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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0년대 미곡소비량을 단순 조선인, 일본인으로 비교하면 평균치가 거의 두배정도
차이납니다. 특히 이건 1920년대 80%수준에서 60%이하로 떨어진 것으로 미곡생산량
이 증가할수록 농민은 가난해 진다는 아이러니입니다.
게다가 이 미곡생산의 35%~45%정도는 일인지주토지에서 생산된 것입니다.
저는 그래서 일제시대 농업생산을 두가지 관점. 민족별 차별과 계급적 차별
두가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이른바 민족자본이라 불리는
자금의 원천은 이러한 미곡수출로 인한 수입이 중요한 원인을 차지합니다.
반면 언제나 그렇듯 결론은 "그래서 농민은 더더욱 가난해 져 갔다."정도
될 듯합니다. 물론 이것은 1920년대 초반부터 1930년대 중반까지의 경향을
바라볼때 나온 것입니다. 2차대전을 전후한 통제경제시절에 대한것은 저도
잘 모르거든요.
다만 사회적으로 바라볼때 농민의 비율이 전체인구의 80%에 달하고 그중 절반이상이
소작농으로 전락해가는 사회구조변화를 바라볼때, 조선시대 관습적으로 인정되던
도지권을 상실하고 양반지주들의 사회환원책임을 면제받은 경제지향의 '신양반'들이
사회의 상위계급을 형성하는 일제시대가 과연 사회구조적으로 근대화 되었는 지에
대한 심각한 의문은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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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8/2006 03:31:58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