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 그 문제에 대해서 예전에 역갤에서 논의한 적이 있는데, 관구검측의 총병력이 더 많았을 가능성을 부정할 수 없었던 걸로 끝이 났었습니다.
관구검 기공비에는 '토구장군 외오환선우'라 하여 오환족이 관구검을 지원한 것이 나오는데, 이 오환세력은 삼국지에 나온
「우북평 오환 선우 구루돈, 요서 오환 도독 솔중왕 호류 등, 옛적에 원상을 따라 요동으로 달아난 자들이 무리 5000여명을 거느리고 항복했다.(右北平烏丸單于寇婁敦、遼西烏丸都督率衆王護留等, 昔隨袁尙奔遼東者, 率衆五千餘人降.)」
이 세력으로 추측되므로 이들 5천여명을 별도로 합쳐도 관구검측의 병력은 1만 5천에 불과하기 때문에 고구려측의 군사(2만)가 더 많다는 사실은 변함없는 것으로 생각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 을지문덕님께서 "김한규 교수의 『요동사』에는 모용선비의 목연이 관구검을 따라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공을 세워 좌현왕이 되었다"는 부분이 있다고 말씀주셨으므로 찾아본 결과 위서에 해당 부분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魏書卷九十五 列傳第八十三
祖木延,從毋丘儉征高麗有功,加號左賢王 。
조부 목연이 관구검을 따라 고구려를 정벌하는데 공이 있어 좌현왕을 더하였다.
그렇다면 선비도 관구검을 지원한 것이 되므로 이들 병력을 별도로 더하게 되면 관구검측의 병력이 더 많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됩니다.(다만 관구검의 병력 1만에 이들 오환과 선비가 포함되는가의 여부에 대해서는 좀 더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같기도 합니다)
의견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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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랄라라 to 역갤 블로그 at 1/31/2007 07:00:23 P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