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코멘트의 '역갤 블로그'를 클릭하면 해당 게시물로 이동합니다.
"일본으로 쌀이 건너 간 것은 두 지역 간에 성립한 시장의 작용으로 쌀이 수출된 결과이며 "
"쌀이 일본에 넘어 간 것은 쌀을 확보한 지주와 '농.민.'들이 그것을 일본으로 수출했기 때문"
본문의 이영훈 교수의 말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먼저 저 위에 말장난은 넘어간다 치더라도....
이병도교수가 한 '약탈'은 옳은 말이고 현국사교과서의 '수탈'은 틀린말이다??
참고로 약탈은 강제성이 더 강한 어휘입니다.
이것은 이영훈이 칭찬한 조좌호의 글입니다.
일본 자본주의가 급격하게 발전하여 국내에 큰 식량문제를 일으키게 되자 한층 더 조선의 쌀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일본은 1920년부터 조선의 산미 증식 15년 계획을 세워 920만 석의 산미를 증산시키려 하였다. 이것은 계획대로는 실현되지 않았으나 이에 의하여 조선은 완전히 일본의 식량기지가 되었던 것이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조선의 산미는 계획대로 증산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대일 수출은 격증한 점이니 이는 증산된 분량보다 훨씬 더 많은 쌀이 일본에 수출된 것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한국 내의 쌀 소비량이 감소하였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었다. 즉 한국인은 자기가 생산한 쌀은 먹지 못하고 만주에서 수입한 잡곡으로 배를 채우지 않으면 아니 되었던 것이다. 이리하여 한국의 경제는 쌀 중심으로 개편되어 완전히 일본 경제에 종속하는 식민지 경제가 되고 말았다.
이것은 현재 국사교과서의 본문입니다.
일제는 공업화 추진에 따라 부족한 식량을 우리 나라에서 착취하려는, 이른바 산미증식계획을 세워, 이를 우리 농촌에 강요하였다. 1920년부터 15년 계획으로 추진된 산미증식계획은 920만 석 증산이라는 무리한 목표를 설정하였기 때문에 증산량을 달성하지는 못하였다. (중략) 그러나 미곡 수탈만은 목표한 대로 수행함으로써 우리 나라 농촌 경제를 파탄에 빠뜨리게 하였다. 증산량보다 훨씬 초과한 양의 미곡을 수탈당함으로써 우리 농민은 식량 사정이 극도로 악화되어 기아 선상에 허덕이게 되었다. 이에 부족한 식량을 만주에서 생산되는 값싼 잡곡으로 충당하려 하였으나,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는 못하였다.
과연 저 두 서술에서 의미있는 차이가 있습니까?
수탈이라는 단어를 썼다고? 이병도교수는 약탈이라는 단어를 써도 정론이고 현 국사교과서는 수탈이라는 단어를 썼기 때문에 잘못된 것이다? 분량의 차이? 저는 임란해전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찬양하는 충무공에 관련된 국사교과서의 서술은 세줄을 넘어가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수천년역사를 담은 교과서니까요. 미국과는 다르죠.
그냥 정치지랄이죠. 단순한 겁니다. 노무현 시대에 교과서는 무조건 마음에 들지않는다. 왜! 왜 그말을 못해!!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1/29/2006 10:34:38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