 로마제국의 갑옷보다 이게 더 좋았기 때문인가요 아님 로마제국의 멸망으로 문명이 쇠퇴하여 암흑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인가요? 그리고 로마제국의 유산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는 비잔틴 제국(동로마 제국)은 로마제국 멸망 이후에도 여전히 로마제국식 갑옷(철판 흉갑)을 착용했나요? 아님 역시 체인메일을 착용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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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궁금이 to 역갤 블로그 at 11/23/2006 07:17:56 PM
도덕경제라는 개념을 처음 제시한 사람은 제임스 스콧은 아니고 에드워드 톰슨이라고 하네요..
The Marxist historian E. P. Thompson emphasized the continuing force of this tradition in his pioneering article on the Moral Economy of the English Crowd in the Eighteenth Century (1971).
Later historians and sociologists have uncovered the same phenomenon in a variety of other situations, including peasants' riots in continental Europe during the nineteenth century and in many developing countries in the twentieth.
The political scientist James C. Scott, for example, showed how this ideology could be used as a method of resisting authority in The Moral Economy of the Peasant: Subsistence and Rebellion in Southeast Asia (1976).
http://en.wikipedia.org/wiki/Moral_econo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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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흠 to 역갤 블로그 at 11/23/2006 06:33:47 PM
우리나라의 경우 대부분 번역본이 70~80년대 냉전시대나
혹은 아이티시대 전에 쓰여진게 많아서
상당히 시대착오적인 내용이 눈에 띄오
좀 일찍일찍 해석하지
맨날 오래된 떡밥이나 해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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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23/2006 03:46:24 PM
미국에서 70년대에 나와 80년대를 휩쓸었단 책이 우리나라에선 2004년이 되어서야 나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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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to 역갤 블로그 at 11/23/2006 08:00:44 AM
멋진 서평입니다.
나름 많은 부분을 생각하게 만들어 주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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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3/2006 02:48:44 AM
암니옴니//논쟁의 여지를 포함한 주장글이라면 모를까, 설명문조의 글에서는 대략 "잘 읽었습니다" 정도가 고작인 셈이니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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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06:13:21 PM
위의 충성용감단결님 말씀도 맞지만, 무엇보다 말 다리에 갑주를 씌운다는 게 불가능합니다. 관절 부분이 견딜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운동과 말의 운동은 차원이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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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04:49:23 PM
제가 이 시기의 유럽 갑옷을 알기 전에는 13세기에도 플레이트 메일이 쓰여진 줄 알고 이런 유럽기사들을 격파한 몽골기병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었죠.. 물론 당시의 유럽기사들이 철판이 아닌 체인을 걸쳤다는 사실을 알고 약간은 실망했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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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03:52:08 PM
보잘 것 없는 글 칭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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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03:10:48 PM
뒤에서 뭐가 오면 뒷발차기로 날려버리거나 앞에 벽이 있으면 멈추려는 것과 같이 말의 습성 중에는 다리에 뭐가 달라붙는걸 굉장히 싫어한다는 것도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말 다리부위까지 완전한 방어를 하고 싶다면 스커트 형식으로 늘어트리는 방식으로 말 다리부분까지 커버하는 마갑이 많습니다.
또 말 다리는 계속해서 움직이므로 돌격시 화살에 맞을 걱정이 별로 없는 부위인지라 맞을 가능성이 높은 몸통 앞부분과 머리에만 마갑을 씌우는 경우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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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01:08:02 PM
역시 송태조 글은
히틀러 집권 시리즈 말고는
전부 비주류 글이라서 묻히는게 흠이야
개념글인긴 한데 리플은 많이 안 달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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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02:35:25 PM
....근데 이거 Age of Empire 2 의 [십자군] 설명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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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스트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11:14:17 AM
송태조님. 참 궁금한게... 왜 말의 다리에는 갑주를 씌우지 않은걸까요?
늘 궁금하더군요. 기왕 마갑을 씌운거 전부를 커버하는게 좋을텐데..
말의 다리에 신발비슷하게 갑주로 커버를 해도 무게가 그리 늘어나는것도 아닌데
말의 기동성때문에 인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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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궁금해요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03:22:12 AM
랄님 ㄳ
부족한 자신에게 개념잡는데 정말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틈나는대로 계속 봐야겠네요
혐한들이 근거가있건 없건 일종의 놀이로 한국을 비판하는 경우가 많은데 무서운건 그럴듯한 논리로 무장되어있어서 까기가 쉽지 않네요 많이 배워야 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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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CD82 to 역갤 블로그 at 11/22/2006 12:06:12 AM
어차피 한국에서 갈라진 나라가 일본이라고하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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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모헨조다로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11:12:32 PM
잘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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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wookay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02:11:33 PM
http://www.uncharted.com.ne.kr/index.html
여긴 외국인이 운영하는 사이트가 아니라 한국인이 운영하는 사이트입니다. 외국어로 남길 것도 없이 A bulletin board 들어가면 한국어로 된 글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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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12:47:08 PM
근데
이 크루세이더도 네이버에
많이 퍼져있지는 않지만
일부블로그에 이미 올라와 있더군요
제가 밑에 올린 해적의 형태의 경우는
영어단어로 검색하면
우수수 쏟아져 나옵니다
그 분의 열정으로 보아서 한국블로그에서 불펌질 할일은 없고
이미 몇몇 네이버블로거들이 몰래 불펌했나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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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12:32:11 PM
허락없이 퍼가면 소송을 당하는 경우가 있으니 주의하도록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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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12:16:12 PM
흠 그래서 전설속 최초의 문명이라고 말했는데
어쨋든 나도 어릴적에 매우 크게 감명받았는데
국내에는 제대로 설명해주는 다큐멘터리나 책을 본 적이 없어서
실제로 뮤대륙이나 아틀란티스 같은게 개사기이긴하지만
내용이 워낙에 흥미로운건 사실
로직님 언제한번 아틀란티스 대륙과 태평양의 홍수설화에 대해서도 설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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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11:45:09 AM
글쎄 퍼간다고 하는 말정도는 남길 실력되는데
그 사람이 싫다고 하거나 태클 걸 경우에는 해석 못할 확률이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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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11:38:52 AM
음// 아마 어나더데이 초반부에는 북한군 장교의 숙소에 일본전통갑옷이 전시되어있기도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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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11:21:21 AM
조선 기병하고 코사크 기병이 제일 재밌네요 ㅎㅎ
당나라기병하고 비잔틴기병도 허를 찌르는 재미가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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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꽁기꽁기햏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08:40:42 AM
고로사와 같은 명장들의 역사극 보면...말 50필로 동원해서 수백이 부딪히는 효과적인 장면을 (카메라 워크를) 보여주는데 국내 드라마는 마상 씬에 대한 노하우도 없고 그저 이리 저리 개떼처럼 깃대만 들고 뛰어다니는 - 그나마 그 씬도 불과 얼마 되지 않는데 엑스트라라자만 이건 뭐 개념 없이 깃발만 들고 동선을 따라 이리 저리 뛰고 있다는 게 저거 뭐야 한숨이 나올 정도로 엉성하니 문제지. 논점은 "천과지" 가 말하는 단순 비교가 아니잖아.
난독증이야. 동원된 말의 수가 아니라 기본적인 개념이 없다는 게 문제라는 거 아냐! 그저 관성에 의해 잘못을 반복하면서도 교정할 생각을 하지 않는 무성의한 제작 환경이 문제라는 지적 아냐! 기본적으로 자본의 문제가 아닌 인식의 천박함이 장애라는 거 아냐! 아무리 드라마라지만 전투 씬만큼 고증 좀 제대로 하자. 그 말하고 있는 거잖아! 국내 역사극에서 집단과 집단이 부딪히는 접전 씬이 얼마나 들어간다고 짧은 씬 처리는 시간과 성의가 중요한 거야. 졸라 성의 없음이 드러나서 항상 문제가 지적되는 거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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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하하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05:36:09 AM
아까 낮에 이 글 수정하면서 저 홈페이지에 들어가봤는데.. 방명록과 게시판이 있더군요. 아무래도 암니옴니님께서 퍼간다는 말씀을 남겨놓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홈페이지 운영자님께서 굉장한 성의를 가지고 운영하시는 것 같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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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21/2006 01:30:12 AM
그런데 아틀란티스랑 뮤대륙이랑은 서로 다른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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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보아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09:14:33 PM
일단 뮤대륙에 대해 최초의 저서를 남겼던 에리히 폰 데니켄이 낚시꾼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뮤대륙 이야기 자체가 신빙성을 잃은걸로 압니다. 자세하게 말하자면 뮤대륙이라는 전설속의 대륙이 있었다는 라싸 문서에 관한 내용은 데니켄만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확인이 불가능하다고 알고 있고 그 밖의 자료들은 태평양과 대서양의 각종 홍수설화를 조합해서 하나의 가상적 대륙을 제창한 것이기 때문에 뮤대륙 말고도 레뮤리아 대륙이나 아틀란티스 대륙 등 모든 홍수설화 대륙에 공통된 설화이기 때문에 이 또한 뮤대륙에 대한 설득력을 잃고 있지요. 오히려 간빙기의 도래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가져온 홍수에 대한 인류의 태고적 기억이 전설화 된 것으로 일반적으로 여겨지는 부분입니다. 결정적으로 데니켄이 낚시꾼이라는게 밝혀진 것은 뮤대륙 부분과는 동떨어진 외계인과 관련되었다고 주장한 남미의 금속성 동굴이 자연 동굴이라는게 밝혀졌기 때문이라고 기억합니다. 벌써 10년전에 본 내용이라 저도 좀 가물가물하네요. 아틀란티스와 플라이아데스 성단의 셈야제가 저를 사학과로 보냈기 때문에 저는 정말로 이런 전설의 대륙이 실존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만 하나씩 낚시임이 드러나고 있어서 아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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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08:56:07 P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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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05:53:00 PM
준가르네 가르단 때문에 청이 네르친스크 조약 좋다고 채결한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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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ㅇ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03:30:50 PM
이미지 업로드는 http://imageshack.us 를 사용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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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03:26:08 PM
사진이 안 올라가는군요
혹시 일시적인 에러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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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02:36:34 P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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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10:05:31 AM
일반인은 아예 모릅니다. 모르는게 나을 수도 있죠. ㅡㅗㅡ;;
그런데 저런 외국인들을 보면 혀를 차기 전에 우리 노력의 미약함에 한숨을 쉬게 되더군요. 일본재단같은거 하나만 있었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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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ryan to 역갤 블로그 at 11/20/2006 01:27:36 AM
내글 왜지웠어? 이래두 되는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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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41:49 PM
그나저나 혐국빠님. 사르허전투당시 청국의 군대와 조선의 군대가 동일한 조건에서 원거리 화력을 겨누어 조선이 패배했었나요? 그리고 일본의 철포병이 항상 동등한 조건에서 조선의 기병대를 물리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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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2:34 PM
그나저나 혐국빠님. 사르허전투당시 청국의 군대와 조선의 군대가 동일한 조건에서 원거리 화력을 겨누어 조선이 패배했었나요? 그리고 일본의 철포병이 항상 동등한 조건에서 조선의 기병대를 물리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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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2:34 PM
그리고 귀하게서 소위 말하시는 일본과 한국이 동조동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체 한국인에 해당되는 사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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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6:17 PM
이거 대충만들어서 웃기려고 올린건데 반응이 영 시원찮군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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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1:30 PM
혐국빠// 아일랜드 사람에게 잉글랜드인과 같은 나라사람이냐? 라는 질문이라거나. 스코틀랜드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면 어떤반응을 보일까요? 프랑스인에게 그대는 영국인이냐 라고 물어보면 어떤 반응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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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4:51 PM
이거 대충만들어서 웃기려고 올린건데 반응이 영 시원찮군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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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1:30 PM
그리고 귀하게서 소위 말하시는 일본과 한국이 동조동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체 한국인에 해당되는 사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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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6:17 PM
혐국빠// 아일랜드 사람에게 잉글랜드인과 같은 나라사람이냐? 라는 질문이라거나. 스코틀랜드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면 어떤반응을 보일까요? 프랑스인에게 그대는 영국인이냐 라고 물어보면 어떤 반응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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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4:51 PM
그리고 귀하게서 소위 말하시는 일본과 한국이 동조동근이라 주장하는 사람들이. 전체 한국인에 해당되는 사항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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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6:17 PM
혐국빠// 아일랜드 사람에게 잉글랜드인과 같은 나라사람이냐? 라는 질문이라거나. 스코틀랜드에게 동일한 질문을 하면 어떤반응을 보일까요? 프랑스인에게 그대는 영국인이냐 라고 물어보면 어떤 반응이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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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4:51 PM
그나저나 혐국빠님. 사르허전투당시 청국의 군대와 조선의 군대가 동일한 조건에서 원거리 화력을 겨누어 조선이 패배했었나요? 그리고 일본의 철포병이 항상 동등한 조건에서 조선의 기병대를 물리쳤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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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2:34 PM
이거 대충만들어서 웃기려고 올린건데 반응이 영 시원찮군요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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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10:11:30 PM
조선의 조총수는 사르허전투에서 청나라기병에게 관광당한다
이것은 청나라기병이 원거리전투능력이 훌륭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의 조총수는 조선기병을 곳곳마다 관광보냈다
이것은 조선기병의 무능함을 보여준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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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9:22:37 PM
조선의 조총수는 사르허전투에서 청나라기병에게 관광당한다
이것은 청나라기병이 원거리전투능력이 훌륭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일본의 조총수는 조선기병을 곳곳마다 관광보냈다
이것은 조선기병의 무능함을 보여준다
안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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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9:22:44 PM
수성전->공성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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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9:13:25 PM
고구려에 보내진 당나라군대는 고구려에서 대승을 거두지 않았습니까?
수성전에 실패해서 멸망은 못시키지만 말입니다.
그리고 조선기병이 몽골기병보다 기사를 더 잘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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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요동태수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9:11:42 PM
↑기병이 원거리 전투능력에 전술 있어봐야 조총 일제사격 앞에서는 떡이지 뭐...
조선 개국 이후 여진족을 관광시키며 돌아다녔던 조선 기병대가 나약하고 쓸모가 없다는 의견 자체가 더 이해가 안됨.
여진족의 흥기는 조선 기병이 임진왜란에 대거 투입되며 손봐줄 사람이 없어지면서 본격화된 것 아니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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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9:04:53 PM
몇번씩이나 말해줬는데도 저런 식으로 나온걸로 봐서 크리스가 무신경하거나 혹은 저분들이 흥분하는 걸 즐기려고 그랬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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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8:24:15 PM
뭐 어때요? 별일도 아닌거 같은데
반한감정 표출하는것도 아니고 외국인이 잘 몰라서 그러는건데
너무 흥분하고 화병작렬할거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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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흠냘이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8:12:14 PM
다 좋으나 이상한 얘기가 하나 있으므로 지적
"신은 조선의 기병에게 역사상 가장 뛰어난 원거리 전투능력과 전술을 부여해주셨다.
하지만 신은 조선을 매우 평화로운 나라로 만들어 주셨다."
그 나약한 조선의 기병이 가장 뛰어난 원거리 전투능력과 전술을 가졌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
만약 그렇다면 어째서 일본의 조총수들에게 그토록 무력하게 무너졌으며
여진족도 제대로 제압못해 일전일퇴를 벌였는지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에서의 상황으로 보아 조선 기병에게 전투능력과 전술 따위는 없었다고 보는 것이 당연하다
두 차례의 대전쟁이 있었던 나라가 평화로운 나라라고 할 수도 없다
잘난 친구들에게 묻어가려는 심보는 버려야 한다
그 나약하고 쓸모없던 조선기병이 어찌 저들 기병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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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7:54:40 PM
한국인은 재미있는 민족이다 평소에는
일본인은 백제인의 후손 이라거나 일본인은 한반도에서 건너간 동족 이라며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인 일본국민과 우리를 동조동근의 동격으로 놓으려고 하면서도
외국인이 한국을 몰라서 일본의 한 지역으로 보거나 일본과 다름없이 보면 흥분하고 난리친다
뭔가 앞뒤가 맞지 않다
일본이 우리와 동조동근의 후손이라면 일본과 같은 나라 같은 민족 취급하는 것에 흥분할 이유가 없다
그리고 한국인은 평소 일본의 잘나가는 문화와 업적은 모조리 우리나라 기원으로 주장하면서도
정작 외국인이 한국과 일본을 구분 못해 한국인을 일본 문화의 소비자 혹은 종사자 혹은 계승자 취급을 하면 극도의 거부감을 보이며 난리 부르스를 춘다
역시 앞뒤가 맞지 않다.
해외에서 유명한 일본의 문화 - 검도 유도 스시 다도 - 등이 평소 한국인의 생각처럼 한국 기원이라면 이러한 외국인의 인식에 거부감을 드러낼 이유가 없다
한국인이 한국문화를 영유하는 것이 뭐가 부끄럽겠는가?
위의 이야기는 한국인에게 있어서 현실과 망상의 차이를 보여주는 적나라한 에피소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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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7:49:04 PM
막말지사들은 군인이 아니라 깡패였기 때문에 그냥 평소 차고다니던 무기를 사용한 것.
실제로 신선조 애들은 실전경험이 많아서 체인메일을 입던가 집단전술, 혹은 단창까지
사용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렇게 칼질하던 애들도 후반기 내전상황에서는
다들 갑옷잘 입고 총질하면서 싸웁니다. 막말의 싸움은 전쟁이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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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4:10:20 AM
아,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언제든 학생님께서 마음대로 수정하시길.. 저야 기본적으로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정도만을 수정할 뿐, 글에 대한 권리는 글쓴이에게 있으니 저에게 묻지 않으셔도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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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2:27:01 AM
이미지 업로드는 가급적 http://imageshack.us 를 사용해 주세요. 회원가입 필요없이 바로 업로드가 되어 링크가 가능합니다.
그리고 말씀하신 부분은 수정하도록 하겠으며 상게서나 전게서와 같은 표현은 논문에서 주로 사용되는 것으로 인용 목록에 이미 나온 서적들을 재표기할 때 사용되는 용어들입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신다면 같은 책이나 같은 글로 수정토록 하겠으니 다시 말씀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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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19/2006 02:24:34 AM
전문인이 만든 드라마를 보고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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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zzz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8:40:27 PM
http://www.phpschool.com/gnuboard4/bbs/board.php?bo_table=talkbox&wr_id=407194&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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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링크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7:58:30 PM
아마도 저만한 집단전을 찍을 촬영장소를 구하지 못해서 그런 게 아닐까요? 대규모 군사들을 동원할 회전을 찍을 만한 평지가 없으니 적당한 구릉지의 적당한 공터에서 찍다보니 적당한 액션을 화면에 담으려면 난전(개싸움)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그러고보니 위의 저 영화도 캐나다에서 찍었다죠? 일본에서 마땅한 촬영지가 없었대나... 화면을 보니 과연 카도카와 하루키가 돈 처바른 뽀대는 나는군요...
하긴 그렇다고는 해도 주몽의 15인 특공대는 정말 안습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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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gil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6:15:46 PM
사실 집단 전투에서 칼싸움을 한다는 것도 웃기죠.
일반 사병은 대부분 활과 창을 쓰지 칼을 쓰지 않습니다.
칼은 비싼 쇠도 많이 들어가고, 만드는 기술도 훨씬 많이 필요하고, 또 칼로 하는 싸움 기술 익히는 것도 어렵고, 길이도 짧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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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칼싸움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5:29:15 PM
다니엘.J.다비님의 의견에 적극 동감합니다. 우리나라는 전문가와 일반인을 이어줄 중간 아마추어층이 너무 적은 것 같습니다. 국사의 경우 재야사학을 추종하는 아마추어들이 너무 많아 오히려 역효과만 내고 있고 서양사의 경우 매니아층이 너무 협소하죠..
문화 컨텐츠에 있어서 보다 정확하고 훌륭한 퀄리티의 작품을 만들기 위해선 이러한 매니아층의 형성이 시급하다고 생각합니다. 다니엘.J.다비님께서 정확하게 현상을 짚어주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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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4:01:30 PM
같은일본이나 해외에선 천과지보다 훌흉한 작품이 많습니다. 그런데, 한국에서만 유난히 이 뻘작품을 능가할만한 퀄리티작이 안나오니 애석할 따름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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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2:15:47 PM
천과 지 왜 저따위냐
차라리 대망이 낫겠다
대망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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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대망빠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1:12:46 P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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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12:12:21 PM
그리고 천과 지는 90년대것이면서 어째 배우들 연기력이 60년대영화인 풍림화산보다 떨어지는 느낌이네. 전투씬도 정황 알기가 힘들고. 특히 가장 훌륭해야할 신겐과 겐신의 일기토 장면은 고증도안맞고 박력도 없고 일본영화가 처음부터 연기력후달린건 아닌 것 같네. 사람숫자 빼고는 모든 면에서 야마모토 간스케를 다룬 풍림화산보다 못한 느낌이다.
돈 처바르고 사람 떼로 동원해도 연출이 개판이니 영화가 망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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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1:30:06 AM
다른 건 별로 큰 문제가 아니고, 제일 문제는 학계와 일반인 사이를 연결해주는 아마추어 집단이 없다는 것. 학계의 경우는 갑옷이나 무기, 진형이나 전술 등에 대한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지만, 그 훌륭한 여러 성과에도 불구하고 일반인들에게는 그 성과물을 접할 기회가 사실상 거의 전무함. 물론 최근에야 이런저런 관련 서적의 발매로 자료가 아예 부재하던 이전보다는 훨씬 나아졌지만, 중간계층을 이루는 아마추어 매니아층이 없다는 것은 굉장히 큰 악재로 작용해.
유럽이나 미주,일본의 경우, 이러한 아마추어 매니아 계층-통상 [리인액터]라고 불리는- 이 사회전반에 걸쳐 많은 활동을 하고 있으며 이들이 형성하는 시장을 겨냥하여 일본 학연의 역사군상 시리즈를 비롯해 수많은 관련 서적이 번역출판되고, 무기나 갑옷을 비롯하여 관련해 심도있는 전문 서적을 비롯해 높은 지식을 싾으며 일반인들에게 전술의 진실을 알려주는 피드백커 역할을 잘 수행하고 있지.
이런 사람들이 많을수록 사회전반적인 관련 상식이나 관심도는 제법 높아지게 되고, 리인액터들은 전쟁 관련 영화나 매체에 있어 일종의 압력단체로 작용하는 경우도 제법 있어. 자신이 관심을 가진 군대의 복장이나 무기, 전투장면, 전술운용, 전투의 진행 무엇 하나만 문제가 있어도 벌떼처럼 들고일어나고 결과적으로 그 극성이 좀 더 현실에 가까운 충실한 전투 장면을 낳게 되는 것이지. 또 그것은 왜곡되지 않은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각인 시킬 수 있게 되는 것이고. 이런 사람들이 없었다면 영화 "워털루"처럼 기병 돌격에 대항해 방진을 짜는 그런 모습은 존재할수 없었겠지.
국내에서 필요한 것은 학계와 일반인을 잇는 가교가 되어 사극에 개념을 탑재시킬 중간 아마추어 매니아 계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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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1:13:16 AM
기사들이 말에서 내리는 경우는 지형상의 이유, 방어를 위해, 혼전 상황에서 말을 타는 것이 더 위험할 경우 등 이래저래 있음. 스크럼과 화력통제(-_-;)불능 이런거와는 별 관련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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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1/18/2006 01:00:17 AM
국내 사극 전투신 보면 뻔하잖아
가벼워 빠진 칼 들고 허공을 가를 듯 크디 큰 동작으로 몇번 휘두르다 하이킥(로우킥은 절대로 안나옴) 몇번 날려주고 공중제비 같이 몇바퀴 돌다(왜 같이 도는지 모르겠음) 한놈이 맞고선 한 두세바퀴 공중에서 핑그르르 돌다 쓰러지기.
격투가 아니라 댄스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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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ㄴㅇㄴ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7:29:13 PM
IMF는 김영삼의 무능과 해외투기자본의 합작품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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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MF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7:13:37 PM
고증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았네 이 사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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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달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6:17:30 PM
흠 당신은 역갤에 출몰하는 찌질이와 비슷한 성향이군요
서론의 내용을 보고 대충 읽을 만했으나
마지막글에서 에러
강희대제님이 고증 관련해선 좀 박삭하십니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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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5:52:09 PM
집단전과 백병전은 다른거 아닌가? 물론 백병전의 기본 의미인 '몸과 몸을 부딪혀 싸운다'에 의하면 집단전도 백병전에 포함될 수 있겠지만, 대개 백병전이라 함은 전열이 무너진 상태에서 병사 개개인이 싸우는 상황을 설명하는 말로 알고 있는데.
그리고 사극이라 하길래 드라마만 말하는 줄 알았더니, 일본 영화까지 언급한 걸로 봐서는 영화도 포함시킨 거 같은데, 그렇다면 최근 영화인 '천군'에서 진법 쌓고 활 겨누고 있는 이 장면은 뭐야?
http://imgmovie.naver.com/mdi/mi/0388/C8888-13.jpg
그리고 태조 왕건에 장수끼리 일기토 벌여서 전쟁의 승패를 가른 경우는 별로 없었던 거 같은데. 애술이랑 박술희의 일기토 정도? 나머지는 그저 밤에 병사들이 뛰어다니며 와~ 하는 소리 내면서 전투신 묘사하고 끝내지 않았나? 물론 여기엔 집단전 장면은 없고 강희대제 말대로 집단 패싸움 씬만 있었지만 말야. 그것도 전봇대 보일까봐 밤에만.
뭐 강희대제 글에 딴지 좀 걸었지만, 우리나라 사극의 전쟁씬이 지극히 부실하다는 의견에 반대할 생각은 없어. 진법이라곤 눈씻고 찾아봐도 안나오고 집단 패싸움, 그것도 칼든 사람이 발까지 써가며 춤추는 꼴이나 보이며 웃기지도 않은 무협 댄스나 보여주는 건 분명하니까.
아마도 이건 옛부터 우리나라가 전쟁에 미숙해서 그러한 문화적 전통이 없었기 때문일 거야. 고려왕조 갈아 엎고 나라 세운 이성계의 군대조차 진법 제대로 몰라서 정도전이 진법 훈련시키잖아. 이런 왕조의 후손이 상무정신 보여준답시고 드라마를 만들고 있으니 제대로 될리가 있나. 일본과 중국 사극이나 베껴대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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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건달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5:21:00 PM
강희대제님. 화력이라는 말은 총포 부대와 같은 화기를 사용하는 부대에 적용되는 말이 아닌가요? 한자로도 火力이고 국어사전을 찾아봐도 공격력 대신에 사용되는 예는 없던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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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4:35:13 PM
이제 수능도 끝났으니까 개념도서들 좀 많이 읽어서
개념인으로 거듭나길 빈다...
그리고 수능도 끝났으니 활동도 좀 많이하고
흠 근데 강희대제 횽은 가만보니
드라마 고증에 관심이 존나 많구나
내가 횽이 쓴글중에 인정하는 개념글은 전부다 드라마 고증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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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3:54:47 PM
전투에 있어서 화력통제가 되는 군대와 되지 않는상태의 군대의 차이는 말안해도 다들 아실거라고 생각됩니다. 13세기 몽골군을 상대하던 유럽의 기사들도 화력통제가 안되던 상태로 자기멋대로 아무대나 대고 개인마다 멋대로 돌격을 하다가 각개격파를 당하는 설움을 겪었던 것으로 압니다. 설사 집단적으로 싸웠다 하더래도, 지방세력별로 지휘채계가 달랐기에 전략적 유연성이 상당히 떨어졌습니다. 대게는 아주 소수의 집단이 별개로 행동하다가 몽골군의 대부대와 먼저 맞닥뜨려 괴멸되는 경우였고, 이런식으로 당해놓고서 나중에 유럽서가들은 몽골군의 숫자가 유럽군보다 훨씬 많았다고 평가하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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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3:05:51 PM
영국이 일본과 같은 섬나라라서 그런 것일까요? 묘하게 공통점이 있는 것 같네요.
일본 역시 기마대가 있었다곤 하지만 실제로 말은 운송수단이었을뿐 전장에 도착하면 말에서 내려 싸웠다곤 하죠.. 다케다 기마대 역시 마찬가지이고..
일본의 경우 말이 부실해서 그랬다고 들었는데.. 영국은 왜 그랬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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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풍림화산 to 역갤 블로그 at 11/17/2006 01:49:20 PM
와우식 세 줄 요약 ::
장비 좋은 애들로 팀짜서 전장도니
이기는게 당연해져서 존내 방심하고
닥돌만 하다 정신차려보니 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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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스트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9:45:52 PM
이미지 업로드는 http://imageshack.us를 사용하시면 됩니다. 회원가입 없이 바로 이미지가 업로드 됩니다. 본문의 이미지는 클릭하면 원래 크기로 볼 수 있도록 모두 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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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9:37:03 PM
글 수정해서 볼만한 모양으로 만들어주신 분 감사.
이거 뭐 그림 넣는 것도 겨우겨우 넣었음. -_-;
사실 아래쪽 글에도 의미없는 그림 몇 장 넣을랬는데
그림이 안올라가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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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스트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9:18:21 PM
오굴아육호 //
아래쪽 글에서도 언급됐지만, 영국기사들이 하마해서 싸우는걸 잘 했던거 같아. 꼭 웨이크필드 뿐만 아니라 백년전쟁때나 보스워스 같은 경우도 dismounted men-at-arms 가 꼭 언급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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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스트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9:17:18 PM
미스트햏의 글은 수준이 높은데도 배경지식이 없어도 잘 이해가 되는구려. 감탄 또 감탄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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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9:10:19 PM
출처만 밝혀주신다면 당연히 괜찮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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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8:35:24 PM
랄라라님 퍼가도 될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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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자드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6:22:34 PM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당시 기사들을 보면 말 그대로 "닥치고 돌격!" 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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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12:25:32 PM
당시 몽골군의 유럽 원정 중 레그니차 전투의 상황은 얀 듀고츠 연대기에 그 내용이 실려 있더군요.. 실제로 이 연대기의 영문판 축약본의 해석이 역갤에 올라온 적이 있습니다. 여기를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영문판은 여기입니다.
저야 여기에 대해서 아는게 없기 때문에 특별한 의견을 말씀드릴 수는 없지만, 위 연대기에 기재된 당시의 전투 상황을 보면 몽골군이라 해도 유럽기사(폴란드 부대)의 돌격에는 상당히 약한 모습을 보였던 것 같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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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01:07:29 AM
몽골군 역시 정면으로 돌격전을 벌여서 쓸어버린 건 아닙니다. 파르티잔 전술로 상대했죠. 도망치는 녀석들 열심히 쫓다보니 어느 새 적진 한복판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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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스카이호크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12:34:37 AM
그토록 화살과 돌격에 강한 유럽의 기사들을 몽골군은 단번에 쓸었으니.. 정말 몽골군의 강력함은 대단하군요. 덜덜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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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16/2006 12:23:11 AM
우선 피해자의 증언을 100%으로 신뢰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대해서 언급을 하자면 당연히 "아니오"가 되겠습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피해자의 증언따위는 과거의 일을 이해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고 주장하실게 아니라면 저로서는 크게 할말이 없습니다. 이 글을 제외하고는 피해자의 증언에만 의존하는 내용은 최대한 배재했는데, 신빙성의 여부를 지적하는 반론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입니다.
소개한 사례 중에는 전적으로 피해자의 증언에 근거하는 있는 사례가 있는가 하면, 당시 현장을 취재했던 기자(김영택, 동아일보)의 기자수첩을 따른 것도 있습니다. 기자라는 직업의 특성상 그의 관찰과 활자화된 글에는 단순한 증언 이상의 객관성을 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니라면 우리가 신문을 읽을 필요조차 없겠지요.
이 문제를 단순화 시켜보면 증언을 믿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될 것입니다. 믿든지 말든지 하는 교묘한 상대화로 종결짓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믿는다면 그에 합당한 근거가 있을 것이고, 믿지 않는다면 그에 합당한 근거가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 글에서 소개한 증언들에 나는 상당히 높은 신뢰를 보내고 있으며, 그 이유는 1,2,3,4-1 의 글을 통해 어느 정도 밝혔다고 생각합니다.
결론적으로 나는 이 주장의 진실/거짓 여부를 완벽하게 밝혀낼 능력은 없습니다. 또한 그럴 필요조차 못느끼는데, 이 주장들이 신뢰할만하다는 증거는 널려있어도 이 주장은 신뢰할 가치가 없다는 근거는 찾아보기가 힘들기 때문입니다.
혹시라도 그러한 근거들을 제시해준다면 저의 편협한 지식을 넓히게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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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학생 to 역갤 블로그 at 11/15/2006 09:39:12 PM
그럼 이슬람인들에 대한 적대심 때문에 저렇게 그린 걸까요? 살라딘은 기독교도로부터 존경받았다고 들었는데 꼭 그런것은 아닌가 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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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터번 to 역갤 블로그 at 11/14/2006 07:49:30 PM
유럽인이 그린 겁니다 그런 생각은 하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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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1/14/2006 07:24:47 PM
으.. 살라딘이 쓰고 있는 터번은 너무 징그럽게 생겼네요. 마치 괴물의 뿔처럼..
저런 터번이 요즘도 존재하고 있나요? 터번도 계급에 따라 모양이 다른가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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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터번 to 역갤 블로그 at 11/14/2006 04:00:02 PM
영어 책 아니면 ibid 보기 힘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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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朴下史湯 to 역갤 블로그 at 11/14/2006 03:34:43 AM
그 혼란의 거리에 어린애가 있었다는게 상식적으론 이해되지 않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사망자중에 어린애도 있겠군요
물론 그 어린애는 총상이 아닌 압사로 기록되어 있겠죠
학생님께서 검증해보는건 어떤가요?
증언의 신빙성을 알아볼 수 있는 한 예가 되겠죠
피해에 관한 유언비어도 굉장하지 않았나요?
경상도 군인이 다 죽인다거나 대검으로 젖가슴을 도려냈다거나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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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 to 역갤 블로그 at 11/13/2006 01:36:41 PM
역갤블로그를 자주읽는 사람으로서,
이 시리즈를 나름 괜찮게 읽고있는사람입니다.
강준만의 한국사 산책 5.18편에서는 화염방사기로 사람을 태웠다는 일화도 나오고
어느 짧은 책자에서는, 심지어 공수부대의 탱크가 돌진하였고 사람들이 놀라서 피했는데 그 탱크가 미처 피하지 못한 어린애를 깔았다는 증언도 있더군요. 그러나, 지금보니까 그게 날조된 발언인지, 아니면 진짜인지는 겪어본사람이 아니면 제3자입장에선 모르지요.
하지만, 그 천안문 6.9 탱크에 깔린 사람의 시체사진은 중국공산당 진압의 잔인함을 몸에 와닿게 만드는걸 감안하면
광주에서 당시 맞아죽은 시체의 사진을 봤을때 충분히 그럴만할것같다... 라고 생각하는게 현재로서는 제 생각의 전부일듯합니다. 물론,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속단은 이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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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좀비맨 to 역갤 블로그 at 11/13/2006 09:59:09 AM
증언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는 역사학계의 중요한 이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 역시 피해자들의 증언을 제외하면 증거가 전무하다시피하고(납치, 성폭행했는지 누가 기록으로 남겼대?)
전쟁에서의 학살, 인종청소같은 범죄도 증언 외에는 증거가 거의 없다(그렇다고해서 전부 그런건 없다! 라고 할 수도 없지)
이 사안은 역사학계에서 진행중인 이슈이므로, 속단은 이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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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 to 역갤 블로그 at 11/12/2006 01:57:03 AM
IMF사태를 100% 김영삼 책임으로 돌리는 것도 무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혹시 김영삼 책임없다! 국제투기자본의 음모다!
라고 해버리면....ㅋㅋㅋ
경제갤에서 사람 좀 불러야겠군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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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경갤러 to 역갤 블로그 at 11/12/2006 01:00:58 AM
난또 참고문헌을 그냥 나열한줄만 알았더니 인용이나 참고문구에 따로 번호표시를 해둔거였네ㅋㅋ 근데 설마 ibid같은걸 모를 사람이 있나? 논문이 아니라 그런건 일반서적만 봐도 자주 나오는거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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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1/11/2006 07:10:56 PM
살라딘의 본명은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입니다. 살라흐 앗 딘은 존칭입죠.(신앙의 빛.. 인가 그럴겁니다) 아랍어를 모르는 유럽 친구들이 살라흐 앗 딘~ 이라고 들었으면 그게 뭔 뜻인지 알겠습니까. 살라후딘, 살라아딘 식으로 기록하다 살라딘이 된 것이겠죠.
알라딘의 경우, 알라 앗 딘.. 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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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hyhn217 to 역갤 블로그 at 11/11/2006 05:33:12 PM
살라딘의 원래이름은 살라흐 앗딘 유수프 이븐 아이유브잖아요. 그런데 왜 살라딘이라고 부르게된거죠? 알라딘도 본래이름은 따로 있는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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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궁금이 to 역갤 블로그 at 11/11/2006 02:32:33 PM
근대 이전엔 무조건 유럽이 미개했다고 주장하려는 동양우월론자들 보면은 짜증난다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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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ㄴ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1/11/2006 01:38:00 PM
수정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언제든 마음대로 수정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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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09/2006 01:25:42 AM
당시 동유럽은 서유럽과 기병전술이 달랐나 보죠? 더 단순했나요? 아님 더 발전되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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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ㄴㅇㄴ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4:42:45 PM
한국의 경제발전은 박정희의 공이 아닌 한국민의 공이다. 따라서 IMF 역시 김영삼의 과가 아니라 한국민의 과이다.
- 이상 좌파의 논리에 의거한 IMF 책임론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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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ㄴㅇㄴ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10:18:22 PM
굉장히 이해 쉽게 글써주셨군요. 재미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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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중딩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12:39:55 P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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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6:16:40 PM
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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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1:39:47 AM
당시 동유럽은 서유럽과 기병전술이 달랐나 보죠? 더 단순했나요? 아님 더 발전되어 있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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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ㄴㅇㄴ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4:42:45 PM
5.18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선 위와 같은 증언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겠죠.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럴만 하니까 당한 것이다'라고 생각할지도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위와 같은 행동들이 시민들의 폭동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생각할테니까요.
제 경우 5.18을 누가 먼저 야기한 것이냐 보다는 그 과정에서 불순세력의 개입이 있었느냐가 더 궁금했는데... 학생님의 심층적인 분석이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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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08:21:10 AM
제 글들을 주욱 돌아다니며 보면 아시겠지만 항상 페이지 넘어가고 난 뒤에 저에 대한 인신공격을 하는 무닉들이 있습니다. 아우라는 무닉이 아니면서 이런식의 인신공격을 하는 유일한 케이스라고 하겠죠. 그래서 써본겁니다. 송태조님 말로는 그 아이피 중에 모 일빠 찌질이도 껴있다고 하는 얘길 듣고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상대해서 얻을게 없다는건 너무도 잘 알지만 계속 저렇게 꼬리물고 따라와서 찌질대니 짜증이 밀려와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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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01:07:41 PM
후아~ 잘 읽었습니다 ^^ (사진도 없고 텍스트만 빽빽해서 읽다보면 좀이 쑤심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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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11:53:12 AM
그렇다면 IMF는 YS의 탓이 아니란 건가요? 그 부분이 앞으로 어떻게 다뤄질지 궁금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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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10:04:51 AM
로직햏께서 aura햏과 싸우게 된 '주장'을 정리해서 글로 올려주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이해와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이오. 자신의 주장이 아닌 타인과의 언쟁 내용을 올려봐야 사람들은 쉽게 이해할 수 없고 햏의 불쾌감만 전해지게 되니 햏에게 좋을 것이 없소. 위에서 말한대로 뒷담화에 지나지 않는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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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경꾼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11:04:24 AM
5.18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선 위와 같은 증언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겠죠.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럴만 하니까 당한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위와 같은 행동들이 시민들의 폭동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생각할테니까요.
제 경우 5.18을 누가 먼저 야기한 것이냐 보다는 그 과정에서 불순세력의 개입이 있었느냐가 더 궁금했는데... 학생님의 심층적인 분석이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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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08:21:25 AM
잘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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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10:10:21 AM
5.18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에선 위와 같은 증언들이 가슴에 와닿지 않겠죠. 겉으로 표현은 하지 않지만 아마도 '그럴만 하니까 당한 것이다'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그들은 위와 같은 행동들이 시민들의 폭동에 대한 정당한 대응이라고 생각할테니까요.
제 경우 5.18을 누가 먼저 야기한 것이냐 보다는 그 과정에서 불순세력의 개입이 있었느냐가 더 궁금했는데... 학생님의 심층적인 분석이 기대되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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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08:21:25 AM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운영하고 계시는 그분이군요.
서유럽의 기병전술이 별 거 없었다는 주장에 대한 반론인 이 글은 마치 유럽에 제대로 된 검술이 없었다는 주장에 대한 미스트님의 반론의 후속 시리즈로 보입니다. 비슷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군요.
앞으로도 유럽에 대한 다른 편견이나 오해에 대한 미스트님의 반론 시리즈를 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발군의 글, 잘 읽었습니다.
*玉蔚亞育護님에게
학술회장에서 발표하는 논문이 아닌 이상 참고문헌에 ibid이나 opcit같은 표기를 할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일반인은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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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9:03:58 AM
학생님이 폭도가 아니라고 친절하게 설명하고 있는데 무슨 엉뚱한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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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8:45:31 AM
근대말야 참고서적중에 중복되는것들은 모야??? 혹시 은근슬쩍 저런식으로 참고서적을 늘려서 되도록 많은 자료를 접했다고 자랑하려는거?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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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7:55:52 AM
글 분류는 제가 해드리고 있으니 신경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글 수정은 글쓰기 메뉴를 클릭한 후 수정 메뉴에 들어가시면 됩니다. 이 또한 제가 해드리고 있지만요.
그런데 인용목록을 보니 후덜덜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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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01:06:52 AM
아놔... 이거 당췌 로그인을 어디서 해야 하는지를 모르니 수정도 못하겠고
-_-;;;
몰라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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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스트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12:46:06 AM
오오 드디어 미스트님께서 글을 남겨주셨군요. 곧 보기 좋도록 편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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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1/10/2006 12:45:35 AM
폭도들에게 인권은 과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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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09/2006 04:25:00 PM
전편을 모두 합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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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09/2006 04:50:27 AM
글 삭제는
글쓰기 -> 수정 -> 삭제
의 메뉴를 거치시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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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1/09/2006 01:29:26 AM
광주의 아픈 상처를 자꾸 건들지 마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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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그네 to 역갤 블로그 at 11/08/2006 01:40:03 AM
그렇다면 상대를 하지 말았어야 했소. 로직햏 말대로 그런 사람이라면 상대해서 얻을 것이 없소. 부디 이성적으로 행동하길 바라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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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구경꾼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12:49:37 PM
주장으로 싸웠다면 정리해서 이미 올렸죠.
저 분이 친일 문제로 시비 걸길래 그럼 친일 문제로 저랑 대거리 해보자 하니까
그 뒤로는 침묵
제가 가는 글마다 리플로 딴지 거는 일 밖에 안한거고 그거 모두 정리해서 올린겁니다.
그리고 그 전에 둘이 논쟁했던 글은 아우라님 주장으로는 "제가" 자기 리플을
다 지웠다고 난리를 치는데 저는 지운적 없으니 "누군가" 리플 논쟁을 지웠겠죠.
저도 답답해서 미칩니다. 진정 토론한 내용이 있으면 올리겠습니다.
상대는 토론하자면 도망다니고 그 뒤에 군중들 틈에 끼여서 욕만 하고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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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12:14:18 PM
증언은 검증을 받아야 한다
약자의 입장에서 나온 말이라고 해서 무조건 믿는 것은
검증이 아닌 맹신일 뿐이다
그리고 위의 책들이 증언자의 말을 그대로 기재했는지도 검증해야 한다
또한 시민의 폭력행위도 거론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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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북두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11:25:42 AM
지 이름도 없이 남까는 색히가 남보고 뒷담화니 앞담화니 존내 웃긴다. 그렇게 인생 비굴한가? 그렇게 까면 니가 남들보다 우월해보이냐? 이 우월 중고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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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10:14:19 AM
뒷담화라.........멀쩡하게 밀갤에서 이 문제로 아우라랑 논쟁까지 했는데 뒷담화? 글이나 보고 까라 밑에 리플 토론까지 달아줬는데도 GR이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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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10:10:26 AM
전편은 어디에서 볼 수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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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사자왕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08:29:41 AM
언제나 보지만,,,
로직은 참 철없는 젊은이같다
에휴
동정도 안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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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앞담화 to 역갤 블로그 at 11/07/2006 12:58:32 AM
역갤에서 518로 헛소리를 하더니 학생님 말에는 한마디도 대답 못하고
말바꾸며 도망이나 치는구나
에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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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나즈 이 찌질이는 to 역갤 블로그 at 11/06/2006 07:03:47 PM
안까는게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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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뒷담화는 to 역갤 블로그 at 11/06/2006 07:01:31 P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등록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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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1/06/2006 06:13:11 PM
암니옴니님 1, 2편도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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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1/06/2006 03:03:55 PM
내 리플 어디갔찌? 아무튼 나즈는 광주폭동설 주장하다가도 학생님 글만 나오면 침묵이구나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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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1/06/2006 02:37:06 PM
Good desig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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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Nancy to 역갤 블로그 at 11/05/2006 02:53:59 PM
Nice 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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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Lena to 역갤 블로그 at 11/05/2006 02:53:35 PM
자게에 쓰려다가 실수로 여기 썼는데 삭제가 안되네요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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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1/05/2006 12:09:13 PM
인용문의 경우 오타 수정 시에 유의해주길 부탁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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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학생 to 역갤 블로그 at 11/05/2006 05:42:56 AM
퍼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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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1/04/2006 08:23:16 AM
저도 무기 차이를 넘어서지 못했을거라 생각합니다.
대표적인 예가 임진왜란때의 일본군이죠.
조총으로 조선군을 압박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해전에서의 이순신 장군의 화력전이 유효했다는 것입니다.
일본은 전통적인 단병전(윗글에서의 마케도니아 중보병)을 전술로 삼았기 때문에
판옥선의 무서움을 수없이 겪었으면서도 끝까지 아다케의 돌격방식을 유지했습니다.
결과는 화력전의 원리를 모르는 원균이 지휘했던 칠천량해전 단 한번을 빼고는
일본수군의 전패였죠.
심지어 300척인 넘는 전선으로 13척의 전선을 이기지 못한적도 있을정도로요.
적이 4m 짜리 창으로 다가오면 4m 이상의 거리만 유지한채 뒤로 물러서며 총을 쏘면 됩니다.
중보병은 결코 총병의 기동력을 따라올 수 없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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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김형희 to 역갤 블로그 at 11/02/2006 12:23:24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