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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일본의 저러한 채권만기연장 거절에 대해 마치 일본정부의 악의적 행동인냥 왜곡하는 한국인들이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일본 재무성의 보고서를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http://www.mof.go.jp/jouhou/hyouka/honsyou/14nendo/hyoukasho/sougouhyoukasho/ronten1.htm
3.한국
한국에서는 97년초부터 중소 재벌의 파탄이 계속되어 타이 바트화가 폭락한지 얼마되지 않은 97년 7월 15일에 기아 그룹의 중추인 기아 자동차가 파탄하여 큰 충격을 주었다.
9월 8일에는 중앙은행이 기아그룹의 메인은행인 제일은행에 1조원의 특별 융자를 실시할 정도로 금융 불안이 가속화 되었다. 그후 한국은 11월 21일에 IMF에 지원을 요청, 12월 3일에 IMF 지원 패키지 합의로 진행되었다. 한국도 타이와 같이 외화 준비가 고갈된 단계에서 IMF에 지원을 요청하였기 때문에 요청 자체가 이미 너무 늦었다는 비판도 있다.
이 합의로 IMF 210억 달러 세계은행 100억 달러 ADB 40억 달러에, 제2선 준비금 230억 달러를 포함한 총액 580억 달러를 초과한 지원이 결정되었다. 그중에 일본은 제2선 준비로서는 최대인 100억 달러를 위탁했다.
그러나 이 지원은 94년의 멕시코 위기를 웃도는 과거 최대의 규모였음에도 그 발표는 시장에 안도감을 주지 못하였고, 또한 타이와 인도네시아에 대한 IMF의 지원 패키지가 당초 효과를 주지 못한 것도 연상시키는 바람에, 시장에 반대로 악영향을 주었다. 11월 21일에 1달러=1,05518원이었던 환율은 12월 11일에 1달러=1,719원까지 급락했다.
일·미·유럽의 민간은행이 한국용 차관의 회수를 가속화하여 외화 준비가 급속히 바닥날 가능성이 한층 높아졌다. 등급기관인 S&P는 12월 22일 한국 소버린 등급설정의 재검토로, BBB-로부터 B+로 단번에 4등급 인하했다.
사카키(2000)에 의하면, 이 때 한국의 단기 대외채무의 대부분이 한국의 민간은행에 집중하여 97년 12월 12일 시점으로 한국의 주요 은행이 안고 있던 단기 대외채무 잔고가 320억 달러였는데, 그 차입처의 내역은 일본이 118억 달러, 유럽 전체로 118억 달러, 미국이 42억 달러였다고 여겨진다.
이 일·미·유럽의 민간은행에 대한 채무 반제 연기(rescheduling)의 성공 여부가 확실히 한국의 국가 파산을 회피할 수 있을지의 열쇠를 잡고 있었다. 이 때 일본정부는 자국은행에 대해서 반제 연기의 설득에 분주했다. 일본내의 금융시장이 혼란한 가운데, 일본 정부는 단기간중으로 자국은행의 합의를 얻어 98년 1월 29일에 일·미·유럽 민간 은행단의 단기 채무 연기 교섭을 타결로 이끈다.
이 교섭 타결은 시장에 큰 임펙트를 주어 1월 29일에 1달러=1,678원였던 환율은 다음 1월 30일에는 1,524원까지 값을 되찾는다. 교섭 타결이 준 안도감에 가세하여 97년 12월에 취임한 김대중 대통령에 의해 해외로부터의 증권투자에 대한 규제가 완화되어 대외증권투자의 유입이 촉진되었다. 한국의 국제 수지는 안정을 되찾아, 한국은 통화 위기를 받은 아시아 여러국가 중에서도 빠르게 위기 극복을 하였다.
4.정리
3개국에 있어서의 일본의 지원을 총괄 평가하고 싶다.
일본정부는 한국에서는 최대의 포인트인 민간은행의 단기 대외채무 문제에 대해서 일·미·유럽 민간 은행단에 의한 한국 금융기관의 단기 채무 연기 교섭으로 큰 역할을 완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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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1/24/2006 07:21:28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