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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모르겠다. 오히려 우리에게 유리한 부분이 많지 않은가? 차근차근 살펴보겠다.
1. 한국은 중국 본토 동쪽의 반도에 자리잡고 있다. 중국은 한국 역사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으며, 정책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중국은 기원전 200년경 한 왕조가 처음으로 한국을 침공했다. 이때부터 중국은 그들의 문화를 전달하기 시작했다.
↑ 모두 맞는 말이 아닌가? 중국은 대대로 우리나라의 상국이자 종주국 노릇을 해왔다. 책봉-조공관계를 형식적 외교 관계로 파악하여 고구려와 백제를 제외하더라도 신라와 고려, 조선의 자발적 사대주의와 속국 자칭 그리고 이따금 보이는 중국의 내정간섭(혹은 만주쪽 왕조의 내정간섭)은 중국이 한국 역사의 많은 부분을 지배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게 만든다. 또한 중국이 우리의 정책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도 사실이다. 관제와 복식, 법률, 종교, 학문 등등.. 일본이 주체적으로 소화시켜 발전시킨데 비해 우리는 그대로 모방하여 이를 그대로 고수하는 골수 원리주의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는 신채호조차 인정하고 한탄한 부분이 아닌가? 스스로 소중화라 하여 자부심을 가지고 모화사상을 극렬하게 펼쳤으면서.
또한 중국의 한국 침공은 한나라가 최초가 아니라 그 이전의 연나라가 최초이다. 연나라의 침공으로 고조선은 서쪽 2000리를 빼앗긴다. 한나라의 위만 침공은 그 이후이다. 그런데도 이 책은 그 뒤의 것만을 꼽고 있으니 이 어찌 우리에게 불리한 내용이겠는가?
2. 한나라의 멸망 후, 국경을 맞댄 3개의 독립왕국이 반도를 지배했다. 신라 왕국은 마침내 최강자가 되었고, 668년에 통일했다. 당 왕조때, 한국은 다시한번 중국의 식민지가 되었으나, 왕국의 통치권은 지킬수 있었다. 불교는 이때 한국에 소개되었다. 한국은 몽골제국의 일부분이 되었으나, 몽골제국이 물러 난 후 1392년 이 왕조가 새로 시작되었다. 이 왕조는 1910년 일본이 한국을 합병할 때까지 존속했다.
↑ 여기서 잘못된 부분은 불교가 삼국 통일후 소개되었다는 내용밖에 없다. 고구려와 백제가 멸망한 직후 당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에 각각 도호부와 도독부를 두었고 이것들이 근대 이후의 총독부 개념이라는 것은 당시 역사를 아는 사람이라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신라가 이 때 자주성을 발휘해 총독부에 해당하는 도독부를 쳐부순 사실을 제외한 것이 누락된 것은 인정한다.
한국이 몽골제국의 일부분이 된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부마국이 되어 왕이 몽골인이 될 정도로 혼혈화가 되었고 이들 왕족이 원나라에 볼모로 잡혀 각종 내정간섭을 받고 심지어 통치중 본국으로 끌려가기도 했으니 말이다. 만약 고려왕조가 명맥을 유지하고 있었단 이유로 일부분이 아니라 한다면 티벳과 러시아 역시 분리되어야 할 것이나 세계의 역사가들은 이들 나라 역시 몽골의 영토로 표기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3. 불교는 한국에 종교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가르침은 국가의 문화, 철학, 도덕 등에서 찾아볼수 있다. 845년에 불교는 국교로 지정되었다. 학자들은 공자의 가르침을 연구했고, 정부는 공자의 가르침을 기반으로 중국의 정책을 적용했다. 그렇지만 한국은 중국을 완전하게 모방하지는 않았다. 그들은 복식과 언어 모두를 유지했다. 1400년 중반에 통치했던 이 왕조의 황제 세종은 한글의 개발을 지시했다. 한국인은 중국인이 후일에 받아들인 금속 활판 인쇄술을 개발하기도 했다.
↑ 845년에 불교가 국교로 지정되었다는 부분외에 도대체 어디에 잘못된 부분이 있는가? 지극히 객관적인 기술일 것이다.
그리고 꽁기꽁기햏은 중국 역사를 하·은나라까지 올릴 수 있다면 우리도 단군조선까지 올릴 수 있다고 했으나 이것은 무리가 있다. 하나라나 은나라의 경우 그 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 속속 발굴되어 고고학적으로 연구가 되고 있으나 단군조선의 경우 그 시대에 해당하는 고고학적 유물들이 단 하나도 없이 전멸상태이다. 그렇게 때문에 얼마전 중앙박물관의 고고학 연표에 단군조선이 등장하지 않았던 것이고 사람들이 이를 항의했던 것이다.(하지만 유물이 없는 걸 어떻게 하리?)
외국의 역사서가 우리의 역사를 기자조선이나 위만조선으로 잡는 이유는 전자의 경우 문헌상의 기록이 많기 때문이고 후자의 경우 고고학적 유물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당연한 것으로서 세계 어느 나라에나 건국시조에 대한 신화가 존재하지만 고고학적 증거 없이 역사상의 건국연대로 잡는 나라는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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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혐국빠 to 역갤 블로그 at 12/05/2006 11:14:25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