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 코멘트의 '역갤 블로그'를 클릭하면 해당 게시물로 이동합니다.

암니옴니님.... 이거 저희까페에 낚시글이라고 올리시지 않으셨나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10:32:05 PM
회화에 고증 부족한것에 까지 열내지는 않습니다..; 그당시에는 그만한 고증을 할만한 인프라가 부족했었던것이고.. 현재야 인프라가 있음에도 노력을 안하고 있으니까 비판을 하는것이지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10:30:27 PM
예술품이군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07:17:27 PM
지나가다//저 또한 역사에 관심이 있다가 요즘 경제사쪽으로 관심이 바뀌어서 그런지 많이 알지 못합니다. 다만 앞으로도 제가 이해할 수 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음//블랙-슐츠 공식에 대해서는 저도 많이 알고 있지 못합니다. 아시는 펀드 매니저나 경제 관련 학과 출신의 친구분에게 문의하시는 것이 좀 더 자세한 답변을 들을 수 있을 듯 합니다. 제가 아는 한도 내에서 답변을 드리자면 해당 공식은 채권이나 옵션 등의 미래 가격이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를 확률적으로 계산해내는 수학 공식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
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02:09:20 PM
난 서튼 侯의 투구인줄 알았네 그냥 영어로 HOO이군요.
그나저나 저거 땀차면 캐안습이겠는걸?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01:46:31 PM
마까마트 13세기 사본, 잊을 수 없는 명장면
"턱아래 검은 것은 음모인가?"

--
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12:34:20 PM
담당자의 답변을 보고 싶다 주소 좀 불러다오

--
Posted by 짱깨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08:43:09 AM
오구라친일파다!!!
"전투를 하기 전에 일기토를 벌이는 것은 이 시대에 흔한 일이었다."
일기토를 순수 한국어인 맞짱으로 바꿔써라~~ 오구라 친일파 우우우~~ 대한민국 만세!

--
Posted by 대한민국 만세 to 역갤 블로그 at 12/31/2006 01:43:52 AM
나그네// 저도 많이 알지 못합니다. 이제 막 배워나가는 중이고요. 졸문 읽어주시고 답글을 달아주시니 고맙습니다.

--
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2/30/2006 11:57:16 PM
펌글의 경우 정확한 출처를 남겨주셔야 합니다.

이전복·손옥량 著, 『발해국』

--
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2/30/2006 10:40:55 PM
펌글의 경우 정확한 출처를 남겨주셔야 합니다.

이전복·손옥량 著, 『발해국』

--
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2/30/2006 10:27:49 PM
그림도 좀 넣어주세요

--
Posted by 나그네 to 역갤 블로그 at 12/30/2006 04:31:31 AM
미친고양이님 글 잘 읽고 있습니다. 제 경우 역사에 관심이 많아 상대적으로 시사/경제쪽으론 상식이 부족한데 덕분에 유익한 지식을 얻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많이 올려주시길..

--
Posted by 나그네 to 역갤 블로그 at 12/30/2006 04:26:08 AM
이런건 나중에 대학교수한테 돈받고 팔면 되겠다

하악하악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29/2006 10:59:27 PM
미디어몹//어이쿠 이런 가문의 영광이...
고어핀드//ㄳㄳ

--
Posted by 미친고양이 to 역갤 블로그 at 12/29/2006 12:54:50 PM
어쩔때보면 대열을 잘 갖추고 있다가도 일단 붙으면 무협지식 1:1 싸움이 되버릴때의 난감함 -.,-

--
Posted by Domitos to 역갤 블로그 at 12/29/2006 11:33:59 AM
잘 봤습니다. 미디어몹 메인에 링크된 거 축하드려요 :D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29/2006 10:50:00 A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메인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
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2/29/2006 10:38:36 AM
요새는 이런 근현대사 토론이나 게시글에 눈이간단 말야... 잘읽었습니다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28/2006 11:10:44 PM
난 이런글이 되려 재미있는데.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28/2006 10:51:09 PM
개인적으로 볼때는 孤藍 眞明行씨 주장이 좀더 설득력이 있는것 같은데..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28/2006 10:35:52 PM
아 이거 재미있내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28/2006 10:28:33 PM
로직햏이 의견을 써달라고 했으니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몇가지만 말해보겠소. 먼저 이녁햏의 의견에 대한 동조를 쓰겠으니 부디 반론이 있으면 이녁햏에게 하기 바라오.


우선 한국인의 시각과 한국적 시각이 무엇인지 최소한 구분 정도라도 해주어야 했다는 이녁햏의 말에 동의하오. 로직햏의 글을 읽으면서 저 부분부터 이해가 힘들었소. 메이지 유신에 대해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하면서 그 뒤에 한국인의 시각이 아닌 한국적 시각이라 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소. '한국인들'의 시각과 '한국인'의 시각은 다른 것이오? 이 때의 한국인 역시 한국민 전체 혹은 다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다음으로 소수에 불과한 일부를 전체 한국인인냥 확대하여 허상의 한국인 이미지를 만들어 공격하고 있다는 이녁햏의 지적에 동의하오. 대체 한국인 가운데 몇 %가 "최익현은 세상 물정 모르는 유생 찌질이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하고 최익현은 사이비 교주이며 김옥균은 친일파 매국노"라 하고 있소? 내 주변 인물 가운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는 본 적이 없소. 또한 "박정희는 독재자라 안되고 김구는 테러리스트라 안되고 이승만은 친미 모리배라 안되고 여운형은 빨갱이라 안된다"라 하는 사람이 전국민 가운데 몇%요? 이것은 앞보단 나은 예시이지만 역시 소수에 불과한 의견이요. 박정희더러 독재자라 안된다고 하는 이들은 소수 좌파세력 혹은 민주화운동 경력자들뿐이오. 다수의 국민은 그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로 뽑고 있소. 인기투표 1위가 박정희인 것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오. 그리고 김구더러 테러리스트라 하는 이들은 김완섭과 그 부류인 극소수만이 보일뿐이오. 이승만더러 친미 모리배라 욕하는 이들은 일부 좌파세력외에 없소. 다수는 한국전쟁 당시 국민을 속이고 도망친 것으로 욕하오. 여운형더러 빨갱이라 욕하는 이들은 일부 우파세력외에 없소. 다수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물로 알 뿐 구체적으로 뭘했던 사람인지 모르오.

로직햏은 평소 자신의 생각에 반대한 소수의 세력에 대한 반감이 큰 나머지, 일부를 전체로 확대하여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듯 하오.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고쳐야 할 것이라 보오. 이러한 로직햏이 이녁햏에게 감정적인 부분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소.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로직햏의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녁햏의 지적에 동의하오. 왜 일본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이오? 왜 그들의 역사관이 옳은 것이오?

나는 일본인의 역사관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오. 로직햏은 왜 그들의 태도가 옳으며 본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설명했어야 했소. 내가 보았을 때 아마도 로직햏은 그 이유로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했고 현재도 경제대국으로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그들의 역사관이 이러한 현재의 일본을 만든 한 요인이며 따라서 이들의 역사관이 우월하고 옳다"고 보고 있는 듯 하오. 아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오. 그래서 타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듯 하오.

그러나 그들이 잘나가는 것과 역사관의 옳고 그름의 상관관계를 먼저 설명해야 하지 않겠소? 로직햏의 글 어디에도 상관관계를 설명한 부분이 없소. 그저 현대 일본이 잘났으니 그들의 사고방식 역시 우월할 것이란 전제하에 주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듯 하오. 그러나 일본인 특유의 영웅만들기로 인해 역사적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녁햏의 지적을 로직햏은 유념할 필요가 있소. 그리고 일본인의 역사관이 옳다는 근거와 반론의 제시가 필요할 것이오. 단지 우리처럼 조상을 물고 뜯지 않으니 보기 좋아서 그렇다는 것은 근거가 될 수 없을 것이오.

한 가지 더 로직햏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자 하오. 로직햏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이해와 관용을 보이지 않소. 비난이 아닌 건전한 비판이라도 매우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로직햏이오. 로직햏이 존대말을 써서 대답하더라도 그 격한 심정과 불쾌감은 낱낱이 드러나오.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기 힘들다면 차라리 댓글을 거부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그러나 로직햏은 관심을 원하고 있지 않소? 그렇다면 쓴소리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이녁햏의 주장에 대해서도 몇가지 비판을 하겠소. 이녁햏은 김종현씨의 주장을 인용하여 페리의 흑선내항과 강화도조약은 그 성격이 다른 것이라 하고 있소. 이는 반일감정이 있는 한국인에게는 먹혀들기 쉬운 주장일 것이오. 또한 어느정도 권위에 의존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관계를 규정짓는 것이 아닌 성격의 옳고 그름을 규정짓는 문제에 대해 당사자인 한국인의 저술은 객관성을 가지긴 힘드오. 당시 미국과 일본정부의 내부문서나 회의록 등의 각종 자료를 토대로 보다 실증적인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오.

물론 이런 작업은 전문학자들에게도 매우 힘들 것이고 또한 이런 논의에서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들어갈 것을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오. 그렇기에 이녁햏은 '자유무역적 제국주의'와 '경제적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김종현씨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제3자가 만들었지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과연 각각 전자와 후자의 개념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김종현씨 혼자만의 것인지 아님 한국인이 아닌 다른 학자들의 관점인지도 제시해야 할 것이오. 그래야만 객관성과 권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녁햏은 조선시대의 당파 싸움 등을 가리켜 실리적 목적에서 나온 이념다툼이라 하여 조선인의 실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고 있소만 이는 로직햏이 가리키는 것을 완전히 착각한 것으로 보이오. 로직햏은 공공의 가치관이 실리적이냐 명분론적이냐를 따지고 있는 것이지 개인적 욕구의 성격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오.

이녁햏은 현실적 이해관계에 목을 메어 일어났다는 각종 당파싸움이 실리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오? 이건 인간의 추악한 욕구에 지나지 않소. 실리가 아니라 그저 사리사욕이란 말이오. 한일양국에서 같은 정치투쟁을 했는데도 왜 조선의 당쟁은 비난받고 일본의 신선조와 유신지사는 동렬로 존경을 받는다오 생각하오?

조선의 당쟁은 논쟁의 소재는 명분론에 입각한 것이었으나 그 목적과 과정은 추접한 경우가 많았소. 결코 명분론적이지 않았소. 이건 공적인 실리관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사리사욕일 뿐이오. 부정축재와 비리 등은 이미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 지적되고 있는 문제오. 그러나 개화기의 일본은 정치투쟁의 '주제와 소재'가 매우 실리적이었소. 어떻게 하면 서구세력에 맞서 강력하고 부유하며 선진적인 일본을 만드느냐 그것이었소. 나는 그 과정과 목적에서 '개인의 실리'를 채운 일본인을 보지 못했소(물론 이 일본인은 일본인이 존경하는 역사상의 일본인이오. 당연하지만 모든 역사상의 일본인이 절제된 사생활을 가지진 못했을 것이오). 즉 일본인은 가치관은 매우 실리적이었으나 목적과 과정에 있어서는 사리사욕의 절제라는 명분에 매우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오. 이러니 일본인들이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이라 보오.

정리하면 조선인은 명분을 외쳤으나 실상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추악한 몸부림이었고, 일본인은 공공의 실리를 외쳤으나 이를 위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한일 양국민의 상반된 태도가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오. 이러한 상반된 모습은 가치관의 차이라기 보단 어디에서든 당연한 현상이라 보아야 할 것이오. 지향하는 가치관이 실리적인 것과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사욕적인 것을 구별해야 할 것이오. 후자는 실리적이라 하지 않고 탐욕적이고 사리사욕만을 채운다라고 하오.

그리고 이녁햏은 독재정권에 충성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비판의 근거가 되는 전제가 옳은 이유는 제시가 되어 있지 않소.

독재정권에 충성하면 왜 나쁜 것이오? 독재정권이니까?
독재정권은 왜 나쁜 것이오? 민주주의정권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민주주의정권은 왜 최고의 지향점이며 절대적 가치가 되는 것이오?

나는 민주주의정권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가장 국민에게 이로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명분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소(물론 후자를 근거로 하는 명분론에 입각한 사람도 많을 것이오). 그렇기에 꼭 민주주의 정권이 아니더라도 부국강병을 이루어 국민의 자긍심과 복지향상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독재정권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소. 민주주의제도는 수단일 뿐 목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소.

과거 국내 군사독재정권은 어땠소? 나는 그들이 이룬 업적이 그 이전 이후의 민주정권이 이룬 업적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하오. 그들의 이룬 경제발전과 국가안보확립, 이로인한 국민복지향상과 자긍심증대는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목적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소.

다시 말하지만 나는 국민이 진정으로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것 따위는 관심없소. 강력한 국방력과 부유한 복지력으로 국민이 안락하고 자긍심 넘치게 살아갈 수 있느냐에 관심있을 뿐이오. 나는 이러한 가치관이 실리적이라 보오. 그리고 민주주의 그 자체에 목을 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소. 그렇기에 독재정권에 충성했다는 이유로 비판받을 이유도 없다고 보오. 동의하지도 않소. 또한 독재정권에 충성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므로써 받은 보상은 정당한 것이라 보오(물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은 독재정권을 통해 대가를 받은 자체가 썩었다고 할 것이지만). 그러나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기 보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독재정권에 충성하고 이득을 챙긴 사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보오. 그런데 이녁햏은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독재정권은 무조건 나쁘고 여기에 충성한 자들 역시 무조건 모두 나쁘다 하고 있는 듯 하오. 이래선 조선의 정쟁을 실리적이라 했던 이녁햏의 태도와는 좀 배치되는 것이 아니겠소? 조선의 정쟁은 실리적이라고 포장하면서 왜 독재정권에 아부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들은 그토록 비난하는 것이오? 역시 같은 실리적 인물로 포장해줘야 할 것이 아니겠소.

실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결코 세상은 쉽게 보일 수가 없소. 왜냐하면 실리라는 것은 결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오. 친일은 무조건 나쁜 것, 도둑질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등의 정의적 기준만큼 단순하고 획일화된 기준을 제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실리라는 기준이오. 그러므로 로직햏의 마지막 문장을 실리로 대체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소.

--
Posted by 지나가다가 to 역갤 블로그 at 12/28/2006 05:38:32 AM
갑자기 엄습한 귀차니즘 때문에 죽겠네. 둘이서만 얘기하지 말고 관심있는 분들은 제3의 의견을 개진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참고할께요.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2/27/2006 11:50:55 PM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봉니로 검색해보니 처음부터 한 곳에서 집중적으로 출토되어 주목을 끌게 된 모양이더군요.


봉니 [封泥]

요약
고대 중국에서 문서·귀중품의 봉함(封緘)을 할 때 사용한 진흙덩이.


뒷날의 봉랍(封蠟)에 해당한다. 진(秦)·한(漢)나라 때 문서는 '간독(簡牘)'이라는 대[竹]와 나무의 패[札]에 글자를 새긴 것이었다. 이것을 여러 개 겹쳐서 삼끈·명주끈으로 묶고, 그 일부에 진흙을 바른 뒤, 거기에 도장을 찍어 간독이 풀어지지 않도록 봉하였다. M.A.스타인은 중앙아시아 니야에서 봉니가 붙은 간독을 많이 발견하여, 봉니의 수법을 알아내었다. 1882년 쓰촨성[四川省] 청두[成都] 부근에서 100여 개의 봉니가 발견된 이후부터, 점차 주목을 끌게 되었다.

--
Posted by 과객 to 역갤 블로그 at 12/27/2006 02:43:13 PM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봉니 이외에도 점제현 신사비나 효문묘 동종, 그리고 무덤양식이나 전축분에서 발견된 명문전, 태수인장등에 대해서도 다뤄주실거라 생각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위에 지나다님의 말씀에 저도 동의하는데 사서원문에 해석문도 좀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
Posted by 갈비탕 to 역갤 블로그 at 12/27/2006 12:11:36 AM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봉니 이외에도 점제현 신사비나 효문묘 동종, 그리고 무덤양식이나 전축분에서 발견된 명문전, 태수인장등에 대해서도 다뤄주실거라 생각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리고 위에 지나다님의 말씀에 저도 동의하는데 사서원문에 해석문도 좀 달아주셨으면 합니다.

--
Posted by 갈비탕 to 역갤 블로그 at 12/27/2006 12:09:41 AM
'내전' 문제에 대해서 흥미로운 논쟁이 있어서 링크합니다.
http://www.skepticalleft.com/bbs/board.php?bo_table=commu_1&wr_id=230

정치적 관점에 따라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를 잘 보여주는 논쟁.

--
Posted by 玄武 to 역갤 블로그 at 12/26/2006 11:14:00 AM
흥미롭군요. 저자 본인도 인정하고 있지만 감정적인 면을 배제하지 못한 점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간간히 들어나는 피장파장의 오류 같은 건 좀 어떻게 안될까요? 여하튼 정리가 되는 대로 답글 달겠습니다.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2/26/2006 04:57:26 AM
고람실망햏..전쟁을 수행하는 주체들이 무슨 대단한 자의식이 있길래 민족문제로 받아들였다는 것임? 대체 민족문제라는 게 뭣이관대..분단된 조국의 통일을 생각하며 달려오는 땡크에 이마를 맏았겠삼? ㅋㅋㅋ..초기 3.8선 무력충돌때 양측의 전투개념은 민족문제가 아닌 실지(失地)회복이라는 현실론이었음.

6.25 전쟁에 민족개념을 들먹이는 건 김일성이 자기합리화에 불과하지. 이승만이 북진통일론도 민족의 통일 어쩌구 그런건 관심도 없었고 미국의 물자지원와 경제원조를 염두에 두고 수작부린게지 진짜루 통일에 관심이 있어서 그런 줄 아남?

그대야 말로 박명림의 "한국 1950. 전쟁과 평화"라는 책을 좀 권하고 싶은데 왜 회색분자의 책이라 읽기가 좀 뭣하나? 김동춘같은 사회학자가 책상에서 볼펜이나 끄적대며 대가리속에서만 그려낸 다원주의적 고담준론 말고 러시아 국립문서보관소에서 평생을 보낸 한국전쟁 전문가의 책을 좀 봐두는게 햏에게 필요할 거 같은데? 박명림이 왜 6.25를 침략전쟁으로 봤는지 알아보기나 했어?

스페인 내전은 엄밀한 의미에서 내란이지. 외국에들이 들어와 좀 설쳤다고 그게 전쟁이 되는 줄 아남? 내가 얘기했지. 보스니아나 코소보나 외국이 개입했다고 다 전쟁이 되는게 아니란 말씀. 프랑코 정부는 전쟁이 끝난 후에나 영국하고 프랑스에게 정부로 인정받은 거지 전쟁 중에 인정받은 게 아니거든.

스페인 내전이 전쟁이 6.25 전쟁처럼 시작부터 기획, 참전, 종전에 이르기까지 총체적으로 외국이 개입한 것도 아니고 내란 중에 국가임을 선포해서 승인을 받은 것도 아니고 대체 뭘 보고 전쟁으로 봐달라는 것임? 6.25와 비교할려면 다른 데이터를 좀 제시하기 바람.

--
Posted by 孤藍 眞明行 to 역갤 블로그 at 12/26/2006 01:17:23 AM
이참에 숙제 하나 내줄까?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파시스트편에 서서 화려한 전술을 보여주고
소련이 후원하면서 각국에서 모인 초국적부대 '국제여단'이 지원하러 온
정부군과 프랑코군과의 스페인 내전은 왜 내전이라고 불릴까요?

--
Posted by 고람실망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10:12:25 PM
로직아
나 살아있는데 너 왜 글쓰니?

--
Posted by 악플러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10:02:08 PM
논리학도 수학의 일종이삼.ㅋㅋㅋ.. 정확히는 순수수학분야. 그러니까 침략은 침략전쟁을 말하자는 거자나. 그럼 머? 말장난하는게지. 침략은 어의적인 개념으로 쳐들어간다 이거지. 그러 맞받아 싸울거고.. 그게 전쟁이지 뭐라는 거삼? UN이 북한을 교전단체로 승인한 것은 전쟁 발발일 바로 당일임. 교전단체로 승인한 그 시점에서 즉시 전쟁이 발발한 6월 25일 새벽 4시로 소급하여 교전단체로 인정받는 것임.

강정구가 시장경제 옹호론자라는 건 왠 생뚱맞은 것이삼? 시장경제 옹호한 저술이나 논문이라도 있다는 것임? 민족해방전쟁 옹호한 기사는 뉴스 사이트가면 많음. 본인이 직접 찾아다 줄까? 논문제목이랑?

진보를 참칭한 빨강이들이 피해망상적 자아도취는 또 무슨 자신감임?

--
Posted by 孤藍 眞明行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9:29:04 PM
내가 처음 쓴 리플에는 침략이 아니란 말은 있어도 전쟁이 아니란 말도 없고, 전쟁 = 침략이라는 말도 없는데? 이렇게 써 놨잖어: "침략은 합법 정부로서 교전권이 있는 애들끼리 싸우는 거고, 그게 아니면 내전이야." 어디 전쟁이라는 말이 있어? 말 바꾼 적이 언제 있냐고?

전쟁 직후 UN 안보리의 결의로 북한이 교전권을 인정받기도 했고 교전 당사자로서도 인정 받았지만, 전쟁 나는 시점에서 합법 정부라고 할 수 있나? 내 보기엔 아닌 거 같은데?

전쟁에는 침략도 들어가고, 내전도 들어간다는 의미에서 집합 기호를 사용한 것일 뿐인데, 그게 수학개념이라니? 저건 논리적 개념에 더 가까워.

그리고 강정구 교수는 (의외지만)시장경제 옹호론자고, 민족해방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한 적도 없는데?
햏이야말로 우익을 참칭하면서 실제로는 그저 증오심을 뿜어내고 싶을 뿐 아닌감?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9:14:23 PM
그리고 박정희는 반일주의자가 아니라 극일주의자였습니다. 한일협약 당시 국내의 반대여론에 부딪혀 일장연설을 하면서.. 한국인들은 일본 앞에만 주눅이 들어 일본을 무조건적으로 적대시하기만 하는데.... 이런 감정 자체가 패배주의 열등감의 발로라고 했습니다. 일본인 앞에 서서 무서워 벌벌 떨지 말고 당당히 대범하게 나아가자고 했는데.. 이게 무슨 반일이데올로기를 이용해 정권유지를 했다는 말입니까? 암튼 본문 글에 박정희 얘긴 단 한 가지 사례로밖에는 소개되지 않는데.. 박정희가 무슨 반일이데올로기의 창조자라도 된냥 말씀하시기에 한마디 해 봅니다. 친일 문제 뿐만 아니라, 박정희에 대한 잘못된 세뇌도 깨뜨려야겠군요.

--
Posted by 光鹽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9:06:29 PM
고어핀드 햏은 역사나 정치공부보다 국어 쪽 공부를 먼저 하는 게 좋을 듯. 저렇게 두서가 없어서야..햏은 내전에 대한 개념이 뭐라는 것이삼? 교전권이 있는 합법적 정부끼리 무력충돌해야 전쟁이라며? 교전권은 정부만 갖는게 아니라 정부를 참칭한 반란단체도 가질 수 있음이 내 주장의 요지야. 그래서 북한도 교전권을 인정받았고 유엔결의에 의해 합법적 전쟁수행 주체로 규정되써.

이제 고어핀드햏은 말을 바꿔 내전이 전쟁에 포함되는 개념쯤으로 얼렁뚱땅 넘어가려해. 이래서 사람은 공부를 해야한다는 거야. 맞아. 내전도 전쟁의 일종이긴 하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둘을 구분해야 하느냐면 UN이 개입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돼.


북한이나 강정구류의 찌질이들이 왜 한사코 내전론을 주장하겠어. UN의 개입을 비난하고 민족해방전쟁의 정당성을 주장하려는 거 아니게써? 지들은 소련군 정규군과 공군이 직접적인 참전까지 했다는 사실은 숨기고 말야.

그게 무슨 수학적인 집합개념으로 설명하려는 게 우스운 거지.

--
Posted by 孤藍 眞明行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8:59:09 PM
아니 왜 반말이죠? 그리고 당신이 극우라고 하면 선량한 보통 사람이 극우가 되는거요? 언제 우리나라 만세 하면서 미국이랑 전쟁하자고 했나요? 아님 일본이랑 전쟁하자고 했나요? 왜 우리 무고한 부모님들을 극우세력으로 매도하고 욕하는겁니까? 어이없는 분이시네요.

--
Posted by 光鹽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8:21:16 PM
글고 윗글 쓰신 분의 내용 중 공감가는게. 일본의 역사관이라는거에요. 서로 죽고 죽이는 관계에 놓였어도 모두 다 영웅이라 생각하는 것 말이죠. 일본인들은 신선조나 유신지사들이나 모두 다 영웅으로 생각하는거에요. 심지어는 자국 수군을 몰살시킨 장본인인 이순신도 존경하고 영웅으로 생각하고, 어떤경우는 테러리스트 안중근도 법정에서의 의연하고 당당한 모습에 반해 영웅으로 생각하는겁니다. 이건 일본인들의 역사관이나 국가관이 한국과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수준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봐요.

일례로 한 때 축구 한일전이 열렸을 때 일본 여성팬이 태극기를 흔들고 한국을 응원하는게 아니겠어요? 한국인 리포터가 그것을 신기하게 여겨 한국을 응원하는 일본 여성을 보고 왜 한국을 응원하느냐고 묻자. 자신은 J리그에서 뛰고 있는 한국인 선수의 열성팬인데.. 그 선수를 응원하며 그 선수가 속한 팀을 응원한다는거에요. 이게 솔직히 반대의 상황이었다면 상상이나 할 수 있겠나요?

한국인의 역사관은 정상이 아닙니다. 만약 제가 단순 살해범인 안중근보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 이토히로부미를 존경한다고 말하고, 당시 조선에도 그와 같은 인재가 있어서 조선을 근대화하였다면 하는 소망을 가진다면... 이게 과연 '보통의 한국인'들에게 용납이 될까요?

이완용의 경우도 당대 최고의 개화지식인이고, 열혈충신이었음에도 나라를 팔았다는 오명을 뒤집어 쓸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구한말 약육강식의 이념이 대세를 이루는 국제 정세에 비추어 어쩔 수 없었음을 들어 인간적인 이해를 표시하는게 용납 받을 수 없는 짓일까요? 매국노, 친일파 라는 마타도어에 매몰되어 역사의 진실을 바라 보지 못하는게 안타깝네요. 근 60년씩이나 그런 반일 이데올로기에 이용당했으면 이제는 세뇌에서 깨어나야죠. 건국 초기에는 국가 정체성 확립상 어쩔 수 없었다지만, 언제까지나 우물 안 개구리처럼 살 수도 없는 일이니까요.

--
Posted by 光鹽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6:59:46 PM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버금가는 한국의 혁명적 사건이 바로 5.16이지요.
그리고 박정희가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뿌리 내린게아니에요.
원래부터 이어져내려오던 걸 박정희가 유지시켰다고 봐야죠.
그리고 그걸로 정권을 유지하지도 않았고요. 선거로 정정당당히 국민의 지지를 받아
정권의 정당성을 확보했어요.
그리고 그를 지지하는 이들도 극우가 아니라 그냥 보통의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입니다.
만약 그들을 극우세력이라 할 것 같으면 전국민이 다 극우세력이게요?
극우는 자칭 진보좌파라고 주장하는 한총련, 범민련, 전교조 같은 이들이 극우죠.
언제 박정희 지지자들이 탈민족주의를 외쳤던가요?
도시 근로자로, 농부로... 자기 맡은 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조직화되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인데요.

--
Posted by 光鹽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6:39:40 PM
고어핀드에게..

6.25 전쟁이 내란이 될 수도 되어서도 안되는 이유.
내전이 될 수 없는 이유를 말해보겠다.


우익파쇼가 어쩌고 저쨌다고? ㅋㅋㅋ


아무래도 이런 분야의 식견을 갖추려면 필자같이 떠돌이 잡문가가 떠드는 소리보다는
박명림 같은 오리지널 학자가 쓴 책을 먼저 읽어보기를 권한다.
박명림이나 전상인 같이 반공주의에 물들지 않은 뉴츄럴 학자들조차도
한결같이 6.25는 내전이라 아니라고 한다.


"전쟁"과 "내전"이라는 용어상의 차이란 과연 무엇일까?

국제법상 "전쟁"이라 함은 교전단체간의 무력행위가 수반한 충돌을 얘기한다.
전쟁의 수행주체가 교전단체여야 한다는 것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교전단체라 함은 반드시 국가대 국가여야 할 필요는 없으며
중앙정부의 사법적, 군사적, 행정적 통제가 장기간 불능 상태에 이르도록 한
"반란단체"에 대해 그 당사국 스스로 또는 국제사회가 교전단체로 승인을
내리면 족하다.


즉, 교전단체란 ① 반란단체의 존재라는 충분조건과 ② 당사국 또는 국제사회의
승인이라는 필요조건 이 두가지를 동시에 갖추고 있어야 국제법상 교전단체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

6.25 사변은 발생일인 1950년 6월 25일 국제연합 안전보장이사회의 공식 의결로서
북한을 "교전단체"로 승인하였으므로 국제법상 전쟁수행 주체가 되었으며
이후의 교전은 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전쟁"으로 규정되는 것이다.

똑같이 민족끼리 내분이 일어났고 다국적군이 참전하였으나 그 반란단체가
교전단체로 승인을 받지 못한 보스니아 내전이나 소말리아 내전과는 차원이
다른 것이다.

순수하게 법적인 차원에서 고찰하였을 때도 그러하지만
정치적, 군사적으로 보았을 때도 6.25는 최소한 내전이 아니다.
전쟁의 기획, 발발, 종결의 참여에 있어 소련과 중공의 개입이 있었고
그들의 물자로 싸웠으며 그들이 휴전에 서명하였으므로 확전이라는 표현도
옳지 못하다.

무조건 같은 민족끼리 싸웠다고 내전이 되는게 아니란 말이다.

--
Posted by 孤藍 眞明行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5:13:26 PM
박정희야 뭐, 현재의 한국 사회에 국가주의, 전체주의를 뿌리내린 장본인이니, 자유주의적 성향이 있다면 열 받을만도 하지.

* 박통 시절 민족주의를 내세워 정권을 유지하는 데 써먹던 극우(자칭 우익)들이 이젠 탈민족주의를 외치다니, 세상은 참으로 재미있어.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4:33:40 PM
어. 그래도 내전은 내전이야.

침략은 합법 정부로서 교전권이 있는 애들끼리 싸우는 거고, 그게 아니면 내전이야. 북한 애라는 합법 정부로서 정통성이 없는 애들이 대한민국을 무너뜨려서 정통성을 지 거 만들겠다고 쳐들어온 게 6.25니까 그건 확실히 내전이야.

그런 식으로 따지면 지금 아프리카에서 벌어지고 있는 내전들도 내전이 아니야? 걔네도 북한이 소련한테 살랑거리고 보고를 하듯, 다른 나라에 있는 동족에게서 무기나 장비 등의 스폰서를 받아. 내전은 다 그런 식이야.

따라서 2번 이후의 자료들은 자료는 북한측이 남침을 했음 - 혹은 대규모 무력 도발을 시작했다는 증거이지, 내전이 아니라는 증거는 안되지.

* 그나저나 냉전 시대 머리를 가진 극우들이 왜 이리 많아? 일마들은 지네가 우익이라고 믿는가본데 시장주의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도 없던 파쇼 떼거리들이 우익의 이름을 참칭하는 건 나같은 시장주의자에게는 참을 수 없는 모독이요 망언이지. 그 정도로 치면 6.25가 북침이라고 우기는 북한 애들의 헛소리 정도쯤 될거야.

* 1번의 10월 1일은 국군이 38도선을 넘어간 날이로군. 38선을 넘어가기 전에 아주 망설였다는데 진짜 넘어가게 되니까 북한 정권의 붕괴는 눈앞에 다가오게 되었지. 편지를 보니까 정말 x줄 타들어가는 게 눈에 보이는구만.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4:29:51 PM
외세를 정치적 목적으로 끌어들인 위정자들에게 그 모든 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민족, 민족 얘기하지만 따지고보면 우리나라처럼 서로 못잡아 먹어 안달난 그지같은 국민성이 또 따로 없죠. 심지어는 나라가 망해 상해에다 임시정부를 세워놓고 하루가 멀다않고 권력다툼으로 사분오열 찢어졌던 소위 독립운동가라는 분들 역시 한심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런 면면이 해방 이후, 한참 단합하여 국력을 모아야 할때마다 정치적인 분열을 가져왔고 덕분에 김일성이만 좋은 일 시켜줬죠.

--
Posted by 孤藍 眞明行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1:34:03 PM
이런글은 이상하게 읽기가 싫단 말이야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1:33:20 PM
진명행님 글 매우 잘 읽고 있습니다. 속이 시원할 정도로 날카롭고 재미있는 표현을 보여주시는군요.

다만 저 같이 한문해석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을 위해 사서원문과 함께 해석문도 같이 보여주셨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럼 보다 많은 사람들이 진명행님의 글을 쉽게 이해하여 재야사학의 엉터리 주장을 간파하여 반론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12:55:07 PM
서양에도 학익진과 비슷한 진형이 있었군요.. 영어론 뭐라 하는지 궁금해요

--
Posted by 세라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12:44:59 PM
올한해 역사 관련 싸이트들은 초토화 되겠쿠나...

덜덜덜....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11:48:58 AM
부정론자들은 이외에도 낙랑이 찍힌 봉니가 평양에서 발견되는 이유는 평양이 낙랑이라서가 아니라 난하에 있는 낙랑으로부터 봉니가 찍힌 공문서와 보물을 받아서라는 주장을 하고 있죠.

그런데 지적하신대로 그들은 기록조차 제대로 검토하지 않는 기초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습니다. 먼저 태수를 윤장으로 고친 후 5년 뒤에야 낙랑을 낙선으로 바꾸었다고 한서에 분명히 나옴에도 불구하고 동시에 개칭된 것처럼 말하는 것을 보면 정말로 몰라서 그런 실수를 한 건지 아니면 고의로 왜곡을 한 건지 분간이 안될 때가 많습니다.

이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이들은 아무리 지적을 해줘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식민사학 추종자라느니 우리 역사를 한나라의 식민지로부터 출발한 것으로 만드려고 하는 매국노라느니 하며 온갖 악담을 퍼부고는 사라지죠. 이미 온라인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난지 10년이 넘었습니다. 그럼에도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들은 아마도 자신들의 주장이 잘못된 것을 알면서도 고의로 반복하고 있다고 밖에 결론내릴 수 없을 듯 합니다.

그들이 강단학계에게 퍼붓는 소위 '기득권 지키기'를 자신들이 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잘못된 역사, 왜곡된 역사라도 민족의 자긍심을 길러주는 것이니 잘못된 것이 없다는 그릇된 생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런 자들이야말로 나라와 국민을 망신시키는 주범입니다.

--
Posted by 육개장 to 역갤 블로그 at 12/25/2006 03:40:15 AM
퍼가요

--
Posted by aaaadddfff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11:27:47 PM
걸레는 결코 자신을 더럽히지 않고 방을 딱을 수 없나니..
독립을 위해서라면 친일도 할 수 있는 것이다..

--
Posted by 살라딘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11:25:19 AM
여운형은 명명백백한 친일파입니다.
위의 증거들이 그걸 증명하지요.
현재 전국민이 친일파가 될 위기에 처해 있는데,
여운형 같은 거물급 인사가 친일파가 아니라니 어이가 없을 정도입니다.

여운형이 사장직에 있었던 조선중앙일보 자체가
시대일보-중외일보의 친일지에 그 뿌리가 있고...
조선중앙일보 자체가 독립운동?에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으며,

뿐만 아니라, 일본 패망을 기해서 엔도 총감과 권력 이양을 협의했고,
건준위에 총독부 자금을 끌여 들인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전향서를 쓰고 서명한 것도 여운형 본인이고,
꾸준히 석방을 탄원 했던 것도 여운형의 일본인 지인들이었습니다.

제 발로 조선총독을 찾아가 일본군이 승전하고 있는걸 축하까지
한 친일파를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면 곤란합니다.
그가 꼴에 독립운동이랍시고 한 시도들은 대부분 40년대 초중반 이후 일본 패망직전상황부터입니다.

이전시대까지는 일본인들과 형님동생하며 사이좋게 지내다가
일본 패망이 다가오니, 뇌물을 받고 친일파 조선인들을 데려다가
자기 군사적 기반을 만들려고 했다는데에 그의 기회주의적 성격이 잘 드러납니다.
독립이후 건국 주도권 다툼에서 우위를 확보하려던 계산이었겠지요.

일제시대 생존을 위해, 개인의 출세를 위해 일상의 삶을 산 사람들마저 정치논리에 의해 친일매국노로 죽일놈 만들어 버리는 세상인데..

명명백백한 친일 행위가 있는 여운형이라는 작자가 어째서 독립운동가 행세를 하며 좌익 세계에서 그렇게 떠받들여지는지 정말 의문입니다.

--
Posted by 光鹽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10:48:30 AM
http://www.history21.org/zb41/zboard.php?id=discuss&page=1&sn1=&divpage=3&sn=off&ss=on&sc=on&keyword=별자리&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479

여기에 반박되어 있더군요

--
Posted by 흐음...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9:30:06 AM
↑ 환빠 발견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8:53:21 AM
잘 읽었습니다~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8:43:19 AM
위에서 언급하신 무명님의 글에 나와있듯이, 오성취루의 연대가 1년밖에 차이나지 않는다는 박창범 교수의 주장은 기반이 매우 허술한 것입니다.

환단고기에는 흘달단군 50년에 오성취루가 있었다고 했는데, 박교수는 이 흘달50년을 BC 1733년으로 잡고선 실제로 BC 1734년에 오성취루가 있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흘달50년이 BC 1733년이 되려면 고조선의 건국이 BC 2333년이어야 하는데, 문제는 어디에도 그 근거가 없다는데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있는 단군조선 BC 2333년 건국설은 요임금이 갑진년(BC 2357)에 즉위했고 단군이 요25년인 무진년(BC 2333)에 즉위했다는 전제하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동국통감의 단군건국연대를 따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단군기록은 어떻게 전하고 있을까요?(근대이전까지 단군을 전한 기록은 우리나라에만 있으니 중국이나 일본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명대에 들어와 중국인들이 조선에 와서 단군 이야길 듣고는 옮겨 쓰거나 하긴 합니다만)

현존 사서중 최초로 단군을 전하고 있는 삼국유사의 경우 두가지 설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요와 단군이 모두 무진년에 즉위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단군이 경인년에 즉위했으며 이는 요50년이라는 것입니다. 제왕운기의 경우 전자를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국통감엔 요가 갑진년, 단군이 요25년에 즉위했다고 나옵니다. 즉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BC 2333 건국설은 동국통감을 따른 것입니다.

동국통감에 나온 요 갑진년 즉위설은 소강절(소옹)의 황극경세에 나온 내용입니다. 그런데 이는 죽서기년과도 다르고 사기 집해와도 다릅니다. 즉 어떤 것이 옳은 것인지를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중국조차 요임금대의 연표를 발표하지 못했단 것입니다.

따라서 흘달50년=BC 1733년이라는 전제부터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도 박교수는 이를 전제했으니 큰 실수를 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박교수의 논문에서도 BC1734년의 오성취는 누성이 아닌 장성에서 일어났다고 쓰고 있습니다. 오성취루(五星聚婁)가 아닌 오성취장(五星聚張)인 것입니다.

--
Posted by 흐음...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8:21:27 AM
위에 나열된 근거들에도 불구하고 孤藍 眞明行님이 여운형을 친일파로 보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혹시라도 위의 행적들을 '친일'로 인정해버릴 경우 많은 우익 지식인들 역시 친일파가 될 것을 우려하여 그런 것은 아닌지요?

저는 일제치하 지식인에게 있어서 위에 나열된 행적 이상의 친일행위가 무엇인지 상상이 되질 않습니다. 위의 행적들은 친일의 극치로 보입니다.

--
Posted by 손님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7:14:26 AM
놀고들 있네..

--
Posted by nmnm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7:05:26 AM
박교수의 단군 관련 내용은 잘 읽었습니다.
역시 강력한 증거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사실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오성취루의 연대가 1년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것은 상당히 유의하다고 생각합니다. 결집 위치가 문제가 되지만, 박교수의 글에서 밝힌 것 처럼 별자리 이름이 유동적이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입니다. 행성끼리 떨어진 각도가 10도로 계산되는데, 그 정도면 보름달 지름의 20배 정도 되는 거리입니다. 모였다라고 할 수도 있을 정도로 보입니다.
바닷물이 빠진 문제는 천문현상이 아닌 것 같습니다. 기조력의 변화로 설명을 하고는 있지만, 그에 따른 간만의 차이의 증감은 크게 변하지 않음을 알 수 있고,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특이 조석 현상이 유독 한건만 기록되었다는 것도 이것이 단순한 조석의 기록이 아니었음을 뒷바침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기조력의 변화는 지구 전체에서 나타나는 것인데, 기록에는 '남해'에서 물이 많이 빠졌다고 하고 있습니다. 아마 쓰나미나 재작년 초겨울에 남해 일대에서 관측되었던 유사 쓰나미 현상이 용의선상에 오릅니다만, 물이 넘쳤다가 아니라 빠졌다라고만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이 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지역적인 융기가 있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만 어쨌든 바닷물이 빠졌다는 기사는 꼭 천문현상으로 설명할 필요는 없는 것 같습니다.
일식 기록은 윗 글에서도 밝히고 있지만, 관측지를 찾는 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2천년 가까운 시간동안 고작 10건의 일식 기록이고 그것도 관측된 달도 정확히 기록되지 않고 있는데, 이 정도면 일식을 재대로 관측하지 않았다는 것을 부연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제 논란이 되었던 연표문제에 대하여 변백입니다. 제가 박교수의 원문을 읽지 않고 오해한 것이 맞습니다. 제 논리대로라면 오성취루가 일어난 해에 모든 것을 끼워 맞춰야 하는데, 그렇게 해 봐야 일식 기록이 더 합치되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되면 다른 사료와 전혀 맞지 않아질 것으로 생각합니다.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의 연표와 관련된 비판은 연구 방법론에 대한 타당한 비판입니다만, 그 서술이 좀 더 정확했다면 저 같은 독자가 오해를 하지 않았을 겁니다.
발전적인 댓글을 달아주신 여러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4:15:25 AM
죄송 허락없이 퍼 갔어요

--
Posted by aaaadddfff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3:45:31 AM
죄송 허락없이 퍼 갔어요

--
Posted by aaaadddfff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3:45:31 AM
"환빠 및 대륙빠 뇌티즌들의 무뇌적인 지랄을 신속히 잠재우고자 한다."


푸하하하 이분 글 재미있게 쓰시는군요

--
Posted by 푸하하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3:42:36 AM
앞으로의 내용이 매우 궁금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2:56:25 AM
대방태수 무덤도 벌써 때려부쉈을지도? ㅡ _ㅡ;; 덜덜덜

--
Posted by 문객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2:36:25 AM
박교수님의 논문은 웹상에 올라와 있습니다.

천문학으로 본 삼국의 위치
단군조선시대 천문현상기록의 과학적 검증

클릭하면 보실 수 있습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24/2006 01:54:19 AM
개인적으로 국사교과서의 성향은 '매우 민족적'에 해당한다고 생각합니다. 대외관계사 부분을 보면, 예컨데 '삼국문화의 일본전파' 같은 어이없는 단원이 있는것만 봐도 그렇지요. 유사이래 중국문화를 사모했던 한국이지만 교과서에 '중국문화의 한국전파'같은 단원은 없지요. 삼국이 일본에 '전파'했다는 문물도 사실 따지고 보면 기원은 중국에서 나온것들이 많고요. 일본에게 식민지배를 당한데 대한 반작용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비록 잠깐 지배는 당했지만 옛날에 우리는 일본보다 한 수 위였다...는 사실을 학생들에게 은연중에 강조하기 위한 것 이랄까요. 상대적으로 대중관계에 대해선 사대나 조공책봉에 관한 서술은 거의 없고 그저 친선관계 였거나 자주적 항쟁만 강조하는 식의 서술 뿐이라 흥미롭습니다. 국내 정치면에서도 학계에서는 상당히 비판적 인 이태진교수의 붕당정치론이 정설로써 채택되어 있다거나. 단군신화에 대한 모호한 기술 등등. 교과서가 사대적이니 친일적이니 하는건 솔직히 재야의 개소리--;; 같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
Posted by 문객 to 역갤 블로그 at 12/23/2006 05:05:42 PM
글쓴분께선 여운형이 친일파가 아니라고 하셨지만

소개하는 내용으로 봐선 여운형도 친일파가 맞는 거 같네요

일제치하 지식인에게 저것 이상의 친일행위가 과연 무엇이 있을지...

--
Posted by 지나가다 to 역갤 블로그 at 12/23/2006 04:09:30 PM
흐음....님의 댓글은 사실과 상당 부분 상이하므로 자세히 말하겠습니다.

일단 흐음.... 님께서 요약한 주장1은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의 주장과 다릅니다.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에는 일식 시기를 비교하였다는 말이 일절 들어있지 않습니다. 박교수가 사용한 연표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연표가 연구에 어떻게 쓰였는지는 밝히지 않고) 박교수의 연구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제가 본 글을 통해서 비교한것은 신라 박혁거세기의 일식 기록을 일식 카탈로그와 비교하여 관측 가능위치가 어느 정도 될 수 있는지 확인해 보고자 한 것입니다. 물론 주장 1에 대한 비판도 있습니다. 당구장표 다음의 첫 문장이 그 반박입니다. 생뚱맞게 들어있는 것 처럼 읽히실 수 있겠지만, 당구장 표 위와 아래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연표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현재에 와서 재구성하는 천문 현상은 율리우스력을 기초로 계산하게 됩니다. 율리우스력은 유럽에서 기원 무렵부터 근세 이전까지 쓰였던 달력으로 1년의 길이를 정확히 365.25일로 하여 계산하는 력입니다. 일식이나 천문현상이 일어났던 시기는 율리우스력으로 정확히 계산할 수 있습니다.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에서는 명확히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어떤 편년을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천체역학 계산 결과가 달라지는 것 처럼 서술하고 있습니다. "연표에서 연도계산이 1년이 틀린다면 특정일의 천문기록은 거의 의미가 없어질지도 모른다. 연표에서 1년의 차이는 무려 365일의 차이를 벌려버리기 때문이다. 일식은 몇분에서 십분안에 끝나기 때문에 365일이 차이가 난다면 그 일식기록의 진위여부를 따지는 자체가 어렵게 된다." 라는 서술이나 "천문현상이 몇 각의 범위에서 발생하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하루 100각을 기준으로 치면 912500각이 틀려지게 되는 것이다. 세종때 일관이 일식을 잘못 계산해 처벌을 받는데 그때 오차가 몇 각 정도 였다. 91만각이 틀려지게 되는 연표를 가지고 천문현상을 분석하면..." 등의 서술이 그렇습니다. 박교수의 연구가 환단고기에 나오는 일식기록을 계산된 일식과 비교하였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의 주장1은 잘못된 사실을 바탕으로 하여 나온 주장이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편년의 율리우스력 연도는 천문현상의 합치를 보고 결정하는 것이지, 편년의 연도로부터 천문현상을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후자는 주객이 전도된 것입니다.

그 아래에 있는 신라 후기의 일식 운운하는 부분은 읽고 있는 동안 상당히 불쾌했습니다. 제가 하지도 않은 허수아비 주장을 마치 제가 한 것 처럼 세운 다음에 저를 공박하는 모습이 좋지 않았습니다. 제가 한 논리대로라면, 신라 하대에 관측된 일식들도 화북에서 관찰 가능했을 확률이 높다 정도가 되어야 겠습니다. 최적관측지와 관측 가능지역은 다릅니다. 저는 박혁거세 시기의 일식기록 7개를 일식 기록과 비교 하였고, 그 결과가 화북과 한반도에서도 관측되었을 것 같은 일식이라고 하였습니다. 결과를 알고 있는 이 마당에 솔직히 이야기하자면 하나마나한 뻔한 이야기입니다. 박혁거세 시기의 기록이 신라 상대의 천문기록을 어떻게 대표할 수 있습니까? 그것도 단지 6개의 일식이 있을 뿐입니다. 그것만 가지고는 배꼈는지 아닌지 알기 곤란하다라고 했습니다.

마지막에 제공하신 일식 비교 결과는 사실상의 불합치라고 봐도 될 정도로 형편 없어 보입니다. 연표를 이렇게 비교하는 데에 쓴다면 연표의 시기는 절대적인 중요성을 지니게 됩니다. 하지만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에는 '비교'나 '대조'라는 말이 한마디도 나오지 않고, 연표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위에 설명했던 이유를 근거로 하여 무명씨가 뭘 잘 모르고 비판했다고 결론을 내리게 된 것입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23/2006 03:30:49 PM
전 J님의 글이 뭘 말하려는 건지 이해할 수 없군요. 무명님은 박창범 교수의 주장을 다음과 같이 비판하고 있습니다.(J님이 말한대로 주장1과 주장2로 나누어보죠)


----------
주장 1. 박 교수는 환단고기에 나오는 단군조선시대의 일식을 검증한다며, 단군조선의 건국을 BC2333년으로 잡고는 이를 기준으로 하여 각 단군시대의 일식연도를 설정하고는 실제와 비교하였다.

그러나 단군조선의 건국이 BC2333년이라는 전제부터 근거없는 것이기 때문에, 박 교수가 설정한 환단고기의 일식연도는 애초부터 엉터리다. 즉 엉터리 연도를 가지고서 실제와 일치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므로 애초부터 성립될 수 없는 주장이다.

주장 2. 박 교수는 삼국사기 박혁거세조의 일식기사를 바탕으로 하여, 신라의 일식 최적관측지가 중국 양자강 지역으로 나왔다고 하고는, 이것이 재야사학의 주장과 일치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삼국사기의 해당기록은 한서오행지, 후한서오행지 등의 중국기록을 베낀 것이므로, 최적관측지가 중국대륙으로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박 교수는 해당일식기록이 중국기록을 베낀 것이 아닌 독자적인 것이라며, 그 근거로서 유성에 관한 박혁거세조의 독자적인 기록을 제시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말 그대로 유성에 관한 기록일 뿐, 박 교수가 신라의 위치를 밝힌다며 사용한 일식기록 중에는 단 하나도 독자적인 것이 없고 모두 중국기록과 똑같은 것들뿐이다. 따라서 초기신라의 일식기록이 독자적인 것이라는 박 교수의 주장은 무리한 것이다.
----------


J님께서는 주장1을 반박했다고 하셨는데요, 저는 본문 어디에 반박이 있는지 못찾겠습니다.

주장1은 분명 단군조선의 건국이 BC2333년이라는 박 교수의 전제를 비판한 것이지, 신라본기의 연도를 비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왜 신라본기의 연도를 NASA의 자료와 비교하나요? 주장1을 반박하려면 단군조선의 연도에 관한 내용이 나와야죠?

오히려 본문에서 J님이 반박하는 내용은 주장1이 아니라 주장2 아닌가요? 그대로 인용해보죠.

"일식 관측 가능 범위를 대충 생각해 봐도 확인된 6건의 일식은 화북과 한반도에서 관측이 가능했던 것 같다."

즉 신라본기에 기록된 일식기록은 한반도에서도 볼 수 있었으므로 중국기록을 무조건 베낀 것이라고 하기엔 곤란하다... 이게 J님 글의 요지 같은데요. 하지만 이것은 박창범 교수의 논문만으로 간단히 부정됩니다. 박창범 교수의 논문엔 이런 내용이 나오거든요.

"천체역학적인 계산 결과 삼국의 일식관측지역은 백제는 중국의 북경 부근, 신라는 건국초기는 양자강 유역이었다가 (BC1세기~AD201년) 그 뒤 531년간 관측기록이 없었고, 787년부터는 관측지점이 한반도로 옮아왔다는 것이다."

J님 말씀대로라면 후기신라의 일식기록 역시 최적관측지가 중국에도 나와야겠죠? 왜냐하면 J님은 초기신라의 일식기록에 대하여 "독자적인 것인지 베낀 것인지 단정지을 수 없다"고 하고선 그 근거로 화북과 한반도에서 관측 가능한 범위에 있었기 때문이라 했으니까요. 그렇다면 왜 후기신라의 독자적인 일식기록만 최적관측지가 한반도로 나올까요. J님의 주장에 의하면 이들 일식 역시 중국에서 관찰이 가능했을텐데요.

그리고 연표가 중요하지 않다고 하셨는데, 왜 중요하지 않은지 모르겠군요. J님은 연표가 없어도 일식현상을 바탕으로 일식기록의 정확한 연도를 추적할 수 있다는 논지인 것 같은데.. 전 이 논리를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어떻게 일식자료만으로 일식기록의 연도를 추적할 수 있죠?

50년간 평균 20개의 부분일식과 약 360년당 한개꼴의 부분일식을 특정지역에서 관측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말은 2.5년마다 1개의 부분일식을 지구 어디서나 관측할 수 있단 얘기가 됩니다. 따라서 아무 연도나 찍어서 이 해에 일식이 일어났다고 해도 오차 가능성은 1년 정도밖에 안된단 말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정확한 일식 연도 없이 뭘 한단 말인가요? 이런데도 관측된 일식을 바탕으로 해서 연표의 시대를 정확히 못박을 수 있나요?

박창범 교수의 논문에서는 환단고기에 기록된 일식과 실제 일어난 일식을 비교한 표가 있습니다.


----------
표 2. 문헌에 기록된 일식시기와 실제 일어난 일식과의 비교
(실제 일식시기는 줄리안력을 따른다.)

문헌상의 일식일 - 비교된 실제 일식 - 비고
BC 2183 - BC 2181년 8월 30일 - ?
BC 1533년 여름 - BC 1536년 7월 11일 - ?
BC 918년 7월 - BC 914년 8월 3일 - 4년후
BC 837년 3월 - BC 833년 3월 13일 - 4년후
BC 765년 4월 - BC 765년 2월 10일 - 연도일치
BC 579년 봄 - BC579년 7월 20일 - 연도일치
BC 525년 8월 - BC525년 8월 21일 - 달일치
BC 423년 2월 - BC 423년 3월 10일 - 달일치
BC 248년 10월 - BC 248년 4월 24일 - 연도일치
BC 241년 - BC 237년 9월 16일 - ?
----------


단군조선의 건국연도를 BC2333년으로 했더니 10개중 5개가 연도일치, 5개가 불일치했군요. 딱 50%의 정확도인데 이건 2.5년마다 지구 어디서든 일식을 관측할 수 있음을 감안할 때 별 의미있는 정확도라고 할 수 없는 것 아닌가요? 이런 상황에서 일식 기록만으로 정확한 연도를 구한다는 것은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
Posted by 흐음.... to 역갤 블로그 at 12/23/2006 01:23:29 PM
흠. 저가 j님의 글 중간부에 갑자기 쌩뚱맞게, 이야기의 전체 줄거리와 관련없는 편년문제가 나오기에(자세한 설명없이) 오히려 제가 혼동했군요. 죄송합니다^^ 편년에 대한 이야기라면 일찍 끝맺음할 수 있겠네요.
편년문제라면 간단합니다. 박창범씨는 환단고기에 나온 오성취루의 연대를 고조선이 건국한 기원전 2333년에 맞춰 연대를 계산했는데, 이 단기가 정확하지 않다는 겁니다. 기원전 1733년 오성취루가 발생했다는건 "불변의 사실"이지만, 그 오성취루를 전하고 있는 위서의 편년이 유동적이므로 그 "불변의 사실"을 입증할 수 없다는 겁니다. 오성취루가 발생한걸 부정하는게 아니라.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23/2006 11:38:38 AM
ㅇㄹ//이야기가 싱겁게 끝날 것 같은데, 제가 추가로 댓글을 달게 된 이유는 ㅇㄹ님께서 12/22/2006 1:10 PM 에 쓴 덧글에서 제가 마치 뭔가를 헷갈려하는 것 처럼 적으셨기 때문입니다. ㅇㄹ님께서는 흐름을 잘 파악하고 계신 것 같은데 왜 혼동했다고 말씀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누어 지지만 근거로 뒷바침되는 주장은 2개가 있습니다. 주장1은 편년을 믿을 수 없다이고, 주장2는 신라 초기의 일식 기록은 중국것을 배낀 것 같아보이고 따라서 이에 근거하여 비정된 위치 또한 믿을 수 없다입니다.
제가 반박한 것은 주장1입니다. 편년의 부정확하기 때문에 천문현상 분석 결과를 믿을 수 없다는 주장은 말이 안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본 글에서는 일식의 위치를 추정하여 그 일식들이 한반도와 화북에서 관찰 가능한 것이었는지 대충 따져 보았습니다. 그 결과는 주장2를 뒤바침하지도 논박하지도 않습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23/2006 12:05:48 AM
태조대왕은 왕위에 오르고 이름을 旦 이라고 고치죠. 문자의 모습 그대로 떠오르는 태양의 모습입니다. 이성계라는 이름만 알다가 처음 이걸 알고 상당히 감동받았었습니다.

하지만 ㅡ _ㅡ;;


젠장 나중에 알고보니 주공周公의 이름도 단이었다니. 조선이라는 나라의 철저함에 질렸다고나 할까요.

--
Posted by 문객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11:04:12 PM
j>전 j님에게 "삼국시대의 일, 월식과 이전 사서(?)의 편년기록을 연관시"켰다고 한적도 없고,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에서 편년을 문제삼은 것은 환단고기의 오성취루와 관련한 것이니, 삼국시대 일, 월식과 관련해서는 편년과 전혀 무관하다고 앞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10:52:56 PM
전 어디에서도 삼국시대의 일, 월식과 이전 사서(?)의 편년기록을 연관시킨적이 없습니다. 편년을 문제삼는 것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10:44:51 PM
전 어디에서도 삼국시대의 일, 월식과 이전 사서(?)의 편년기록을 연관시킨적이 없습니다. 편년을 문제삼는 것이 잘못된 주장이라고 했습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10:43:51 PM
위만의 출자에 대한 교과서의 기술은 결국 '위만은 조선인' 이라는 묵시적인 결론을 학생들에게 유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근거가 부족한 사실을 약간 편법으로 주장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


개인적인으로는 현행의 국정교과서 제도는 장차 바뀌어야 하지 않나 생각합니다. 국사교과서 파동도 결국 국사교과서가 교육계에서 가지는 절대적 권위를 '재야사학' 하시는 분들이 이용하려 했기 때문에 일어난거 아니겠습니까.

--
Posted by 문객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07:33:28 PM
저도 그 책 읽어봤습니다. 저 기자, 나중에 영국 공사한테 빌린 훈장으로 스웨덴 장군 행세해서 고종을 알현하죠. 왕비 민씨의 국장이 거행되는 곳이었습니다만. 물론 고종은 간단히 속아넘어갑니다. ㅡㅡ mwultong 님 말대로 슬픈 코메디 일지도.

--
Posted by 문객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07:19:57 PM
저기 찾기가 힘들어서 그러는데 Eclipse Home Page 여기에서 어느 메뉴에 가야 볼 수 있나요?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04:13:05 PM
「환단고기, 단기고사 등의 소위 오성취루 문제 (1)」 를 살펴보니, 편년에 대해 문제삼은 것은 오성취루등의 환단고기에 나온 천문현상에 대한 이야기지, 삼국사기 등에 나오는 일, 월식이 아닌데 j님이 혼동하신 것 같군요.
(게다가 환단고기의 편년, 세계는 믿을 수 없구요.)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01:10:34 PM
... 좀 어렵군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11:19:15 AM
공장 입지 선정 과정에 따른 경제적인 장

1 남쪽
1.1 가공원료 및 수출지인 일본에서 가깝다.
1.2 따뜻해서 난방비나 유지 보수 비용이 적게 든다.
2 북쪽
2.1 연료공급지가 가깝다.

정리해보면 남북 모두 경제적으로 각기 장점이 있는 셈이죠. 각 측의 장점은 다른 측의 단점이 되겠죠. 예를 들어 북쪽의 장점인 연료지가 가까운 것은 남쪽의 연료공급지에서 멀다라는 단점이 되겠죠. 그 반대도 성립하고요.

가공 원료를 수출하기 편하고 완제품의 주소비지역인 일본에서 가까운 남쪽에다 공장을 만들고 북쪽에서 석탄 캐다 기차로 실코 와도 되고 반대로 연료 공급이 수월한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고 배와 기차로 가공원료를 공급 받고 다시 완제품을 배와 기차로 주소비지인 일본에 배달하면 되는 셈이죠.

결국 j님의 의견을 고려한다고 해도 뚜렷하게 경제적으로 북쪽이 남쪽보다 타당하고 보기는 힘듭니다. 오히려 향후 소비지인 만주를 염두에 두고 있지 않았다면 굳이 북쪽에다 지으는 것이 번거롭지 않나 싶습니다.

제 생각에는 애초에 젖바리들이 만주 진출을 염두에 두고 공장 입지를 선정했다는 이녁님의 가설이 설득력이 있어보이지만 보다 어떤 기간에 무슨 산업이 어디에 어떻게 배치됐는지 구체적인 연구와 실증적인 자료 제시가 있어야한다고 봅니다.

--
Posted by ㅇㅇ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10:18:30 AM
편집해드렸습니다. Blogger.com이 테이블 태그 등을 지원하지 않고 위지윅 기능에 문제가 있어 사용자가 표를 넣거나 글을 수정하기에 많은 불편함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회원분들께서 글만 남겨주시면 나머지 편집은 제가 알아서 해드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따로 부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좋은 글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
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2/22/2006 07:32:45 AM
j> 역갤이나 역사21에선 다른 나라의 일식에 관한 최적관측지를 측정한 결과도 제시되었었습니다. 역시 엉뚱한 곳이 나오더군요.

다만 제 경우 이쪽으로 전혀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옳고 그르다를 판단하기에 앞서 공부를 해야 할 판입니다. 천문에 대해 아는게 있어야 말이죠.

나중에 글 올려주시면 잘 읽겠습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21/2006 01:26:44 PM
모르겠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 홈페이지에 가보면 알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21/2006 02:49:59 AM
아래는 항거님의 글인데, 시대는 다르지만 앙소온난기와 삼국시대의 한랭기에 대해 짧게 언급하고 있기에 링크해봅니다.

http://historydc.blogspot.com/2006/04/blog-post_114560299983320761.html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21/2006 02:08:00 AM
아직 책을 읽지 않아서 ㅇ님의 답글이 달린 후에, 좀 이상하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버러우하고 있었습니다. 다행이군요. 위키에서 찾아보면 그래프가 나오는데, 값 자체의 고저 보다는 변화 추이, 그러니까 미분 계수와 더 관계가 있어 보입니다. 결국 사람이란 금방금방 적응하기 나름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21/2006 01:47:50 AM
박창범 교수의 경우, 같은 알고리즘으로 중국이나 유럽에서 관측된 일, 월식 기록을 재구성해 봐야 할 것 같습니다. 그 관측지역이 중국이나 유럽 현지로 나온다면, 배꼈다는 증거가 나오지 않는 이상 삼국의 관측 기록에서 나타나는 지리적 괴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다른 이유를 찾아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중국이나 유럽의 기록을 바탕으로 한 재구성한 관측지역이 마찬가지로 좀 더 서쪽으로 치우친다면, 알고리즘에 고려하지 못한 지구 운동의 비선형성 때문일 뿐, 더 이상 역사의 영역은 아니겠지요.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21/2006 01:41:07 AM
헉, 제가 가로기호를 써서 몇번 날려먹어 다시 쓰는 중에 엄청난! 실수를 했군요.
9세기~ 11세기까지 한랭한 기후가, 이후 11세기~ 12세기까지 백여년간의 짧은 기간동안 온난기가, 그리고 12세기~ 19세기까지 다시 한랭한 기후가 지속되었다고 하는 군요.
->각각 11세기~ 13세기, 13~ 14세기, 14~ 19세기로 정정합니다.ㅠㅠ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21/2006 12:07:06 AM
어떤 분야의 학자가 자기 전공과 다른 분야를 다룰때 오류가 많이 발생하는 듯
싶습니다. "하늘에 새긴 우리 역사"같은 경우나, 은행원이신 모 사이트 주인이나..
자기 전공과는 딴판인 자극적(?)인 내용만 펑펑찍어내는 누구라던가..
리플내용이 본문과는 쫌 상관없지만, 괜시레 생각이 나기에 끄적여봤습니다.ㅋ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11:45:24 PM
퍼가3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11:30:06 PM
이게시물 퍼가도 되나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11:01:28 PM
어려운 말이 대체 뭔데?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08:32:50 PM
암니옴니님 이 글에서 굳이 어려운 말을 쓴 부분을 찾지 못하겠습니다. 이번에서 쉽게 써준 것 같은데..

옥울아님 글 잘 읽었습니다.

--
Posted by 지나가다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06:42:35 PM
옥울아 횽

이런글을 좀더 쉽게 순화시켜서 써주면 안될까 왜 굳이 어려운 말을 쓰는 거지



횽 글은 읽기가 너무 뭐랄까 수학공부하는것 같아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04:18:30 PM
옥울아 횽

이런글을 좀더 쉽게 순화시켜서 써주면 안될까 왜 굳이 어려운 말을 쓰는 거지



횽 글은 읽기가 너무 뭐랄까 수학공부하는것 같아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04:17:27 PM
이거.. 재야학계와 공식학계의 능력차이로 두고 봐도 무방하겠는데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01:12:22 PM
고어핀트//벌레 취급은 좀 너무하지 않나요? 물론 저도 민족주의가 지나친 것은 우려하고 있지만 민족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니까요.

강희대제//칭찬이죠? 감사합니다. 사실 무지 날림글인데 말입니다.

지나다//중도의 개념 자체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일단 다양한 사관의 균형을 어느정도 잡아 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암니옴니// '적절하게' 라는 말에 공감합니다.

랄라라//잘 읽었습니다. 국사편찬위원회의 설립부터 지금까지의 일종의 사사를 다룬 책은 아직 없습니까? 있다면 한번 꼭 보고 싶네요.

혐국빠// 위만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만, 현행 국사교과서에 위만이 조선인이라고 명시해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조금 모호하게 '아마도 조선인 계통' 쯤으로 묘사해 놓았을 뿐이지요. 그리고 어느 나라 사람이냐 하는 개념보다는 조선 민족 계통이라는 것을 강조한 걸로 보입니다. 물론 그 시절의 민족 개념은 따로 생각할 논쟁거리지만요.

--
Posted by 이녁 to 역갤 블로그 at 12/20/2006 12:15:43 AM
http://www.ktrf.re.kr/journal/39/article14.htm
http://www.ktrf.re.kr/journal/43/article13.htm


예전에 자유게시판에 소개한 적이 있는 윤종영 선생님의 글입니다. 80년대 국사교과서파동 당시 중심에 계셨던 분이라 할 수 있는데 이녁님의 글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여 다시 올립니다.

교과서파동 이전과 이후의 국사 교과서를 비교해보는 것도 국사편찬위원회의 입장 변화를 알아보는 좋은 소재가 될 것 같습니다.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19/2006 12:02:39 AM
뭐 그렇지.....

아주 적절하게 실증된것만 쓰지

그래서 내용이 상세하지 못하고 불분명한건 대충 얼버무려서

나같은 사람은 짜증나기도 하다는



그래도 조킨좋아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18/2006 10:19:44 PM
국편위는 재야의 입장에서나 실증주의의 입장에서나 이른바 식민사학의 입장에서나 모두 불만을 가질 수밖에 없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요. 즉 중도를 걷고 있는건데..

중도만큼 걷기 어렵고 또 훌륭한 길도 없죠. 또 현재의 국편위 인터넷 서비스를 본다면 국편위 칭찬 받을 자격이 충분하지 않을까 싶네요.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18/2006 08:32:32 PM
동의합니다. 저희까페로 퍼가도될까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18/2006 03:23:11 PM
민족주의를 벌레 취급하는(표현이 뭐 이래-_-) 본햏 입장에선 민족주의 물 좀 빼줬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있다는... 뭐 그 정도.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18/2006 11:46:02 AM
고려에 화폐경제가 정착하지 못한 것은 송나라 동전과는 관계없습니다. 단지 주조개폐를 반복하다 실패하여 베 따위의 실물화폐경제가 유지되었던 것입니다.

오히려 일본의 경우 송나라의 화폐인 희령중보 등이 유입되어 이들이 일본 시장에서 화폐로서 쓰이게 됩니다. 송나라 동전에 의해 밀려났다면 고려의 화폐경제는 송나라 화폐가 장악했겠지요. 그럼 아무튼 고려는 화폐경제로 돌아가게 되는 겁니다. 동시기의 일본처럼.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18/2006 06:00:53 AM
중국의 역사지리에는 600-1000년 사이 온난기, 1000-1200년 한랭기, 1200-1300년 온난기, 1300-1900년 한랭기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
Posted by ㅇ to 역갤 블로그 at 12/17/2006 12:25:21 AM
고려에 화폐경제가 발달하지 않았기보다는 고려의 화폐가 수입한 송나라의 동전들에 대해 밀려난 것입니다. 현재 고려 때 수입한 송나라 동전들이 대량으로 발견되고 있습니다.

--
Posted by ㅇ to 역갤 블로그 at 12/17/2006 12:20:32 AM
신선한 발상이네요. 나름대로 재밌게 읽었습니다

--
Posted by 일리단 to 역갤 블로그 at 12/17/2006 12:08:28 AM
[중국 역사 지리]라는 책에서 보면,
9세기~ 11세기까지 한랭한 기후가, 이후 11세기~ 12세기까지 백여년간의 짧은 기간동안 온난기가, 그리고 12세기~ 19세기까지 다시 한랭한 기후가 지속되었다고 하는 군요.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16/2006 12:55:54 AM
유대인 차별과 같은 문제는 종족주의로
차후에 가시화된
nationalism 및 인종주의의 시초라고 들었는데요.
방학 때 한번 그 쪽에 생각해보면 좋겠어요.

--
Posted by 아스피린 to 역갤 블로그 at 12/15/2006 03:49:27 PM
글 자체의 좋고 나쁨은 모르겠지만,
로직님의 글이 선사시대를 다루었다고 해서, 역사를 다루는 이곳의 취지에 어긋났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흐음님께서는 무슨 생각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역사시대이전, 그러니깐 선사시대-신석기, 구석기, 더 나아가 원인들이 살던 시대까지- 이전들도 이곳에서 충분히 논의될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합니다.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15/2006 06:21:14 PM
군대가서 남의 팬티 한장이라도 검열 뜬다고 훔쳤으면 우리 모두 절도범이지요. 네~ 그렇구 말구요. 법에서는 정당방위라는 것과 긴급피난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대한제국이 불법적으로 병탄된 이후 35년간은 우리 나라는 불법이 합법인 상황이 되었습니다. 그 속에서 폭탄테러를 하는 것을 정당화 시키는 것도 그 시대가 아니라 오늘날의 대한민국의 입장이고 그 시대에 일제에 순응해서 살던 사람들을 헐뜯고 비난하는 것도 오늘 날 대한민국의 입장입니다. 법에서는 형벌불소급의 원칙이라는게 있습니다. 그 시대를 살던 사람에게 그 이후 시대의 법을 적용하지는 않겠다는 거지요. 일제시대를 살면서도 일반적인 사회원칙에 반해서 민족을 핍박했던 사람들에게는 자연법을 적용해서 처벌해야 한다라는 주장까지 반대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감정을 거스르는 거기 때문에 저도 거기까지 주장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단지 일제시대에 일본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이등국민으로서 국가에서 인정받기 위해 피나게 노력했던 사람들을 단지 일본을 위해서 싸웠기 때문에 죽일놈으로 만드는 것은 비정상입니다. 반민특위에서 김연수가 (김연수였는지는 확실하진 않군요) 일제가 그렇게 일찍 망할 줄은 몰랐다 라는 말이 존나게 욕을 쳐먹는데 그 얘기인 즉슨 우리가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는 일본이 망하기를 원하지 않았다로 들어야 하는게 아니라 일본이 일찍 망할줄 몰랐기 때문에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쟁보다는 타협과 자치노선을 걸었다는 말로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을 이해하지 못하면 간디도 친영 매국노가 되고 손문도 호치민도 친일파가 됩니다. 단지 일제시대에 공무원이었고 군인이었다는 이유 하나로 일괄해서 친일파 명단을 작성하겠다는 행위를 특별법을 제정해서 국가가 한다는 것은 법학도의 관점에서 볼 때 국가가 국민에게 강제하는 것이 법이니 만큼 현재의 논의 시점에서 정치적인 목적이 없는 이상 결코 할 수도 없고 해서는 안되는 행위입니다.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2/15/2006 06:20:56 PM
로직씨가 다룬 남녀의 역할 등은 선사시대 이야기로 보이오. 즉 역사로 기록되기 이전이오. 그러나 여긴 역사 사이트가 아니오? 역사 사이트에서 공룡시대 같은 선사시대 이야기를 꺼내봐야 별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요. 게다가 글 주제도 결국 페미니스트들을 까기 위한 내용일뿐 역사에 관한 내용이 아니오. 이러니 비판을 듣는 것이오.

--
Posted by 흐음 to 역갤 블로그 at 12/15/2006 12:38:12 PM
이건 역사가 아니라 그야말로 남녀문제가 아닌가? 제목이야 '남자와 여자의 역사'이지만 글 어디에도 역사적 내용을 찾아볼 수가 없는데... 남녀의 역할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등을 논하고 있지만 이건 역사 기록에 의한 것이 아니라 상상과 추측에 의한 것이 아닌가?

이 글은 자유게시판에 올라가는게 나았을 듯 하오. 로직씨는 악플탓만 하지 말고 부디 주제에 걸맞는 글을 올리길 바라오.

--
Posted by 흐음 to 역갤 블로그 at 12/15/2006 12:31:26 PM
흐음 // "멀쩡한 자국민도 자살 전투기에 태워서 갖다박는" "사람 목숨이 사람 목숨으로 아니보이는" 혹은 "사람이 일본 제국의 부속품 혹은 기득권층을 위한 장난감"에 불과한 전체주의 체제에 상당히 적극적으로 복무했으면, 그리고 그것이 일상이었으면 그 악행은 가스실 뺨치지.

무엇보다도, 저런 최소한의 기준도 없으면 친일파 후손이 땅 내놓으라고 소송거는 환장할 상황은 어떻게 막을 거지?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15/2006 10:13:28 AM
일상이면 다 같은 일상인가?
벌 받을게 있으면 벌을 주는게 당연하지.
그냥 이래저래 두리뭉실하게 다 용서를 해버리니, 이 민족에 정의라는게 서지 않는거야.
잘라버릴땐 확실히 잘라버려야 다음에 국난이 왔을때 또 그런 놈들에게 뒤통수를 맞지 않지.

--
Posted by jusin to 역갤 블로그 at 12/15/2006 02:08:59 AM
저기 님하 잡담이 너무 많으면 눈에 중력이 가해지니까
요점만 뽑아서 해주시고 계쏙 했떤애끼맡한다는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03:18:05 PM
정작 큰 문제는 상상력의 과잉이 아니라 결핍이라. 듣고 보니 딱 맞는 말이네요. 결론적으로는 기본적으로 역량 자체가 안되는 겁니다. 스토리텔링이나 플롯 구성 능력 자체가 영 아니라고 봅니다.

사실 고증은 엄밀히 말하자면 그 자체가 본류는 아닙니다. 고증만 집중한다면 그게 다큐멘타리지 드라마입니까? 허나 자신이 이끌어가야 할 스토리에 리얼리티를 주고 힘을 실어 주기 위해서는 정녕 그럴 듯한 고증이 요구되는 거죠. 이건 모르면 자기가 찾아보고 물어보고 해서 해내야 할 일인 거죠. 그런 면에서 봐도 사실 너무 안이하게 드라마 찍고 있는 셈이죠. 매너리즘에서 도무지 헤어나지 모사는 거죠. 그저 선배 피디나 감독이 해왔던 대로 걍 죽 하는 거죠.

정녕 이 문제는 제대로 된 작가가 나오기 전까지는 백년하청일 문제가 아닐런지요?

참... 지적하신 거 보니까... 제가 두 사람을 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는 우를 범햇네요. 맬 깁슨이 분한 건 윌리엄 윌리스고 부르스는 스코틀랜드의 왕이죠. 영화와는 달리 윌리엄 윌리스는 영국 공주와 연애 한 적이 없다죠?

--
Posted by 누루하치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04:49:36 PM
강희대젠 왜 맨날 했던 애기 하는건줄 모르겠따 전에도 주장했떤거잖아
여기 눈팅하는 사람들중에 그거 모르는 사람 없으니까
정 사람생각 바꾸고 싶으면 사극빠카폐가서 그런글 쓰든지 하세요



맛있는 강희대제님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06:47:04 PM
음...공감 합니다.
진짜 역사위기를 이용해 돈을 벌려는 개수작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
Posted by 정련강침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10:57:59 AM
저런 사회적인 변화보다는 늦지만, Y염색체는 점차 축소되고 있습니다. 슬프군요.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12:22:36 AM
./ 그 책은 꼭 찾아서 읽어보겠습니다. 전공이 역사가 아니라서, 모르는 것이 많습니다.
음/ 중세기후최적화라는 말보다는 중세온난기라는 말이 더 흔한 것 같습니다. 영어위키에서 medieval warm period를 찾아 보시기 바랍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5:01:24 PM
한국 방송사들에겐 애초에 학자의 양심따윈 없으니깐..

--
Posted by kray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1:06:08 PM
강희대제 // 요즘 레고는 그렇지 않지만 80년대 중반 ~ 90년대 중반(소위 레고의 황금기)에 나온 레고들은 상당히 고증이 잘 되어있습니다.(단순화를 시켜 놓으니까 눈에 잘 잡히지 않을 뿐) 개인적으로 그 정도만 고증을 잘해주면 바랄 바가 없을 정도입니다.

누루하치 // 예, 기본적인 역량 자체가 빌어먹을 청춘남녀 삼각관계 노닥거리는 거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아무리 그게 팔린다지만 이건 너무합니다. 극중 리얼리티를 살리기 위한 고증도 아스트랄월드로 날려먹은 지 옛날입니다.

윌리엄 웰레스 = 스코틀랜드의 반란자이며 왕국의 수호자. 프랑스 공주와 연애는 개뿔-_-;(* 영화에서 멜 깁슨이 맡음.)
로버트 더 브루스 = 윌리엄 웰레스 이후 스코틀랜드의 왕이 되는 인물.

브레이브 하트의 무대, 스털링>
http://www.gorekun.pe.kr/blog/506

윌리엄 웰레스 기념비>
http://www.gorekun.pe.kr/blog/512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06:34:37 PM
아주 쉽고 유익하면서도 편하게 읽히는 글입니다. 사진 한두 장 추가해주시면 더 좋겠네요.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9:47:00 AM
레고정도로 고증을 잘해줬으면 ㅡ,.ㅡ?;;;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02:27:31 PM
그보다는 말이죠. 방송국이나 영화 제작자들의 역사 교양 수준 자체가 낮아서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요?

어차피 사극이라는 것이 99% 픽션일 수 밖에 없습니다. 브레이브 하트나 알렉산더 보세요. 히트는 쳤지만 역사를 왜곡했다는 논란이 존재하죠. 사극은요.
1%의 역사적 사실이 하나의 큰 뼈대로서 나머지 99%의 픽션을 지탱해 나가는 거죠. 왜냐 어차피 사극의 목적은 다큐멘타리와는 달리 사실의 전달은 아니라 문학적 감동이거든요.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적하신 바와 같이 대중들에게 역사에 대해 말 그대로 대중적인 이미지를 형성해 갈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너무 옆 길로 새는 건 이런 면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죠.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면 할 수록 아무래도 역사 기록에서 자유로워지려고 하니 이런 점을 너무 탓할 건 없습니다. 물론 정도라는게 있지만요.

오히려 본질적인 문제는 개판 고증, 엉터리 역사지식으로 인해 드라마 자체의 질 자체가 조악해 진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고려시대가 배경인데 군사들이 전부 벙거지 차림에 삼지창 들고 나온다면 저런 엉터리 사극은 때려 쳐라고 아우성 쳐댈 겁니다. 중세 서양이 배경인데, 거기 나오는 인물들이 토가를 걸치고 나온다고 해 보세요. 아무리 스토리가 재미없어도 어느 미친놈이 그 따구 엉터리 사극을 만들었냐구 당장 항의전화가 쇄도할 겁니다.

우리 사극의 문제는 오히려 후자가 더 심각합니다. 기본적으로 엉터리입니다.

아직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지 않아서 그나마 스토리 텔링이 쬐금 먹히는 주몽이 뜰 수 있는 겁니다. 연개소문이나 대조영이 뜨지 않는 이유는 고증이 개판이라는 게 들통이 나지 않아서라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재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할 수 없습니다. 시청자들의 수준이 높아져서 저따구 엉터리 사극은 뭐 할라구 만드냐고 항의가 속출한다고 해 보세요.

아마 그 엉터리 사극 만든 PD나 영화감독은 당장 밥줄 끊길 걸요?

그 양반들 역사지식이 빈약하고 조악한 것이 첫째 요인이고, 두번째 요인은 역시 시청자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겠죠. 지적하신 대로 독서량이 한달 1권도 될까 말까한 대중들입니다. 대충 해도 통했기 때문에 그 피디나 그 감독들이 밥벌이를 해 낼 수 있었던 게 아니겠습니까? 대중들이 다 우리 같은 게 아닙니다. 그리고 진짜 매니아들은 외국 영화나 드라마를 구해 보는 것으로 그 문화적 욕구를 충족할 겁니다.

브레이브 하트가 아무리 부르스 윌리스를 현대적인 의미인 자유의 투사로 왜곡했다고 전문가들이 비판해도 ... 함 보십쇼. 당장 전투장면 자체만 해도 그럴 듯 하지 않습니까? 보병이 창을 꼿꼿이 쥐고 대오를 맞춰서 서로 상대방을 향해 고함을 질러댑니다. 대오를 맞추어 전진해 갑니다. 적진에서 화살이 비오듯 쏟아져 여기저기서 막 비명소리가 터져 나옵니다. 기병 떼거리들이 아군 보병 대열의 측면에서 이리 저리 기동하면서 적진으로 돌진합니다. 양 진영의 대오가 점차 가까워오다가 각자의 창검이 한꺼번에 충돌합니다. 양 대오가 서로 버티던 중 돌연 측면에서 기병이 돌입해 오자 보병들이 허둥지둥하면서 대열이 붕괴... 패주... 전장 곳곳에서 들려오는 부상자들의 아비규환... 얼마나 그럴 듯 합니까? 당시의 실제 전장을 직접 목격하는 것 같지 않습니까?

스코틀랜드 전사들이 얼굴을 푸루죽죽하게 물들인 것은 사실 로마시대때 카이사르가 남긴 기록에 의한 거니 정말로 그때의 부루스 윌리스가 그러고 다녔다는 보장은 못하죠. 하지만, 약간의 역사 교양이 있는 관객이라면 그런 약간의 왜곡이 오히려 리얼리티를 높혀 주죠. 정말 용감한 자유의 전사라는 인상이 오지 않습니까?

하여간 그런 거 보다가 방화나 울 나라 방송 사극 보면... 아우 뒷골 땡겨... 차라리 안 보는게 속 편하죠. 애들 장난 같아서 정말 유치하기 짝이 없습니다.

--
Posted by 누루하치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11:52:39 AM
방송사에 학자적 양심을 요구할 필요는 없을 듯. 다만 강희대제님 말대로 국내 사극의 경우 진법조차 흉내내지 못할 정도로 열악한 수준을 자랑하고 있으니 양심 이전에 수준부터 끌어올리는 일이 급선무일 듯.

물론 이런 일은 전문가라는 지극히 소극적인 집단의 힘을 바라기 보다는 매니아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보다 효과적일 듯.

--
Posted by gladiator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07:19:44 AM
잘 읽었습니다.

특히 제1조에 반유대주의적 내용이 나오는 것을 보고 좀 놀랐습니다. 나치 독일만 그런 것은 아니었군요. 유럽의 반유대주의의 연원이 오래되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리고 제4조의 경우 왜 십장의 임명을 금지했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퍼온 글의 경우 출처를 밝히셔야 합니다. 서울대학교 역사와 기억 홈페이지의 글과 사진이더군요.

http://past.snu.ac.kr/02_document/oldfrance/oldfrance_1.html#63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8:47:29 PM
옥님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13/2006 03:48:28 AM
고려때는 화폐 경제가 발달하지 않았었군요. 송과 교류가 활발하고, 당시 송에서는 화폐가 널리 사용되었다고 알고 있어서 엉뚱한 넘겨집기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1:01:28 PM
레콩키스타 완료 이후 이베리아 반도에서 유태인이 대대적 탄압, 유태인들이 북아프리카나 터키로 대거 이주하기도 했습죠;

--
Posted by hyhn217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0:36:11 PM
오늘 주몽하는군요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9:38:11 PM
불펌글이였구나..;;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8:56:47 PM
퍼갈게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6:07:28 PM
고려가 화폐경제가 발달했다고 하셨는데.. 고려가 화폐 유통을 위해 노력한 것은 사실이나 결국 유통 확대에 실패했습니다. 고려시대는 쌀과 베를 화폐로 삼는 물물화폐 경제가 유지되었을 뿐입니다.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5:58:50 PM
제목을 간결하게
"날씨가 역사에 미치는 영향" 이라고 하면 어떨까요?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1:28:54 PM
다마스커스의 경우는 역시 최적의 강도를 확보하기 위해 무른 철과 강철을 붙여 접은 것입니다. 패턴웰디드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2:37:22 PM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중세기후최적화라는 것이 누구에 의해 주장된 것인가요? 책을 읽어보고 싶네요..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1:19:50 AM
http://blog.naver.com/post/postView.jsp?blogId=mini357&logNo=100029572169&from=search

--
Posted by 링크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0:56:33 AM
신빙성이 있는 견해라고 생각합니다. 기후라는 건 항상 변하기 마련이죠.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9:44:52 AM
검정색 타지마할도 굉장할 것 같군요. 볼 수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나중에 포토샵으로 바꿔볼 수밖에...

--
Posted by 타임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04:31:08 AM
이거랑 두번째 리플 지워주세요. 서버가 이상한가.... 왜이래?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2:14:10 AM
"중국역사지리"라는 책에 동아시아의 시대별 기후변화 대충 나옵니다.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2:13:12 AM
도서관에서 '중국 역사 지리' 문학과 지성사. 이 책을 찾아보면 당시 동아시아의
기후변화를 알 수 있습니다.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12/2006 12:06:52 AM
팔기군은 기병이름이 아니라

8기의 깃발을 가진 8군단의 군대 아닌가요?

--
Posted by mm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11:11:05 PM
사실 마라톤 전투의 진정한 의의는 군사적인 데 있지 않고 정치 문화적인 데 있다고 생각하네요. '서구의 민주주의를 지킨 전쟁' 이라는 평가는 지극히 서구 중심적인 면이 있지만 확실히 서구 문화와 사회의 독자적 발전의 계기가 된 하나의 분기점이니까요.

--
Posted by 이녁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09:50:29 PM
오쿠타 육포야 앞으로 이렇게 써주길 바란다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08:28:00 PM
옥울아 글 가운데 처음으로 쉽게 읽은 글이다

앞으로도 이런 글을 써라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05:48:47 P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헤드라인에 등록되었습니다.

--
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05:32:57 PM
마라톤 경기의 기원이 되었다는 점에서 어느 의미로 전략적인 전투라 할 수도 있겠군요.. 의미는 다르지만.

--
Posted by 플레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04:54:05 PM
존나 길다...

--
Posted by poet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02:24:12 PM
여기 괜찮은데욤

--
Posted by leekb> to 역갤 블로그 at 12/11/2006 12:30:52 AM
바이킹들은 기술이 부족해 1000도 이상의 온도를 확보할 수 없어 불순물이 많은 해면철을 주로 생산했지만, 한나라는 쇠를 녹이는 고로, 화덕에 산소를 계속해서 공급하는 풀무를 사용함으로써 1200도 이상의 온도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고온으로 달구어진 탄소량이 많아 연한 선철에 풀무를 통해 공기를 지속적으로 넣어 철에 함유된 탄소를 태워 함유량을 줄여 무기에 알맞는 강철을 생산하는 방법이 나왔습니다.

--
Posted by 충성용감단결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11:50:56 PM
잘 읽었습니다. ^^

그런데 한나라는 어떻게 탄소량을 조절했나요? 갑자기 궁금하네요..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09:49:58 PM
재밌내요. 잘읽었습니다.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08:25:56 PM
아래쪽 사진들이 참 인상적이군요.

--
Posted by The Darkness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08:07:11 PM
흐음 // 그러면 히틀러 치하의 일상을 살았던 당시 그 사람들한테 나치라고 욕하며 분개할 자격은 있어? 가스실 만들고 지x떨던 그 얼라들 비난할 자격은 있냐고?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02:04:28 PM
퍼가3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12:20:11 PM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이슬람사에 무지한 저 역시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티무르의 무덤을 보니 생각나는 기사가 있는데.. 저 티무르 영묘의 벗겨진 코발트블루 타일이 우스베키스탄에서 복원이 힘든 모양입니다. 그래서 일본의 한 지방현의 도예가문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오는 푸른색 안료 기법으로 저 티무르 영묘의 타일을 복원하려 시도한다는 기사를 일본측 언론의 웹 기사로 본 기억이 있습니다.(그런데 몇년전에 본 것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합니다.)

다만 제 기억으로는 그 일본측 도예가의 청색 안료와 저 티무르 영묘의 타일의 색깔은 느낌이 달랐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이후로 어떻게 되었는지 모르겠네요..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07:40:19 AM
최고입니다. 시대별로 다루고 있어서 건축의 변천뿐만 아니라 이슬람 왕조의 변천사에 대해서도 기초를 쌓을 수 있었습니다. 좋은 글 올려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
Posted by ^_^b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06:18:49 AM
잘 읽었습니다. 앞으로도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Posted by 아레나 to 역갤 블로그 at 12/10/2006 01:12:47 AM
우와... 이런것을 개념글이라 하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이슬람 문화에 대해 잘 아는게 없었는데 정말 아름답습니다. 역시 문화란 아는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
Posted by 이녁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09:43:09 PM
아 그리고.. 현재 게시물에서 틀리거나 잘못된 내용은 차후 수정을 가하겠습니다..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05:52:11 PM
그러니까.. 한마디로 학술적인 비평은 전혀 처벌사유가 안된다는거죠.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05:50:21 PM
제가 얼마전에 경찰에 신고를 했다가 무효처리가 된적이 있는데..경찰서 말로는 명예훼손이라는게 그냥 욕만해서 되는게 아니라 특별히 "신변의 위협"이 될수 있어야만 성립이 된답니다.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05:47:15 PM
강희대제님 잘 읽었습니다. 그런데 당사자들의 실명을 거론한 것은 조금 위험해 보이는 군요. 특히 현재도 넷상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시는 분의 경우 명예훼손 등으로 고소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04:34:53 PM
아.. 초특급 개념글... hyhn님 잘 읽었습니다..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01:48:52 PM
분류를 하려는데 'del.icio.us' 에 로그인을 해야한다네;; 잊어버렸는데;

--
Posted by hyhn217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12:53:22 PM
이녁// 일본은 산업화를 수행하면서 서구 열강의 산업지대는 모두 탄전지대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일본의 주요 탄전은 홋카이도와 큐슈, 그리고 후쿠시마에 분포하고 있습니다. 메이지시대에 산업지대로 개발된 곳은 큐슈의 탄전입니다. 한반도의 탄전은 크게 두 곳에 분포하고 있는데, 남한에 있는 곳이 태백산 분지의 석탄층이고, 북쪽에 있는 것이 평남 분지의 석탄층입니다. 태백산 분지의 석탄은 너무 산 속 깊숙이에있고 그 주변에 적당한 평지도 없기 때문에, 평지에 널리 분포해 있는 평남탄전을 캘 수 있었던 일제는 아마도 태백산 분지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북부지방에 공업단지가 형성된 것은 구지 대륙침략까지 구상에 넣지 않는다 하더라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라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
태백산지구의 석탄이 본격적으로 개발된 것은 분단된 후 남한이 공업화를 추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태백선, 정선선 같은 철로를 놓고 생산된 석탄을 수송했습니다.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08:56:55 AM
j// 지적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도 몇 가지 이의를 제기하고 싶습니다. 일단 화력발전은 주로 석탄이나 석유와 같은 화석연료를 이용하지 목재를 이용하지는 않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우리나라에는 상당한 양의 무연탄이 매장되어 있기는 합니다만, 그렇다면 강원도 석탄 산지 지대에는 왜 화력 발전시설과 그를 이용하는 공업시설이 크게 발달하지 않았을까요?


확실히 주요 발전시설이 북부에 집중되어 있었고, 그 때문에 공업시설이 북부에 집중되어 있었다는 말은 타당합니다. 그것은 제가 생각하지 못했군요. 하지만 제가 강조하는 것은 그 북부지방의 발전소 건설과 공업시설 건설이 모두 대륙 진출이라는 목표 아래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당연히 일본인들도 바보가 아닌 이상 경제적으로 효율적인 장소를 선택했죠. 문제는 그 효율성이 누구를 위한 효율성이냐 하는 것입니다.

확실히 다시 읽어 보니 조금 무리하게 주관적으로 해석한 부분이 많이 보입니다. 이래서 객관적이면서 사관이 투철한 역사학자가 되는 일이 힘들다는 것이겠지요.

--
Posted by 이녁 to 역갤 블로그 at 12/09/2006 12:09:40 AM
근대화 공업화 산업화
개념도 완전 지맘대로고
세세한 부분에서 삽질이 너무 많구나
갓 자대배치받은 신병을 바라보는
말년병장의 심정이다 엉아가

--
Posted by k to 역갤 블로그 at 12/08/2006 12:24:14 P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에 링크가 되었습니다.

--
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2/08/2006 09:43:52 AM
공업역시 어느정도는 따뜻한 곳이 유리합니다. 너무 뜨겁지만 않다면 말이죠. 이는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흥망 성쇠를 통해서 이해할수 있지요. 초기에는 조선족이 많은 연변일대에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했었습니다. 그러나 연변일대에서는 날이 추워서 난방비가 많이 들고, 기계/재료들을 데우거나 온도를 상승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많고, 고장이 잦고, 뭐 이런 잡다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해등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지요. 조선의 남쪽 해안이 뭐 열대지방도 아닌 한에야. 어떤 이유로 보든지 경제적인 이유로 만든 공업지대라면 남쪽해안선에 있는게 북방에 있는것 보다 더 합리적입니다.

--
Posted by ㅉㅉㅉ to 역갤 블로그 at 12/08/2006 09:24:52 AM
공업역시 어느정도는 따뜻한 곳이 유리합니다. 너무 뜨겁지만 않다면 말이죠. 이는 최근 중국에 진출한 한국 기업의 흥망 성쇠를 통해서 이해할수 있지요. 초기에는 조선족이 많은 연변일대에 많은 한국 기업이 진출했었습니다. 그러나 연변일대에서는 날이 추워서 난방비가 많이 들고, 기계/재료들을 데우거나 온도를 상승시키는데 드는 비용이 많고, 고장이 잦고, 뭐 이런 잡다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상해등에서는 그런 일이 없었지요. 조선의 남쪽 해안이 뭐 열대지방도 아닌 한에야. 어떤 이유로 보든지 경제적인 이유로 만든 공업지대라면 남쪽해안선에 있는게 북방에 있는것 보다 더 합리적입니다.

--
Posted by ㅉㅉㅉ to 역갤 블로그 at 12/08/2006 09:24:43 AM
여긴 왜 추천기능이 없지? 추천기능 추가해주시요~

--
Posted by ㄴㅇㅁㅇㅁ to 역갤 블로그 at 12/08/2006 04:15:56 AM
장차 30년간 식민지 근대화론은
인터넷세계 최대의 떡밥으로 군림할 것이다
인터넷 대물왕을 노리는 이라면
마땅히 식민지 경제사를 연구할 지어다!

--
Posted by 여미을 to 역갤 블로그 at 12/08/2006 01:02:33 AM
竹鹽 // 저 역시 전시경제하의 상황을 가지고 정상적인 경제발전을 요구하는 것보다 평시경제 부분을 살펴보고 판단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첨언하자면...

쌀농사 일변도의 농업 구조가 만들어진 데는 일본측의 책임 혹은 의도가 다소나마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당시 일본의 경제 구조는 싼 노동력이 주 경쟁력이었는데, 싼 임금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싸게 식료품을 공급할 필요가 있습니다. 식민지 조선이 20세기에도 봉건 왕조때처럼 쌀농사 위주의 산업구조가 이루어진 것은 일본 자본가들의 싼 식료품에 대한 필요성 또한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조선인이 임금이 훨씬 낮으니 이런 걸 하기에 유리하기도 하고 - 어쨌든 이 과정에서 "우르과이 라운드"를 당한 일본의 농가들은 날벼락을 맞게 되죠.)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04:07:13 PM
지나다 // 태평양전쟁은 41년 12월부터지요. (유럽에서의)이차 세계대전과 구분해서 써주시길 바랍니다.

--
Posted by 고어핀드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03:56:32 PM
후새드.... 역갤이나 여기나.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02:41:49 PM
페로페로/ 경성제국대학에 공업교육이 없었다는 말씀입니까? 1938년에 일제가 경성제국대학에 공대를 설치하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여 41년에 설치했습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가지고 전쟁으로 인해 엔지니어 수요가 급증하자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고 하셨습니다만 태평양전쟁은 1939년에 발발했습니다. 중일전쟁의 경우 일본군 엔지니어 수요가 급증할 요인이 없습니다. 항공모함이나 전함을 출동시킨 것도 아니구요.

또한 윗분께서 소개한 증언대로라면 원래 농대가 설치될 예정이었으나 조선인의 항의로 인해 문과대가 설치되었다고 하였으니 이는 무엇보다 조선인의 공업화에 대한 의지가 박약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입니다. 저학력 계층에서 기술자가 있었다고 해봐야 생계형 하위 기술자일 뿐이고 이는 조선시대에도 있었던 계층일 뿐입니다.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10:29:25 AM
竹鹽/ 조선의 징병이 늦춰진 이유는 총독부나 일본 본토의 조선에 대한 선의가 아니라 단지 "현재 조선인을 일본군에 편입시키면 반란이나 지휘체계에 문제가 있다" 라는 이유였을 뿐으로 알고 있습니다, 교육 부분에서 시기를 맞춰 보면 일본 본토와 조선의 차별은 눈에 띄게 보여지고 있습니다.

언듯 교육과 경제가 무슨 상관이냐 할 수도 있겠지만 교육과 같은 기본 베이스 부터 차별적 상황을 만들었는데 경제라고 정상적으로 동작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알다시피 1차산업 이외에 다른 부분은 어느정도의 교육이 선행 되어야만 끌고갈 수 있는 구조 입니다 물론 자본 투자와 같은 부분은 기존 귀족층이나 부유층의 의지로 될 수 있지만 거기서 끝이고 이끌어 가고 부풀리는 것은 교육이 있어야만 합니다.

즉 공장의 기계에 버튼을 누르는 것은 문자 교육만 해도 그만이지만 기계의 원리를 알고 거기서 생산되는 재화의 질을 높이거나 변경하는 것은 수준있는 공업교육에 의해서만 가능한 것이죠 헌데 이런 부분을 담당할 층이 적었습니다.

3.1운동이후 조선인의 요구에 고급 교육을 담당할 경성제국대학에서도 이런 부분은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고등교육이 정상적으로 이루어 졌다고도 볼 수 없습니다 - 본토에서 중학교 고등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체계를 가지는 것에 비해 조선은 말기를 제외하면 계속 고등보통학교의 비정상적인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

이러니 일본인이 해방의 이유로 급격하게 빠져나간 다음 중간 공백이 엄청나게 생겨남으로 해서 해방이후 경제가 급격하게 몰락하는 원인이 되기도 합니다. 결국 이러한 제반 사정을 따져 봤을때 결코 긍정적인 면으로 변화를 이루었다고 보기가 힘듭니다.


단순히 교육과 경제만을 비교해도 이러한 차별적 요소로 인한 영향이 드러나는데 제가 잘 알지 못하는 다른 부분과 연계되어 있다면 상당한 문제점이 드러날 것으로 생각됩니다 경제든 문화든 정치든 어느 한쪽만의 상황으로 설명되지는 않는다고 보고 있기 때문에 이러한 부분의 접목이 중요하다고 봅니다.

--
Posted by 페로페로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09:00:55 AM
하나의 예만 놓고, 전체 맥락을 부정하는 일은 저도 싫어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지금 주장하시는 내용은 다른 영장류에도 적용해서 생각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인류만 다른 영장류들과 다르게 특별 취급하는건 맞지 않다고 봅니다.
인류는 문명화를 이루었으므로 다르다고 하시지만, 아무리 문명화를 이루었다고 해도 아직까지 사람은 본능의 조종을 받지 않습니까.

--
Posted by 모조인간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3:19:54 PM
우뇌(직관적사고)를 억압하는 교육과 시스템이 문제죠..

--
Posted by 살라딘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4:30:51 PM
그냥 섹스, 빠구리라고 쓰세요.. 응응이 뭐야..

--
Posted by 살라딘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3:45:04 PM
그리고 이 좁은 땅덩어리의 대한민국마저도 지역마다 산업이 다르거늘....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05:40:47 AM
애초에 양국의 경제수준차이를 생각해본다면 비슷한 수준의 자본축적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 자체가 무리일 듯.

한쪽은 제국주의국가로서 당당하게 팽창하고 한쪽은 식민지로 전락할 정도로 몰락한 나라인데.. 이런 양국의 국민이 대등한 수준의 자본 축적을 불과 반세기도 안되어서 이룩하길 바라는 건 무리가 아닐까.

그만하면 조선 경제의 수준에서 조선인의 자본축적은 충분히 있었다고 봐야할지도.

--
Posted by 지나다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05:17:52 AM
프롬이 말하길, 프로이트의 '억압'이라는 단어의 의미는 보통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는 압박이나 억제의 의미가 아니라 -심리학적인 의미에서의- 의식의 세계로부터 무엇인가를 제거해버리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독일 심리학 서적을 영미식으로 번역하는데 있어서의 오역입니다.

--
Posted by 세균맨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3:42:02 PM
하나를 지워.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1:27:21 PM
왜 두개가 올라왔지-_-?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1:21:35 PM
그리고 우리나라가 전쟁하는 것도 아니라고 하셨는데.. 당시의 조선은 독립국이 아니라 일본의 일부였습니다. 즉 일본국이란 말이죠.

--
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12:48:47 AM
키엘님.. 예전에 그 부분에 대해 덧글을 남긴 적이 있는데.. 여기에 다시 옮겨봅니다. 키엘님의 논리라면 애초부터 일제의 잘잘못을 따질 필요가 없어질 것입니다.


당시의 일본제국이 전시상황이라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이고, 이러한 전시하에서 일본정부가 식민지에만 불평등한 고통과 수탈을 실시하였다면 이것은 분명한 억압이요 탄압이 될 것입니다만, 만약 일본정부가 본토에도 동등한 수탈과 부담을 부과하였다거나, 혹은 조선을 본토보다 덜 수탈하였거나 부담을 덜 지웠다면, 이는 당시 일본정부의 통치를 도덕적으로 비판할 수 없게 만드는 한 이유가 될 것입니다.

물론 조선을 병합한 것 자체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모든 것이 일본의 잘못이요 수탈이 되겠으나, 최소한 전시하 농업정책에 있어서 일본정부의 수탈성이나 차별, 억압성을 비판하려면 동시기 일본 본토와의 비교가 있어야 된다는 얘깁니다. 가령 전시체제하 일본군 징병이 조선의 경우 일본보다 1년 늦춰 시행되었다거나, 태평양 전쟁에서의 조선인 사망자가 일본인 사망자보다 훨씬 적다는 사실 등을 보면 이러한 비교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봅니다.

--
Posted by 竹鹽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12:46:57 AM
竹鹽/전시경제하... 우리가 왜 전시경제여야 했을까요? 우리나라가 전쟁하는것도 아닌데요. 이것하나만으로도 정상적인 경제 발전이 아니었다는 증거가 될것 같은데요.

--
Posted by 키엘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12:42:28 AM
"빵을 분배하기 전엔 빵을 키워야 한다"
이건 기본상식으로 알고 있을테고
바람직한 경제발전 운운하는데
저도경제에서 고도경제로 발전한 나라 중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바람직하게 발전"한 사례
단 하나라도 있으면 가르쳐 주기 바람.
영국? 프랑스? 독일? 미국? 네덜란드? 이탈리아?
얘네들이 외적으로 내부적으로 얼마나 추악하게 자본가들의 이익을 부풀렸는지 몰라서 그래?
대체 어느 나라가 비판이 먹히지 않을만큼
"바람직하게 발전"했길래 여기서 까이는 거지?

그리고, 더 한가지
북한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이전에는 지금처럼 상거지 수준은 아니었어
남한의 새마을운동이 북한의 천리마 운동 파쿠리한 거, 몰라?
4.19때 북한이랑 통일해서 배고픔 면해보자고 한 구호도 있었다고

--
Posted by 나참이거 to 역갤 블로그 at 12/07/2006 12:40:44 AM
심리학에 아무런 지식이 없는 저로선 "문명이란 억압이다. 인간 개개인이 느끼는 충동과 욕망은 교육과 법률 등에 의해 억압당한다."는 말이 굉장히 신선하게 느껴지는군요.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집니다..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5:35:11 PM
잠깐, 강희대제는 이 글이 쓸만한 글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전 로그인이 귀찮아서 리플달 때 로그인 하지 않을 뿐, 닉 바꾸면서 악플달지는 않습니다. 본의 아니게 시비가 되어버렸구요.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1:44:38 PM
하하같은 리플이 하나더달린것같은데.. 이거 운영진숫자를 팍늘려서 유동닉으로 악플다는 인간들 제재해야되는데..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12:49:00 PM
이건 뭐,, 근거가 제시되기를 하나, 재미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교훈이 있는것도 아니고.

--
Posted by j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10:36:17 AM
혐국빠 씨,


제가 틀린 정보는 글 밑에다가 열심히 달아 놨고,


은나라까지 끌어올리자는 얘기 안했어요. (은나라는 정설인데 뭘 끌어올리고 말고 할게 어딨겠습니까)


그리고 이 책은 외국 교과서임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좋은면이 많이 기술되어 있지만,
설명이 부족한데다가 (중국이나 일본은 이 내용의 4~5배 이상은 더 많아요) 심지어는 연도까지 틀려놓는 (845년은 랜덤하지요) 심각한 오류가 있는거지,



오 나의 크고 아름다운 환국 하악하악

하자는건 아니에요




ps. 수정이 아름답게 되었군요 ㅎㅇㅎㅇ

--
Posted by 꽁기꽁기햏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5:56:36 AM
저러한 도검류가 소장되고 소비되는 유럽과 일본이 정말 부럽습니다. 우리나라도 저런 매니아층이 생겨야 보다 우수한 문화 컨텐츠의 제작이 가능해질텐데요...T.T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4:27:12 AM
아아 ㅅ0ㅜ 풋 철퇴훃 개그일갈은 언제봐도 졸라게 웃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훃 평소에도 말도 그렇게 하면 개그계에 진출해도 먹힐 듯. 진짜 김구라 하나 안부러울 듯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2:28:57 AM
운영자님 하하 같은 리플이 달리지 않도록 강구해주시기 바랍니다. 악플 싫어서 역갤에서 역블로 옮겼는데 저딴 악플 보게 되면 여기도 글 올리기 싫어질 겁니다.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2:03:22 AM
모조인간/우리이웃들은 문명화되지 못했기 때문이죠. 일단 공동체 생활을 여자들이 시작했다고 보는 것은 틀리지 않습니다. 사냥과 달리 채집과 농경 생활, 그리고 육아는 군집이 생기지 않으면 이뤄지기 불가능 한 작업이기 때문이죠. 그리고 군집 속에서 공동체와 문명이 생기기 시작한겁니다. 그리고 남성들은 근친교배를 방지하기 위해 이 공동체 저 공동체를 떠도는 존재였겠죠. 가부장 사회가 되면 거꾸로 근친교배를 막기 위해 여자가 이 씨족과 저 씨족 사이를 오고 가게 되죠. 그리고 원숭이 사회는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지만 몇몇 영장류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고 집단 생활을 하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유인원의 경우는 잘 모르겠지만 하나의 예를 놓고 모계 사회 자체를 부정한다는 건 단시안적 생각입니다.

--
Posted by 로직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02:01:59 AM
윗분 무슨 이상한 말씀을...

--
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12:50:34 AM
처음부터 끝까지 망상망상망상 뿐이로구나
아마도 엥겔스의 저작을 참고한 것으로 보인다만은
망상망상망상으로 사라진 헛된 것을

--
Posted by 하하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12:12:17 AM
오구라가 임나일본부설을 부정하다니...
랄라라횽한테 두들겨 맞겠구나

--
Posted by 지나다2 to 역갤 블로그 at 12/06/2006 12:10:01 AM
여자들이 남자들 위에서 군림하던 시대가 있었다는게 믿어지지 않습니다. 우리 이웃종족(유인원)들과 비교해 보더라도, 숫컷이 우두머리를 차지하고 있지 않습니까?

--
Posted by 모조인간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11:29:06 PM
오호라.. 최초의 노예해방..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10:43:24 PM
식민지 같은 근대적지배 개념이 어떻게 고대에도 있을수 있는거지?

--
Posted by 강희대제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05:36:22 PM
브리태니카의 설명은 어땠나요?

--
Posted by 음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01:25:29 PM
이런걸 보면 역시 본좌는 브리태니카라는 사실을 알수있3 난 아직도 브리태니카에 나왔던 거의 정확했던 한국역사를 잊을수 없3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01:14:01 PM
이런걸 보면 역시 본좌는 브리태니카라는 사실을 알수있3 난 아직도 브리태니카에 나왔던 거의 정확했던 한국역사를 잊을수 없3

--
Posted by 玉蔚亞育護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01:14:01 PM
혐국빠야 적느라 수고했다 시험치고오니까
역블에도 지랄같은놈이 설치네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01:00:36 PM
꽁기꽁기님께> 헉님의 리플은 악플이라 삭제했습니다만 최신코멘트에 저장되어 있으니 필요할 경우 보실 수 있습니다.

--
Posted by 역갤블로그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11:57:33 AM
무슨 웃대도 아니고....
역갤에서도 기원전 2333년 같은 초중딩 찌질이 같은 소리가 나오다니-_-
헉....이다 헉!

--
Posted by 헉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11:29:57 AM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한 부분이 많지 않은가? 차근차근 살펴보겠다.


1. 한국은 중국 본토 동쪽의 반도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한국 역사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으며, 정책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은 기원전 200년경 한 왕조가 처음으로 한국을 침공했다. 이때부터 중국은 그들의 문화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 모두 맞는 말이 아닌가? 중국은 대대로 우리나라의 상국이자 종주국 노릇을 해왔다. 책봉-조공관계를 형식적 외교 관계로 파악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제외하더라도 신라와 고려, 조선의 자발적 사대주의와 속국 자칭 그리고 이따금 보이는 중국의 내정간섭(혹은 만주쪽 왕조의 내정간섭)은 중국이 한국 역사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중국이 우리의 정책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관제와 복식, 법률, 종교, 학문 등등.. 일본이 주체적으로 소화시켜 발전시킨데 비해 우리는 그대로 모방하여 이를 그대로 고수하는 골수 원리주의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신채호조차 인정하고 한탄한 부분이 아닌가? 스스로 소중화라 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모화사상을 극렬하게 펼쳤으면서.

또한 중국의 한국 침공은 한나라가 최초가 아니라 그 이전의 연나라가 최초이다. 연나라의 침공으로 고조선은 서쪽 2000리를 빼앗긴다. 한나라의 위만 침공은 그 이후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그 뒤의 것만을 꼽고 있으니 이 어찌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이겠는가?


2. 한나라의 멸망 후, 국경을 맞댄 3개의 독립왕국이 반도를 지배했다. 신라 왕국은 마침내 최강자가 되었고, 668년에 통일했다. 당 왕조때, 한국은 다시한번 중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왕국의 통치권은 지킬수 있었다. 불교는 이때 한국에 소개되었다. 한국은 몽골제국의 일부분이 되었으나, 몽골제국이 물러 난 후 1392년 이 왕조가 새로 시작되었다. 이 왕조는 1910년 일본이 한국을 합병할 때까지 존속했다.

↑ 여기서 잘못된 부분은 불교가 삼국 통일후 소개되었다는 내용밖에 없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직후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 각각 도호부와 도독부를 두었고 이것들이 근대 이후의 총독부 개념이라는 것은 당시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신라가 이 때 자주성을 발휘해 총독부에 해당하는 도독부를 쳐부순 사실을 제외한 것이 누락된 것은 인정한다.

한국이 몽골제국의 일부분이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부마국이 되어 왕이 몽골인이 될 정도로 혼혈화가 되었고 이들 왕족이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각종 내정간섭을 받고 심지어 통치중 본국으로 끌려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만약 고려왕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단 이유로 일부분이 아니라 한다면 티벳과 러시아 역시 분리되어야 할 것이나 세계의 역사가들은 이들 나라 역시 몽골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불교는 한국에 종교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가르침은 국가의 문화, 철학, 도덕 등에서 찾아볼수 있다. 845년에 불교는 국교로 지정되었다. 학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연구했고, 정부는 공자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중국의 정책을 적용했다. 그렇지만 한국은 중국을 완전하게 모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복식과 언어 모두를 유지했다. 1400년 중반에 통치했던 이 왕조의 황제 세종은 한글의 개발을 지시했다. 한국인은 중국인이 후일에 받아들인 금속 활판 인쇄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 845년에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는 부분외에 도대체 어디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가? 지극히 객관적인 기술일 것이다.


그리고 꽁기꽁기햏은 중국 역사를 하·은나라까지 올릴 수 있다면 우리도 단군조선까지 올릴 수 있다고 했으나 이것은 무리가 있다. 하나라나 은나라의 경우 그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속속 발굴되어 고고학적으로 연구가 되고 있으나 단군조선의 경우 그 시대에 해당하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단 하나도 없이 전멸상태이다. 그렇게 때문에 얼마전 중앙박물관의 고고학 연표에 단군조선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고 사람들이 이를 항의했던 것이다.(하지만 유물이 없는 걸 어떻게 하리?)

외국의 역사서가 우리의 역사를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으로 잡는 이유는 전자의 경우 문헌상의 기록이 많기 때문이고 후자의 경우 고고학적 유물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서 세계 어느 나라에나 건국시조에 대한 신화가 존재하지만 고고학적 증거 없이 역사상의 건국연대로 잡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
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11:14:25 AM
역갤블로그 회원님의 상기 포스트가 미디어몹 메인에 링크되어 있습니다

--
Posted by 미디어몹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10:39:37 AM
우리나라 역사가 BCE 1600년경부터 시작했다고 쳐도 나이가 몇살인데 ㅎㅎ


중국역사를 요순 하 까지 끌어올릴수 있다면 우리도 2333년 신단수까지 끌어올릴수 있지요

--
Posted by 꽁기꽁기햏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09:15:15 AM
200년 밖에 안된것들이 4300년된 할배를 이해할려니깐 힘들 수 밖에요. 어쨌건 그래도 왜곡되고 오해되는것은 바로 잡아야 할텐데요.:-)

--
Posted by ileshy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09:08:00 AM
이런 씹창 개니옴니를 봤나. 인터넷이 아무리 평등하다지만 그것도 상호 최소한의 존중이 있어야 가능한 거다. 중간중간 나오는 영어단어, 굳이 어려운 것도 없는데 굳이 영어로 쓴다고? 누가 보면 꼭 별것도 아닌거 가지고 잘난체 할려고 어려운 말 쓰는 줄 알겠다. 인명이나 브로큰 백 같은 고유명사야 왠만하면 원어로 써 주는게 보통인거고, 그런 걸 가지고 꼭 그따위로 싸가지없이 씨부려야 겠나? 한총련 쇠파이프에 곤죽이 되도록 쳐맞아야지 이게 어디다 대고 명령조야.

--
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10:06:55 PM
암니옴니 리플 자삭요망

--
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03:38:49 PM
근데 송돼지 님

저 글에 중간중간 나오는 영어를 한글로 좀 바꿔주시면 안되나요?

그리 어려운것도 아닌데 꼭 보며는 영어로 적혀있더군요

발음상의 문제시비같은게 붙을수도있지만 그래도 한글이 좋잖아요

앙?

--
Posted by 암니옴니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02:58:56 PM
http://historydc.blogspot.com/2006/11/4_13.html

--
Posted by 4편은 여기에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02:38:49 PM
좀 더 자세히 써주지...

--
Posted by 이게 다야?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01:29:51 PM
서양에는 저런 물건의 수요가 충분합니다. 대를 잇는 경우는 오히려 흔치 않고, 기술을 연구해 복원한걸 배워서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국내에 대장장이는 철공소라는 형태로 남아있고, 시골에 가면 전통적인 대장장이도 남아있습니다만, 도검제작과 철제기구제작은 요구하는 열처리, 정련기술의 수준이 다릅니다. 물론 국내 대장장이들의 실력도 일반 공장에서 만들어나오는 농기구에 비하면 천지차이 수준으로 월등하죠.

유럽도 수요가 많지만 미국은 서부개척 등 역사적으로 칼과 총기류와 친하고 개당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커스텀 나이프를 만드는 제작자들도 아주 많으며 블레이드 쇼도 제법 열립니다. 최고의 서양도검사 알비온 아머리도 미국에 있고, 현대 나이프 쪽에서는 미국을 당할 나라가 없습니다. 그외에 체코가 다크호스죠.

--
Posted by 다니엘.J.다비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12:29:15 PM
우리나라 인간문화재들은 오히려 20세기말 들어서 굶어죽는 형태.
오히려 산업화 이전에는 일제시대를 거쳤음에도 전통장인들이 많이 살아있었는데..
나전칠기같은것도 예전에는 당연히 칠기장 이런걸 쓰던 시대에서
요즘은 ikea에서 인터넷 구매하는 세태로 바뀌고....

얼마전 디씨에서 본 나전으로 장식한 psp같은 아이디어는 21세기의 산물이죠.
198~90년대 태어난 세대들은 그야말로 배부른 세대들이니까 좀 뽀대를 찾고
체면을 찾고 하니까요.

1960년~1980년. 즉 산업화 시대에 태어난 사람들의 삶이 전통문화 방면으로는
가장 최악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이전세대들은 현대문명의 혜택이 적어 오히려
전통적인 방식을 많이 썼었으니까요.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09:34:07 AM
저걸루 사과 깎아 먹으면 좋겠네염..

--
Posted by 쩝 to 역갤 블로그 at 12/04/2006 12:56:34 AM
쓰레기 글인가요?

--
Posted by 유자 to 역갤 블로그 at 12/03/2006 10:51:11 PM
여기 관리자는 관리 안 하나요?
뭐 이런 쓰레기 글이 메인에 올라왔나요?

--
Posted by -_- to 역갤 블로그 at 12/03/2006 10:41:54 PM
칼이 무지 이쁘네요. 저거 만드는 대장장이들이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인간 문화재 격 되는 사람들 아닌가요? 저 사람들도 정부에서 일정한 지원을 받습니까? 아니면 저런 물건에 대한 수요가 꾸준해서 전통무기 제작만으로도 먹고 살만 한 겁니까?

--
Posted by 누루하치 to 역갤 블로그 at 12/03/2006 10:25:32 PM
이쁘기도 하네요.

저쪽 동네는 저런 전통공예도 매니아들이 많아서 그런가 그거 제작하는 것으로도 먹고 사는 모양인데 우리도 저런 대장장이들 많이 있나요?

사실 우리로 치면 저런 사람들 인간문화재 정도에 해당되지 않겠습니까?

--
Posted by 누루하치 to 역갤 블로그 at 12/03/2006 10:33:35 PM
속국이라는 표현보다 속주라는 표현이 맞을겁니다.

나머지는 더 읽고 덧글달아드릴께요..^^

--
Posted by 골빈센트 to 역갤 블로그 at 12/03/2006 01:51:52 PM
식민지 시기 조선에서 유일한 대학은 경성제국대학

처음에 법문학부와 의학부만 설치됐음... 정치, 경제, 이공학부는 미설치

1938년 이공학부 설치...
(확실치는 않지만 전쟁으로 엔지니어 수요가 급증하자 설치한 것으로 보임)

--
Posted by == to 역갤 블로그 at 12/02/2006 04:45:36 PM
멌있다

--
Posted by rlawnsdn to 역갤 블로그 at 12/02/2006 04:05:00 PM
멌있다

--
Posted by rlawnsdn to 역갤 블로그 at 12/02/2006 04:04:58 PM
요즘들어 무,아틀란티스에게 많이 끌립니다 ㄲㄲ

--
Posted by 아이유브 to 역갤 블로그 at 12/02/2006 02:41:28 PM
위 게시물을 읽어본 결과 이번엔 반대로 로마에 유리한 기술이 넘쳐나는군
역시 우리의 완전소중로마

--
Posted by 안녕하십니까 to 역갤 블로그 at 12/02/2006 02:40:07 PM
으음;; 우리나라의 문화홍보에 대한 노력이 매우 부족해서 벌어진 현상;;

--
Posted by 수호자 to 역갤 블로그 at 12/02/2006 02:38:0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