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급하신 삼국사기 고구려국본기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지요...
二十年(246), 秋八月, 魏遣幽州刺史毋丘儉, 將萬人, 出玄 來侵. 王將步騎二萬人, 逆戰於沸流水上, 敗之, 斬首三千餘級. 又引兵再戰於梁貊之谷, 又敗之, 斬獲三千餘人. 王謂諸將曰: "魏之大兵, 反不如我之小兵. 毋丘儉者魏之名將, 今日命在我掌握之中乎." 乃領鐵騎五千, 進而擊之. 儉爲方陣, 決死而戰, 我軍大潰, 死者一萬八千餘人. 王以一千餘騎, 奔鴨 原.
초반에 위궁이 두 차례 승리한 것으로 나오는데 이건 중요한게 아니고... '위의 대병이 우리의 소병보다 못하다'라는 말이 나옵니다. 아무리 봐도 이건 군사수 면에서 고구려가 더 많았다고 보기 어려운 대목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장수왕 이전의 고구려는 왕권이 매우 취약하고 부족 연맹체 성격이 강하여 대군의 침입에 국력을 모두 기울여 대항할 수 있는 체제는 아니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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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지나가다가 to 역갤 블로그 at 1/31/2007 06:45:31 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