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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직햏이 의견을 써달라고 했으니 지나가는 사람으로서 몇가지만 말해보겠소. 먼저 이녁햏의 의견에 대한 동조를 쓰겠으니 부디 반론이 있으면 이녁햏에게 하기 바라오.
우선 한국인의 시각과 한국적 시각이 무엇인지 최소한 구분 정도라도 해주어야 했다는 이녁햏의 말에 동의하오. 로직햏의 글을 읽으면서 저 부분부터 이해가 힘들었소. 메이지 유신에 대해 한국인들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바라본다고 하면서 그 뒤에 한국인의 시각이 아닌 한국적 시각이라 하는 것은 대체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소. '한국인들'의 시각과 '한국인'의 시각은 다른 것이오? 이 때의 한국인 역시 한국민 전체 혹은 다수를 말하는 것이 아니오?
다음으로 소수에 불과한 일부를 전체 한국인인냥 확대하여 허상의 한국인 이미지를 만들어 공격하고 있다는 이녁햏의 지적에 동의하오. 대체 한국인 가운데 몇 %가 "최익현은 세상 물정 모르는 유생 찌질이고 안중근은 테러리스트에 불과하고 최익현은 사이비 교주이며 김옥균은 친일파 매국노"라 하고 있소? 내 주변 인물 가운데 이런 주장을 하는 이는 본 적이 없소. 또한 "박정희는 독재자라 안되고 김구는 테러리스트라 안되고 이승만은 친미 모리배라 안되고 여운형은 빨갱이라 안된다"라 하는 사람이 전국민 가운데 몇%요? 이것은 앞보단 나은 예시이지만 역시 소수에 불과한 의견이요. 박정희더러 독재자라 안된다고 하는 이들은 소수 좌파세력 혹은 민주화운동 경력자들뿐이오. 다수의 국민은 그를 역대 대통령 가운데 최고로 뽑고 있소. 인기투표 1위가 박정희인 것은 이를 증명하는 것이오. 그리고 김구더러 테러리스트라 하는 이들은 김완섭과 그 부류인 극소수만이 보일뿐이오. 이승만더러 친미 모리배라 욕하는 이들은 일부 좌파세력외에 없소. 다수는 한국전쟁 당시 국민을 속이고 도망친 것으로 욕하오. 여운형더러 빨갱이라 욕하는 이들은 일부 우파세력외에 없소. 다수는 독립운동과 관련된 인물로 알 뿐 구체적으로 뭘했던 사람인지 모르오.
로직햏은 평소 자신의 생각에 반대한 소수의 세력에 대한 반감이 큰 나머지, 일부를 전체로 확대하여 공격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는 듯 하오. 그러나 이러한 감정적인 부분은 분명히 고쳐야 할 것이라 보오. 이러한 로직햏이 이녁햏에게 감정적인 부분을 비판하고 지적하는 것은 좋게 보이지 않소.
그리고 역사적 인물들에 대한 일본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한다는 로직햏의 주장이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녁햏의 지적에 동의하오. 왜 일본인의 태도를 본받아야 하는 것이오? 왜 그들의 역사관이 옳은 것이오?
나는 일본인의 역사관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하려는 것이 아니오. 로직햏은 왜 그들의 태도가 옳으며 본받아야 하는 것인지를 설명했어야 했소. 내가 보았을 때 아마도 로직햏은 그 이유로서 "일본은 메이지유신을 통해 자력으로 근대화에 성공했고 현재도 경제대국으로서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서구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으니 그들의 역사관이 이러한 현재의 일본을 만든 한 요인이며 따라서 이들의 역사관이 우월하고 옳다"고 보고 있는 듯 하오. 아니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 하오. 그래서 타인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하고는 이유와 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듯 하오.
그러나 그들이 잘나가는 것과 역사관의 옳고 그름의 상관관계를 먼저 설명해야 하지 않겠소? 로직햏의 글 어디에도 상관관계를 설명한 부분이 없소. 그저 현대 일본이 잘났으니 그들의 사고방식 역시 우월할 것이란 전제하에 주장을 이끌어가고 있는 듯 하오. 그러나 일본인 특유의 영웅만들기로 인해 역사적 반성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이녁햏의 지적을 로직햏은 유념할 필요가 있소. 그리고 일본인의 역사관이 옳다는 근거와 반론의 제시가 필요할 것이오. 단지 우리처럼 조상을 물고 뜯지 않으니 보기 좋아서 그렇다는 것은 근거가 될 수 없을 것이오.
한 가지 더 로직햏의 태도에 대해 지적하고자 하오. 로직햏은 자신의 의견에 반대하는 이들에 대해 이해와 관용을 보이지 않소. 비난이 아닌 건전한 비판이라도 매우 감정적인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로직햏이오. 로직햏이 존대말을 써서 대답하더라도 그 격한 심정과 불쾌감은 낱낱이 드러나오. 상대방의 의견을 수용하기 힘들다면 차라리 댓글을 거부하는 것이 나을 것이오. 그러나 로직햏은 관심을 원하고 있지 않소? 그렇다면 쓴소리도 받아들여야 할 것이오.
이녁햏의 주장에 대해서도 몇가지 비판을 하겠소. 이녁햏은 김종현씨의 주장을 인용하여 페리의 흑선내항과 강화도조약은 그 성격이 다른 것이라 하고 있소. 이는 반일감정이 있는 한국인에게는 먹혀들기 쉬운 주장일 것이오. 또한 어느정도 권위에 의존할 수도 있을 것이오. 그러나 사실관계를 규정짓는 것이 아닌 성격의 옳고 그름을 규정짓는 문제에 대해 당사자인 한국인의 저술은 객관성을 가지긴 힘드오. 당시 미국과 일본정부의 내부문서나 회의록 등의 각종 자료를 토대로 보다 실증적인 제시가 있어야 할 것이오.
물론 이런 작업은 전문학자들에게도 매우 힘들 것이고 또한 이런 논의에서 그렇게까지 세밀하게 들어갈 것을 요구하기란 어려운 일이오. 그렇기에 이녁햏은 '자유무역적 제국주의'와 '경제적 제국주의'라는 개념을 김종현씨가 만들었는지 아니면 제3자가 만들었지부터 제시해야 할 것이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이 과연 각각 전자와 후자의 개념에 해당된다는 주장이 김종현씨 혼자만의 것인지 아님 한국인이 아닌 다른 학자들의 관점인지도 제시해야 할 것이오. 그래야만 객관성과 권위를 얻을 수 있을 것이오.
그리고 이녁햏은 조선시대의 당파 싸움 등을 가리켜 실리적 목적에서 나온 이념다툼이라 하여 조선인의 실리성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고 있소만 이는 로직햏이 가리키는 것을 완전히 착각한 것으로 보이오. 로직햏은 공공의 가치관이 실리적이냐 명분론적이냐를 따지고 있는 것이지 개인적 욕구의 성격을 따지고 있는 것이 아니오.
이녁햏은 현실적 이해관계에 목을 메어 일어났다는 각종 당파싸움이 실리적 가치관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오? 이건 인간의 추악한 욕구에 지나지 않소. 실리가 아니라 그저 사리사욕이란 말이오. 한일양국에서 같은 정치투쟁을 했는데도 왜 조선의 당쟁은 비난받고 일본의 신선조와 유신지사는 동렬로 존경을 받는다오 생각하오?
조선의 당쟁은 논쟁의 소재는 명분론에 입각한 것이었으나 그 목적과 과정은 추접한 경우가 많았소. 결코 명분론적이지 않았소. 이건 공적인 실리관에서 나온 것도 아니고 그저 사리사욕일 뿐이오. 부정축재와 비리 등은 이미 조선시대 여러 문헌에서 지적되고 있는 문제오. 그러나 개화기의 일본은 정치투쟁의 '주제와 소재'가 매우 실리적이었소. 어떻게 하면 서구세력에 맞서 강력하고 부유하며 선진적인 일본을 만드느냐 그것이었소. 나는 그 과정과 목적에서 '개인의 실리'를 채운 일본인을 보지 못했소(물론 이 일본인은 일본인이 존경하는 역사상의 일본인이오. 당연하지만 모든 역사상의 일본인이 절제된 사생활을 가지진 못했을 것이오). 즉 일본인은 가치관은 매우 실리적이었으나 목적과 과정에 있어서는 사리사욕의 절제라는 명분에 매우 충실한 모습을 보여준다고 생각하오. 이러니 일본인들이 그들을 미워할 수 없는 것이라 보오.
정리하면 조선인은 명분을 외쳤으나 실상은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한 추악한 몸부림이었고, 일본인은 공공의 실리를 외쳤으나 이를 위해 개인의 사리사욕을 억제하는 모습을 보여주었기에 한일 양국민의 상반된 태도가 나타난 것이라 생각하오. 이러한 상반된 모습은 가치관의 차이라기 보단 어디에서든 당연한 현상이라 보아야 할 것이오. 지향하는 가치관이 실리적인 것과 수단과 방법에 있어서 사욕적인 것을 구별해야 할 것이오. 후자는 실리적이라 하지 않고 탐욕적이고 사리사욕만을 채운다라고 하오.
그리고 이녁햏은 독재정권에 충성하여 부귀영화를 누리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비판을 하고 있는데 비판의 근거가 되는 전제가 옳은 이유는 제시가 되어 있지 않소.
독재정권에 충성하면 왜 나쁜 것이오? 독재정권이니까?
독재정권은 왜 나쁜 것이오? 민주주의정권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민주주의정권은 왜 최고의 지향점이며 절대적 가치가 되는 것이오?
나는 민주주의정권을 추구해야 하는 이유는 이것이 가장 국민에게 이로울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 국민이 국가의 주인이라는 명분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소(물론 후자를 근거로 하는 명분론에 입각한 사람도 많을 것이오). 그렇기에 꼭 민주주의 정권이 아니더라도 부국강병을 이루어 국민의 자긍심과 복지향상에 기여를 할 수 있다면 독재정권이든 뭐든 상관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소. 민주주의제도는 수단일 뿐 목적 자체가 될 수 없다고 보고 있소.
과거 국내 군사독재정권은 어땠소? 나는 그들이 이룬 업적이 그 이전 이후의 민주정권이 이룬 업적보다 훨씬 크다고 생각하오. 그들의 이룬 경제발전과 국가안보확립, 이로인한 국민복지향상과 자긍심증대는 민주주의가 추구하는 목적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보고 있소.
다시 말하지만 나는 국민이 진정으로 국가의 주인이 되는 것 따위는 관심없소. 강력한 국방력과 부유한 복지력으로 국민이 안락하고 자긍심 넘치게 살아갈 수 있느냐에 관심있을 뿐이오. 나는 이러한 가치관이 실리적이라 보오. 그리고 민주주의 그 자체에 목을 거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소. 그렇기에 독재정권에 충성했다는 이유로 비판받을 이유도 없다고 보오. 동의하지도 않소. 또한 독재정권에 충성하여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므로써 받은 보상은 정당한 것이라 보오(물론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이들은 독재정권을 통해 대가를 받은 자체가 썩었다고 할 것이지만). 그러나 국가 발전에 이바지하기 보다 사리사욕을 채우기 위해 독재정권에 충성하고 이득을 챙긴 사람은 비판받아 마땅하다고 보오. 그런데 이녁햏은 이들을 구분하지 않고 독재정권은 무조건 나쁘고 여기에 충성한 자들 역시 무조건 모두 나쁘다 하고 있는 듯 하오. 이래선 조선의 정쟁을 실리적이라 했던 이녁햏의 태도와는 좀 배치되는 것이 아니겠소? 조선의 정쟁은 실리적이라고 포장하면서 왜 독재정권에 아부하여 사리사욕을 채운 사람들은 그토록 비난하는 것이오? 역시 같은 실리적 인물로 포장해줘야 할 것이 아니겠소.
실리라는 이름으로 포장하면 결코 세상은 쉽게 보일 수가 없소. 왜냐하면 실리라는 것은 결코 하나의 절대적인 기준을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오. 친일은 무조건 나쁜 것, 도둑질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등의 정의적 기준만큼 단순하고 획일화된 기준을 제공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실리라는 기준이오. 그러므로 로직햏의 마지막 문장을 실리로 대체한 것은 동의하기 어렵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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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to 역갤 블로그 at 12/28/2006 05:38:32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