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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이님의 질문은 결론을 미리 정해 놓고 귀납적으로 추론하시다보니 그런 의문이 나오는 것이라 보여집니다. 낙랑지역에서 발견되는 유물 하나하나를 따로 떼어내서 판단할 게 아니라 총체적인 무덤문화, 부장양식, 출토유물간의 연관성 등등을 고려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앞에서 제기하신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된 귀뉴옥인(龜紐玉仁)같은 경우 후한서 여복지(輿服志) 下편에 보면 2000석 이상의 녹봉을 받는 관리들, 군국의 열후(列侯)나 태수급 이상의 관인으로서 "옥(玉)"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즉, 황제만 쓸 수 있었다.라고 보시는 것은 잘못보신 거구요.

더구나 그 옥인에는 관직명이 기재되어 있지 않습니다. 즉, 관인이 아니라는 얘기지요. 그렇다고 개인의 이름이 적혀져 있는 것도 아니니 사인(私印)도 아닙니다. 즉, 이 출토 유물은 실제 도장으로서의 기능을 했다기 보다는 본 인장 옆에 부관으로 사용하는 길상인, 부인(附印)으로 사용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어찌되었건 인장을 옥(玉)을 사용했다는 것은 그 부장자가 상당한 지위나 재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 이상의 확대해석은 무리라고 사료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지만 낙랑지역에서 출토되는 유물들 중에는 단순히 교류의 결과로만 이해하기는 어려운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고 있습니다. 예컨대 봉니라든가 오수전, 반량전을 제조하기 위해 만든 석조전범, 막새기와 같은 경우는 무역의 결과로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더구나 석암리 9호분에서 출토되는 일부 칠기의 경우 '乘輿'라는 명문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를 단순히 수입했다거나 교류했다고 보는 것은 잘못된 견해라고 보여집니다.

장강유역이 별도의 독립세력으로 성장한 것은 후한 멸망 이후의 일이므로 전한시대의 유물과는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님의 주장은 전한초기 이년율령이나 후한서 군국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근거를 막연히 추정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낙랑이 한나라와는 전혀 무관한 완전독립 세력이었다면 우선 그 근거를 추정이 아닌 고증과 실증에 입각해 설득력 있는 자료를 제시하여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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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孤藍 眞明行 to 역갤 블로그 at 2/10/2007 10:50:53 AM