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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단 맨 위의 리플이 약간 에러가 있었군요.
제가 말한건 왕망에 의해서 7묘제가 제창된 것이 아니라, 진명행이 말하신대로 공우가 군국묘의 폐지와 함께 종묘를 고례에 맞게 7묘제로 개혁하자는 건의로부터 긴 논쟁이 있었고, 평제때 왕망의 상주에 의해 그 논의가 마무리 지어지고, 7묘가 완성되었다는 이야깁니다. 왕망이 7묘제를 주창하고 시행(?)했다는 것이 아니라.-출처는 니시지마시다오의 중국역사[진한사] 최덕경, 임대희 옮김 "즉 왕망의 상주에 따라 도황고의 묘는 폐지하기로 하고, 선제묘는 중종묘로, 원제묘는 고종묘로 하여 겨우 7묘가 완성되었다." p.340-

그리고 "종묘의 숫자는 기본적으로 "7"이라는 이상론에서 한치도 벗어난 적 없소."라고 말씀하셨는데, 제가 알기론 위현성같은 인물은 종묘개혁논의 중에 처음에는 5묘제 그다음에는 6묘제를 주장하다가 마지막에 7묘제를 주장한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그렇다면 줄곧 종묘개혁논의가 "7묘제"를 전제로 이루어졌다고는 할 순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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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ㅇㄹ to 역갤 블로그 at 1/08/2007 03:55:40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